루돌프 한 감독의 ‘불란서의 간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상영작인 단편영화이다. 불어로 대화가 이뤄지고, 자막이 한글로 제공되기 때문에 한예종 졸업영화제를 국제 영화제로 느끼게 만드는 작품이다.

◇ 특이한 상황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영화, 호기심을 자극한다
‘불란서의 간지’에서 누가 봐도 한국사람이 확실한 청춘 남녀 우성(이우성 분)과 동화(정동화 분)는 불어로 대화를 한다. 성인남녀인데 미취학 아동 혹은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처럼 노는 것도 눈에 띈다.
동화와 우성은 불어로 대화를 하는데, 파티용품 가게 사장(이윤기 분), 회계사(김준우 분) 등 다른 등장인물들은 한국어로 대화를 하는데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다는 점도 흥미롭다.

오렌지색 풍선이 30개에 36,000원인데 35,000원에 28개를 준다고 선심 쓰는 사장과 받아들이는 동화와 우성의 모습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더 비싸게 주고 사는데 만족감을 느끼는 상황도 궁금함을 느끼게 하고, 거래가 끝났는데 돈을 더 주고 가는 회계사의 모습도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 동화와 우성의 대화에 한국어를 사용했다면?
동화와 우성의 대화를 들으면 정말 알콩달콩하게 사랑하고 있는 연인들의 향기가 묻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어로 대화하지 않고 불어를 사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배역이 불어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된다.

동화와 우성의 불어 대화는 이국적인 느낌을 전달하면서 자막에 집중하게 해 메시지 전달력을 오히려 높이고 있다, 두 사람은 민망한 이야기도 서슴지 않고 하는데, 한국어 대사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완충하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한국어 자막으로 표기해 더욱 부각하는 역할도 동시에 한다.
동화의 동기 예울(송예율 분), 선배 가빈(김가빈 분)과 동화가 대화할 때는 불어 뉘앙스가 다소 한국어처럼 들린다는 점도 주목된다. 불어 사용이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에서는 불어를 한국어 억양에 가깝게 표현한 디테일을 경험할 수 있다.

◇ 풍선과 타자기, 오브제를 활용한 이미지 전달
‘불란서의 간지’에서 오브제로 사용된 풍선과 타자기는 불란서적이라기보다는 평범하거나 한국적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타자기는 한국적이라기보다는 고전적이라고 보는 것이 더 어울릴 수도 있다.
풍선의 의미와 타자기의 의미는 영화에 반복해 나온다. 그 의미를 곱씹어 생각하면 영화 제목의 의미 또한 추정할 수 있다. ‘불란서의 간지’에서 간지에 대한 구체적인 의미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추상적인 이미지로 받아들여도 무방하다고 생각된다.

엔딩크레딧과 함께 한 노래는 산울림의 ‘안녕’이다. 영화를 관람하기 전 제목만 보면 샹송으로 마무리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작은 반전이라고 볼 수도 있고 뉘앙스에 대한 명확한 메시지를 던지는 마무리라고 볼 수도 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