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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오페라] 서울시오페라단 ‘투란도트’(2) 투란도트의 존엄과 권위는 없다, 그렇다면 칼라프는 왜?

발행일 : 2018-04-28 00:27:21

4월 26일부터 29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 중인 서울시오페라단의 <투란도트(TURANDOT)>에서 원작과는 전혀 다른 배경을 설정한 것은 결과적으로 창의적이지 않으면서 창의성을 발휘하려고 하다가 생긴 무리수로 매우 안타깝게 여겨진다. 실제로 파격적인 연출을 한 것이 아니라 파격을 흉내 낸 것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은 매우 아쉽다.

변화된 설정의 개연성이 확보되고 감정과 정서가 현대적 혹은 미래적으로 와닿았다면 서울시오페라단 버전의 <투란도트>라는 매력적인 레퍼토리가 생겼을 수도 있지만, 스토리텔링과 감정의 개연성을 없애고 기존과 달랐다는 것 하나만 남긴 공연이라는 결과를 남기고 있다.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 미래 도시인가? 산업 시대의 잔재인가? 왜 공장을 배경으로 설정했을까?

<투란도트>의 설정은 미래 시대라고 하지만, 그냥 산업 시대의 잔재를 보는 것처럼 생각된다. 왕국이 아닌 공장을 배경으로 이야기는 펼쳐지는데, 작품 자체가 가진 정서를 훼손하면서까지 이런 설정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공장 같은 분위기에서 투란도트(이화영, 김라희 분)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이고 합리적인지 고찰하게 되는데, <투란도트>의 투란도트가 아닌 <카르멘>의 카르멘이 연상된다는 점은 흥미롭다.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명확한 철학이나 기준이 없이 화려함만 추구한 무대라고 생각되는데, 내용 없이 영상의 미장센만 강조한 영화가 관객의 외면을 받듯이, 서울시오페라단의 <투란도트>는 관객을 그다지 감동시키지도 더더욱 흥분시키지는 않는다는 점은 아쉽다. 이런 무대 설정은 현재 서울복합화력발전소가 된 당인리발전소를 홍보하는데 가장 큰 목적이 있는 게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 칼라프 왕자가 목숨을 걸고 도전한 이유? 투란도트 공주의 아름다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범접할 수 없는 권위와 존엄이 있었기 때문인데...

<투란도트>를 직접 보면 무대 구조물을 신경 써서 만들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왜 여러 개의 계단으로 설정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설치된 구조물은 무대의 여러 방향에서 각기 다른 계단을 통해 위쪽으로 올라갈 수 있다.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기본적으로 투란도트는 범접할 수 없는 권위와 존엄을 가진 존재이다. 단순히 아름답다고 각국의 왕자들이 목숨을 걸고 구애를 하지는 않는다. 기존의 <투란도트>에서 투란도트가 높은 곳에서 등장하고 높은 곳에서 이야기하고, 투란도트가 있는 곳에 아무나 갈 수 없도록 만든 이유가 분명히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시오페라단의 <투란도트>에서는 아무나 투란도트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투란도트의 권위를 떨어뜨렸다. 그렇다고 해서 투란도트를 겸손해지게 만들거나 일반인들에게 친화적인 캐릭터로 변화시킨 것도 아니다. 결국 감정과 정서의 괴리만 만든 것이다.

황제 알툼(김재화 분)과 투란도트는 높은 곳에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무대 측면에서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먼저 나와 있던 신하들이 더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고 왕과 투란도트가 지나갈 때도 그냥 자리를 지키고 있다.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투란도트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칼라프의 도전을 제압하려고 하는 장면에서 투란도트는 거의 무대 바닥에 가까운 곳까지 내려오는데, 저런 설정 속에서는 칼라프가 투란도트에게 심리적으로 제압당하지 않는 것은 칼라프의 굳은 신념과 의지라고 보이지 않고, 칼라프의 권위가 별로 영향력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투란도트의 아리아가 주는 날카롭지만 빛나는 아름다움은 칼라프와 관객에게 무디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투란도트의 권위 추락은 곧 알툼의 권위 추락으로 볼 수 있는데, “당신의 권좌에 영광을 돌립니다”라는 합창이 무색하게 들린다. 알툼을 황제나 왕이 아닌 공장장이고, 투란도트를 공장장의 철없는 딸이라고 본다면 이런 변화된 설정은 개연성을 조금이나마 회복할 수 있다.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 칼라프는 왜 목숨을 걸어야 했는가?

투란도트의 권위 실종 및 추락은 칼라프(한윤석, 박지응 분)가 목숨 걸고 수수께끼를 풀어야 하는 이유의 당위성을 없앤다. 공장 영상 앞에서 투란도트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칼라프의 모습은 와닿지가 않는다. 아리아의 정서를 몰입하지 못하게 만드는 영상의 힘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다.

칼라프가 징을 칠 때 징을 치는 흉내만 내는데, 자신을 사랑하는 류(서선영, 신은혜 분)가 죽든지 말든지, 몰락해 쫓기는 왕이자 자신의 아버지인 티무르(최웅조, 서정수 분)가 말리든지 말든지 투란도트를 향한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직진하는 칼라프가 가진 처절함과 절박함, 간절함의 정서를 교모하게 없앤 디테일이 눈에 띈다.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 안전불감증의 시대에 안전불감증을 촉진하는 <투란도트>의 설정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다른 나라의 왕자들의 죽음이 중국 북경의 자금성에서 이뤄지는 게 아니라 공장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그들의 죽음은 산재(산업재해)를 연상하게 만든다.

안전불감증의 시대에 꼭 필요한 설정도 아니면서 오페라조차 이런 안전불감증을 부추긴다는 점은 어이없게 생각된다. 시대적 아픔을 고려했다면 저런 불필요한 설정은 하지 말았어야 한다.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공장이 배경인데 등장인물은 안전모, 안전화 등 안전장구를 하나도 착용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핑(임창한), 팡(김재일), 퐁(정제윤)이 노래를 부를 때 무대 뒤쪽 상단에서는 칼싸움이 벌어진다.

어두운 배경에서 펼쳐져 저런 장면이 있었는지도 모르는 관객도 많을 것인데, 만약 그런 디테일을 포착한 관객은 공장에서 저렇게 칼싸움을 하는 것이 예술적이라는 오판을 직간접적으로 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 특히, 혈기 넘치는 학생들에게는 더더욱 그러하다.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서울시오페라단의 무리한 시도는 <투란도트> 원작 버전을 빨리 다시 보고 싶게 만든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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