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유라 감독의 ‘단잠’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상영작인 단편영화이다. 이사를 갈 예정인 지희(김진영 분)와 지희의 친구 가윤(전은비 분)은 재개발 예정지의 빈집에 담을 넘어 들어간다.
영화 제목이 ‘빈집’이나 ‘이사’가 아닌 ‘단잠’이라는 것은 감독은 사건보다 내면의 감정에 더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추정하게 만든다. 비슷한 행동을 하는 남학생들을 보여줬다면 도전 또는 일탈이 먼저 떠올랐을 수도 있다.

◇ 누군가 살았던 흔적, 누군가 남긴 물건
다른 사람이 살았던 집에 들어간 지희와 가윤은 누군가 살았던 흔적, 누군가 남긴 물건에 관심을 갖는다. 특히, 그 집에 남겨져 있는 사진에 대해 농담 같은 이야기를 나눈 후 지희는 생각에 잠긴다.
‘단잠’에서 지희의 집이 이사 가는 것 자체로 지희의 감정을 모으기 전에, 다른 사람이 이사 가고 난 흔적을 통해 지희의 감정을 쌓아간다는 점이 주목된다. 직설보다 비유가 더욱 설득력 있고, 연상과 연결로 시나리오를 확대할 수 있다는 점이 잘 적용됐다.

지희의 집 자체에서 이사 갈 때의 감정을 표현했으면, 공간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이사라는 이미지 형성이 약했을 수도 있다. 누군가 벌써 이사 간 빈집을 통해 감정이입한 지희를 보고, 관객들도 같은 감정을 쌓아갈 수 있다.
◇ 사라져가는 동네, 사라져가는 기억들
‘단잠’에서 사라져가는 동네와 사라져가는 기억들은 버려지는 동네와 버려지는 기억들로 보이기도 한다. 어른들은 그 사라짐에 대해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지만, 지희에게는 무척 중요하다.

이사를 간다는 것은 새로운 행복을 꿈꾸게 만들기도 하지만, 기존의 기억과 추억을 놓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단잠’에는 지희가 단잠을 자는 장면이 나오기는 하지만, 제목은 구체적인 의미보다는 추상적인 상징성을 더 많이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지나고 나면 단잠같이 아련하게 기억될 수도 있고, 언제 단잠을 잤는지 잊어버리는 것처럼 잊어버릴 수 있는 추억에 대해, 감독은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단잠’은 비슷한 경험이 있는 관객들의 눈시울이 촉촉해질 수 있는 영화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