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원 감독의 ‘그녀가 있어야 할 곳’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상영작인 단편영화이다. 아들 집에 살던 엄마 숙자(김화영 분)는 딸 미경(김예성 분)이 사는 집으로 옮긴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는 외할머니가 반갑긴 하지만 군대에서 휴가 나온 손자 정대(안지환 분)는 방이 여분이 없는 상황에서 외할머니의 방문이 반갑지만은 않다. 딱히 눈에 띄게 구박하는 사람은 없지만,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그녀가 있어야 할 곳’은 마음을 정착하지 못하는 우리 시대 어르신들의 마음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 김화영의 절제된 표정연기
‘그녀가 있어야 할 곳’은 외할머니 숙자 역을 맡은 김화영의 절제된 표정연기가 인상적이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버스를 타지 못하고 고민하는 모습, 딸의 집에서의 모습까지 김화영은 실제 같은 안정된 연기를 보여준다.
김화영은 연극배우로 이름을 더 알려졌는데, ‘그녀가 있어야 할 곳’에서는 철저하게 절제된 연기를 하면서도 내면의 표현을 제대로 한다는 면이 주목된다. 김화영의 내면 표현은 표정연기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몸짓으로도 전달되는데 말하지 않아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다.

김화영의 내면 표현은 다른 사람들과도 케미를 보여주는데, 딸인 김예성은 물론이고 사위 동일 역의 설재영과도 실제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손자 안지환과도 좋은 호흡을 보여줘, 전체적으로 엄마의 감정선을 영화 전반에 흐르도록 만들고 있다.
◇ 그녀가 있어야 할 곳, 그녀가 있을 수 있는 곳, 그녀가 있고 싶은 곳
‘그녀가 있어야 할 곳’은 현실적이면서 가슴 아픈 이야기이다. 숙자를 특별히 구박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관객은 어떤 특정 대상을 미워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숙자의 마음속 빈자리를 관객은 같이 느낄 수밖에 없다.

‘그녀가 있어야 할 곳’은 자극적인 갈등을 만들지 않으면서도 짠한 감정의 여운을 오랫동안 갖게 만드는 작품이다. 단편영화이기 때문에 감정의 몰입은 작품이 끝난 후에도 바로 풀리지 않는다.
만약 숙자의 내면이 노골적으로 일차원적으로 표현됐고 갈등 구조가 좀 더 명확했으면 상투적인 이야기처럼 생각될 수도 있었는데, 절제된 톤을 유지하면서 현실적인 이야기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 주목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