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ENT 연극] ‘이방인’ 카뮈의 원작 정서에만 집착할 필요는 없다

극단 산울림의 3년 만의 신작 연극 ‘이방인’이 9월 5일부터 10월 1일까지 소극장 산울림에서 공연 중이다. 알베르 카뮈의 원작 소설을 임수현 연출이 번역, 각색을 통해 만든 작품이다.

‘이방인’은 프랑스에서도 연극으로 자주 만들어지지는 않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정통 연극다운 진지함을 가진 ‘이방인’이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처럼 극단 산울림의 레퍼토리로 자리 잡을지 기대가 된다. 기다림의 미학을 가진 ‘고도를 기다리며’와 상실감의 울분이 표출되는 ‘이방인’이 극단 산울림을 이끌어갈 두 축의 스테디셀러가 될지 궁금해진다.

‘이방인’ 공연사진. 사진=극단 산울림 제공
‘이방인’ 공연사진. 사진=극단 산울림 제공

◇ 관객석까지 보면 반원형 극장, 무대만 보면 원형 무대, 움직임의 동선과 감정의 동선을 생생하게 살리다

‘이방인’이 공연되는 소극장 산울림은 기본적으로 관객석을 포함해서 반원형 극장이다. 어느 좌석에서 관람하더라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극장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이인애 무대감독은 움직임의 동선을 원형 무대 안으로 감싸 안아 감정의 동선까지 보호하고 있는 느낌을 줬다.

커튼이 바람에 흔들리듯이, 산들거리며 움직이는 영상은 원형 무대와 어울렸는데, 장면 전환이 많은 작품에서 암전될 때도 딱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여운을 남긴다는 뉘앙스를 전달한 점이 주목된다.

‘이방인’ 공연사진. 사진=극단 산울림 제공
‘이방인’ 공연사진. 사진=극단 산울림 제공

◇ 독백을 포함한 대사가 정말 많은 연극, 감동받길 진정 원한다면 카뮈의 원작에만 집착할 필요는 없다

‘이방인’의 원작 소설을 비롯해 카뮈의 소설을 읽은 관객의 경우, 지적 자신감에 충만해 연극이 소설을 그대로 반영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 물론 어떤 시야로 관람하든 관객의 선택이지만, 연극은 즐겁게 관람하는데 초점을 맞출 것인지 내 기존 지식과 맞는지를 확인하는데 중점을 둘 것인지에 대한 선택의 문제로만 작품을 판단하는 것은 다분히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방인’ 전막 프레스콜을 직접 보니 연습량이 장난 아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들었고, 연극적 몰입도를 원하는 관객에게는 무척 좋은 선물 같은 작품이라고 느껴졌다.

‘이방인’ 공연사진. 사진=극단 산울림 제공
‘이방인’ 공연사진. 사진=극단 산울림 제공

◇ 진지한 연기를 몰입감 있게 표현한 배우들

전박찬은 뫼르소의 상실감, 공허함, 고독을 뛰어난 몰입력을 발휘해 표현했다. 원캐스트로 저렇게 매일 무대에 서면 마지막 공연에서는 쓰러지거나, 혹은 연기의 불사신이 될 것 같다는 추측이 들 정도이다.

독백을 포함한 대사는 양이 엄청 많고 빠르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다 써야 제대로 몰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박찬은 서 있다가 바닥에 쓰러지는 장면에서도 몸을 사리지 않았는데, ‘이방인’이 극단 산울림의 고정 레퍼토리가 된다면 전박찬의 공도 충분히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된다.

‘이방인’ 공연사진. 사진=극단 산울림 제공
‘이방인’ 공연사진. 사진=극단 산울림 제공

이름만 들어도 믿고 티켓팅을 할 수 있는 박상종(검사 역), 승의열(판사 역), 박윤석(변호사 역)의 연기는 물론이고, 김효중(레이몽 역)과 이세준(기자 역)도 뛰어난 연기력을 발휘했다. “연극은 이런 것이구나.”라는 것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마리 역의 박하영은 때로는 차분하게 때로는 흥분하거나 과격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대사와 움직임을 펼쳤다. 극의 완급 조절과 균형 유지를 박하영이 담당했다고 볼 수 있는데, 다른 남자 배우들 사이에서 어떤 감성으로 역할을 수행했는지 궁금해진다.

‘이방인’ 공연사진. 사진=극단 산울림 제공
‘이방인’ 공연사진. 사진=극단 산울림 제공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