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현대차·기아, 첨단 연구시설로 EV 경쟁력 키운다](https://img.rpm9.com/news/article/2025/07/24/news-p.v1.20250724.e14b6fc96edc4601ba1d5676cabb14d8_P1.jpg)
길고 매끈한 공력 시험용 자동차가 세차게 부는 바람 속을 가른다. 몰입형 음향 스튜디오에는 가상의 엔진 사운드가 가득하다. 극한의 환경 풍동 챔버에서 뜨겁게 달아오르고 차갑게 식기를 반복하던 전기차는 눈과 비바람을 맞으며 다이나모 위를 쉬지 않고 달린다. 혹독한 한계를 넘어 기술의 경지를 탐구하는 이곳, 바로 현대자동차·기아의 모빌리티 개발 산실인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소재의 종합기술연구소(이하 남양기술연구소)다.
현대차·기아는 지난 23일 남양기술연구소의 모빌리티 개발 핵심 시설을 공개하며 글로벌 EV 시장을 선도할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을 소개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해 전 세계에서 약 723만 대를 판매하며 3년 연속 전 세계 자동차 판매 3위를 기록했다. 무엇보다 전기차 시장에서 혁신적인 기술력과 뛰어난 상품성을 앞세워 존재감을 더욱 뚜렷이 하고 있다. 2022년 현대차 아이오닉 5, 2023년 아이오닉 6, 2024년 기아 EV9에 이어 올해 EV3까지 현대차그룹 전용 전기차가 4년 연속 세계 올해의 자동차를 수상하는 기염을 토하며 명실상부 세계 최고 수준의 전기차 우수성을 입증했다. 이러한 기세에 힘입어 지난 5월에는 전용 전기차의 글로벌 판매가 누적 100만 대를 돌파하며 전동화 전환의 상징적 이정표를 세우기도 했다.
특히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가 발표한 '글로벌 전기동력차 시장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올해 1∼5월 글로벌 전기동력차(순수전기차+플러그 인 하이브리드) 시장에서 전년 동기 대비 17% 증가한 22만4529대를 판매하는 등 전동화 선도기업으로서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현대차그룹은 고성능 전동화 모델뿐 아니라 모빌리티 활용 가능성을 대폭 확대한 PBV까지, 글로벌 전동화 시장 확장을 주도하기 위한 남다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전동화 경쟁력의 중심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연구개발 거점인 남양기술연구소가 있다. 1996년 설립된 남양기술연구소는 신차 및 신기술 개발을 비롯해 디자인, 설계, 시험, 평가 등 차량개발의 전 과정을 총괄하고 있다. 승용차부터 상용차까지 전 차종을 개발하는 남양기술연구소는 현대차그룹의 미래 모빌리티 전략을 실현하는 핵심 기지로도 자리매김했다.
전기차 시장의 확산과 함께 글로벌 완성차 업계의 경쟁도 한층 치열해졌다. 특히 중국의 신생 업체들이 시장에 진입하면서 가격과 기술 면에서 빠른 속도로 격차를 좁히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현대차·기아는 품질과 성능, 사용자 경험 등 제품 전반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실증 기반의 개발 역량을 키우고 있다. 각종 주행 환경과 주행 조건을 모사한 시험을 통해 차량의 신뢰성과 감성 품질까지 정교하게 다듬는 것이 핵심 전략이다.
글로벌 탑티어 수준의 R&D 기술력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남양기술연구소를 찾았다. 차량의 실제 주행 환경을 유사하게 구현한 다양한 연구개발 시설 가운데, 자동차 풍동 시험을 진행하는 ▲공력시험동, 다양한 기후 조건으로 차량의 열관리 성능을 연구하는 ▲환경시험동, 차량의 핸들링 및 승차감 성능을 개발하는 ▲R&H성능개발동, 소음과 진동을 해석하고 차량의 감성 품질을 구현하는 ▲NVH동을 취재했다.
먼저 압도적 기술력과 연구 시설을 기반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전기차 공력 성능을 개발하는 공력시험동을 방문했다.
전기차 시대가 도래하면서 1회 충전으로 더 나은 주행거리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차와 공기역학의 관계는 더욱 중요해지는 추세다. 더욱이 공력 성능은 전비, 주행 안정성, 동력성능 등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이에 제조사들은 자동차의 운동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는 공기의 저항력 계수, 즉 공기저항계수(Cd, Coefficient of Drag)를 낮추기 위한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현대차·기아는 공력 분야에서 한발 앞선 경쟁력 확보를 위해 오랜 기간 노하우를 쌓아왔다. 공력시험동은 내연기관 차량뿐 아니라 전기차 및 수소차 등 친환경 차량의 공력 성능을 정밀하게 평가하고 개발하기 위해 특수 설계된 연구 시설이다. 총면적 약 6000㎡ 규모로 축구장 한 곳의 크기와 맞먹는 이 공간에는 대형 송풍기, 지면 재현 장치 등 실제 주행 환경을 정교하게 구현할 수 있는 다양한 설비들이 집약돼 있다.

이 중 핵심은 단연 대형 송풍기다. 3400마력의 출력으로 바람을 일으켜 차량 속도 기준 200㎞/h까지 재현할 수 있다. 지름 8.4m에 달하는 송풍기의 날개는 소음을 최소화하기 위해 탄소섬유 복합 소재로 제작됐다. 실제로 100㎞/h 속도의 바람을 만들 때 발생하는 소음은 약 54dB 수준으로 일반 사무실 정도의 정숙함을 유지한다.
또한 주행 시 지면 환경을 유사하게 구현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돼 있다. 시험실 바닥에는 총 다섯 개의 회전 벨트가 설치된 턴테이블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를 활용하면 지면 재현 평가가 가능하다. 차량의 네 바퀴 아래, 차량 하부 바퀴 사이 바닥 면에 벨트를 함께 회전시킴으로써, 바퀴의 구동뿐만 아니라 지면과 차량 하부 사이에 발생하는 공기의 흐름도 정밀하게 재현할 수 있어 신뢰도 높은 공력 성능 평가가 가능해진다.
공력시험동에서 진행하는 대표적인 평가는 ▲공력 성능 평가 ▲후류 최적화 평가가 있다.
공력 성능 평가에서는 차량 주행 방향과 반대로 작용하는 저항력인 '항력'과 차체를 부상시키는 힘인 '양력'을 중점적으로 측정한다. '항력'은 전비와 가속 성능에 영향을 주고, '양력'은 주행 안정성과 밀접하게 연관돼 전기차 공력 성능의 핵심 요인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후류 최적화 평가에서는 주행 시 차량 후면에 생기는 공기 흐름인 후류를 중점적으로 분석한다. 차량 후미에는 공기가 소용돌이치듯 맴도는 와류가 생성되는데, 이는 후면에서 차량을 당기는 힘을 발생시켜 주행 안정성 및 전비에 큰 영향을 미친다. 후류의 형상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제어하고 최적화하느냐가 공력 성능향상의 관건이 되는 이유다.
![[르포] 현대차·기아, 첨단 연구시설로 EV 경쟁력 키운다](https://img.rpm9.com/news/article/2025/07/24/news-p.v1.20250724.f4070e1d95824131a9610c42c58806b6_P1.jpg)
이날 공력시험동에서 기자단을 맞은 건 세계 최저 공기 저항 계수 0.144를 달성한 '에어로 챌린지 카'였다. 이 차는 현대차·기아 공력개발팀이 다양한 공력 성능 개선 기술을 적용해 개발한 콘셉트카로, 지금까지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내놓은 초저항력 콘셉트카의 Cd값이 0.19에서 0.17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현대차·기아의 기술력이 얼마나 높은 수준인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아쉽게도 이 차는 기자들의 눈으로만 확인할 수 있었고 사진이나 영상 제공은 불가능했다. 현재 연구 목적으로만 개발 중인데다가 보안상의 이유 때문이다.
시험실 내부로 들어서 '에어로 챌린지 카'를 꼼꼼히 살펴볼 수 있었다. 최고 수준의 공력 성능을 달성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액티브 카울 커버 ▲액티브 사이드 블레이드 ▲액티브 리어 스포일러 ▲액티브 리어 디퓨져 ▲통합형 3D 언더커버 등이 있었다. 공력개발팀 이의재 책임연구원은 “각각의 기술들이 모두 함께 작동될 때 최적의 공력 효율을 달성할 수 있다”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이 기술들은 공력개발팀이 선행 기술력 확보 차원에서 자체 개발한 것으로, 당장 양산에 적용되지 않지만 향후 지속적인 성능향상과 검증 과정 등을 통해 공력 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요소 기술로 활용할 방침이다.
여러 공력 기술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기술은 함께 연동해 작동하는 액티브 사이드 블레이드와 액티브 리어 디퓨져였다. 에어로 챌린지 카 후면에 숨겨져 있던 블레이드와 디퓨져가 뒤쪽으로 나오면서 리어오버행 길이가 40㎝ 연장되는 장치다. 차량 측면 및 바닥 길이가 확장되는 효과를 통해 측면 와류와 후류를 억제하거나 안정화할 수 있다는 것이 현대차·기아의 설명이다.
이어 '에어로 챌린지 카'에 연기를 분사해 차량 주변 공기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확인하는 '유동 가시화 시험'도 진행됐다. 각각의 기술이 작동될 때마다 공기 흐름 변화와 공력 성능 개선 효과를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공력개발팀 박상현 팀장은 “전기차 핵심 경쟁력으로 손꼽히는 AER(1회 충전 주행거리)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공력 성능을 높이기 위해, 외관 디자인부터 차량 하부 설계, 공력 신기술 개발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