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매일 스포츠카 타는 기분” 애스턴마틴 뉴 DBX707

[시승기] “매일 스포츠카 타는 기분” 애스턴마틴 뉴 DBX707

이름만 들어도 기분 좋은 브랜드가 있다. 기자에겐 애스턴마틴(Aston Martin)이 그런 존재다. 애정하는 영화 시리즈 '007'에서 제임스 본드의 '본드카'로 나올 때부터 좋아했던 이 브랜드는 올해 112주년을 맞는다. 지난해 10월에는 권혁민 부회장이 이끄는 브리타니아오토와 함께 한국에서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최근 애스턴마틴은 완전히 새로워진 제품 포트폴리오를 갖추게 됐다. 애스턴마틴이 자체 개발한 최첨단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탑재한 'SUV의 슈퍼카' DBX707, 다양한 상을 받은 '세계 최초의 슈퍼 투어러' DB12, 그리고 호평을 받는 차세대 밴티지가 포함되며, 2024년에는 브랜드의 플래그십 모델이자 강력한 V12 엔진을 탑재한 신형 뱅퀴시를 공개해 럭셔리 스포츠카 시장에서 다채롭고 매력적인 라인업을 완성했다.

이 가운데 신형 DBX707을 최근에 시승했다. 이름에 담긴 의미는 매우 간명하다. 창업 초기 파산과 매각을 반복하던 회사를 1947년에 데이비드 브라운(David Brown)이 되살리는 데 성공했고, 이를 기념해 이후 출시되는 모델에는 그의 이름에서 따온 'DB'에 숫자를 붙여서 이름을 완성했다. 또한 DBX에서 X는 SUV를 뜻하고, 707은 이 차의 최고출력을 의미한다.

[시승기] “매일 스포츠카 타는 기분” 애스턴마틴 뉴 DBX707

DBX가 세상에 존재를 알린 건 2015년 제네바 모터쇼였다. 여기서 'DBX 콘셉트'로 등장한 이 차는, V로 시작하는 애스턴마틴 모델들의 전통을 버리고 콘셉트카 그대로 DBX라는 이름으로 2019년에 출시된다. 한국에는 AMG의 V8 4.0ℓ 550마력 엔진을 영국 공장에서 튜닝한 모델이 2020년에 처음 소개됐으며, 2023년부터 707마력으로 출력을 높인 DBX707이 판매되고 있다.

DBX의 라이벌은 람보르기니 우루스, 페라리 푸로산게, 포르쉐 카이엔 터보 GT 등이 꼽힌다. 그 외에도 고성능을 지닌 SUV가 더 있겠으나, 가격까지 고려하면 위의 모델 정도가 경쟁상대다.

DBX는 경쟁 차종 중 SUV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역동적인 스타일로 완성됐다. 푸로산게는 정통 SUV보다는 차체가 낮지만, 해치백보다는 높아서 크로스오버카 같은 느낌이 강하다. 우루스는 벤틀리 벤테이카, 아우디 Q8, 폭스바겐 투아랙 등 같은 플랫폼을 쓰는 차 중에 차체가 가장 낮게 설계돼 스포티한 인상이 강한 편. 카이엔 터보 GT는 카이엔 라인업 중 가장 강력한 차인데, DBX와 우루스, 푸로산게와 비교해보면 가장 평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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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X는 경쟁 차종 중 뒷모습이 가장 매력적이다. 특히 낮게 시작한 좌우 라인이 중앙에서 봉긋하게 솟아오른 형태로 디자인되어 멀리서도 '애스턴마틴' 브랜드임을 한눈에 알아챌 수 있다.

DBX707은 2년 전인 2023년 1월에 시승했을 때와 비교해 인포테인트먼트 시스템이 대폭 개선됐다. 2년 전 모델은 벤츠의 오래된 구식 시스템으로 편의성과 조작성이 형편없었다. 특히 내비게이션 목적지 입력 방식이 커맨드 컨트롤러로 자음과 모음을 하나씩 입력하는 방식이어서 아주 불편했었다.

업그레이드된 신형은 애스턴마틴이 자체 개발했다. 최근에는 애플과 협력해 업계 최초로 '애플 카플레이 울트라'까지 적용했다. 이 기능이 적용되면 센터 디스플레이뿐 아니라 계기반도 개인 취향에 따라 바꾸는 게 가능하다. 안드로이드 오토에도 이런 기능이 빨리 적용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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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 레버는 아주 작은 형태로 남아있고, 좌우 온도 조절과 송풍 강도 등은 손가락으로 밀거나 당겨서 조작한다. 기어 레버 앞에 배치된 원형 다이얼은 가운데를 누르면 엔진 시동을 걸거나 끌 수 있고, 바깥쪽 다이얼을 돌리면 드라이브 모드를 바꿀 수 있다.

드라이브 모드는 오프로드, GT, 스포츠, 스포츠 플러스 등으로 나뉜다. 짧은 시승 시간 동안 이들 모드를 여러 차례 바꿔서 타보니, 시가지에서는 GT 모드가, 고속도로에서는 스포츠 플러스가 매력적이었다. GT 모드는 다양한 시내 도로에서 두루 타기에 적당하다.

서스펜션은 기본적으로 탄탄하지만 불편하지 않고, 엔진 반응도 무난한 편이다. 스포츠 모드에서는 반응이 살짝 강해지는데, 진짜 실력은 스포츠 플러스 모드에서 발휘된다. 애스턴마틴 특유의 강력한 배기음이 으르릉대고, 서스펜션은 가장 쫀득해진다. 특히 트리플 챔버 에어 서스펜션과 전자식 가변 댐퍼, eARC 안티 롤 컨트롤이 만들어내는 승차감과 핸들링이 예술이다.

[시승기] “매일 스포츠카 타는 기분” 애스턴마틴 뉴 DBX707

강한 섀시 성능은 애스턴마틴 특유의 접착식 알루미늄(Bonded Aluminium) 기술이 적용된 덕분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견고하면서 가벼운 차체가 완성됐다.

정지에서 시속 100㎞를 3.3초에 끊어내는 민첩함은 트윈 터보 엔진과 변속기의 조화가 매끄럽기 때문. 마찰이 적은 볼 베어링 터보차저 엔진에 기존 토크 컨버터 대신 9단 습식 클러치 변속기를 적용한 효과가 크다. 가속 페달을 깊게 밟은 후 들리는 '팝콘 사운드'도 매력적이다. 최근 등장한 DBX707 S는 20마력 늘어난 727마력에 쿼드 머플러로 더욱 멋진 사운드가 기대된다.

0→100㎞/h 가속시간은 경쟁차인 푸로산게와 카이엔 터보 GT가 3.3초로 DBX707과 동일하고, 우루스 SE는 3.4초로 약간 떨어진다. 최고시속은 우루스 SE가 312㎞로 가장 빠르고, DBX707 310㎞, 푸로산게 306㎞, 카이엔 터보 GT 305㎞의 순이다.

[시승기] “매일 스포츠카 타는 기분” 애스턴마틴 뉴 DBX707

타이어는 피렐리 P-제로 제품이고, 사이즈는 앞 285/35 R23, 뒤 325/30 R23이다. SUV치고는 극단적으로 낮은 편평률에 상당히 큰 휠을 장착하고 있음에도 승차감이 불편하지 않다는 게 놀랍다.

시승 도중 차를 세우고 천천히 실내를 둘러본다. 주황색으로 물들인 실내는 섹시하면서도 세련됐다. 2열 시트 각도가 눕혀지지 않는 건 아쉽지만, 이건 경쟁차들도 마찬가지. 632ℓ의 기본 적재 공간이 크고, 4:2:4로 나뉘는 시트를 접으면 골프나 여행 등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페라리 푸로산게보다 크게 돋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시승기] “매일 스포츠카 타는 기분” 애스턴마틴 뉴 DBX707

시승차의 기본 가격은 3억8000만원이다. 2022년에 시승한 DBX707은 3억1700만원의 기본 가격에 8050만원 옵션을 더해 3억9750만원이었다. 수입사 측은 “환율에 따라 가격 변동이 있다”라고 설명한다. 더불어 애스턴마틴이 다채로운 옵션을 마련해 놓고 있어 어떤 걸 선택하느냐에 따라 가격이 크게 달라진다.

애스턴마틴은 크지 않은 생산 규모에도 불구하고 궁극의 슈퍼카와 스포츠카를 생산해 열성적인 팬층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F1 기술을 가져온 1079마력의 PHEV 슈퍼카 발할라는 999대 한정 생산으로 벌써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반기부터 고객에게 인도될 발할라 역시 시승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