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준희 작곡, 고재귀 대본, 이태정 지휘, 정이와 피아노 연주로 열린 오페라 ‘마녀’가 6월 30일 세종문화회관 예술동 5층 종합연습실에서 공연됐다. 서울시오페라단의, 세종 카메라타 오페라 리딩공연 세 번째 이야기의 마지막 작품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을 통한 구원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은 초반부터 모성애로 관객들을 사로잡지는 않고, 객관적이며 검증할 수 있는 시야를 가지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이 주목된다.

‘마녀’는 리딩공연이 아닌 완성된 오페라의 갈라 콘서트를 풀 버전으로 본 것처럼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었다. 소극장, 중극장, 대극장 버전으로 모두 발전 가능한 작품으로 본공연이 기다려진다.
◇ 역시 임준희 작곡가는 특별하다고 느껴지게 만든 ‘마녀’의 완성도
‘마녀’ 리딩공연을 직접 들으면 개발 과정에 있는 작품이 아닌 완성된 작품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완성도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임준희 작곡가는 이름값을 제대로 발휘하고 있는데, ‘한예종 어벤저스’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뛰어난 음악가들이 함께 했다.

이태정 지휘자는 리딩공연임에도 불구하고 지휘 의자를 아예 치우고 공연 내내 일어서서 땀을 뻘뻘 흘리며 열정적으로 지휘를 했다. 지휘자에게서 무대에 오르고 싶은 내적 욕구가 느껴지는 듯했다. 성악가들도 상대적으로 작은 공간이 아닌 대극장에서 노래 부르는 것처럼 최고의 기량과 성량을 발휘했다.
임준희는 공연 후 관객과의 질의응답 시간에 뮤지컬로 할 수 없는 부분, 연극으로 할 수 없는 부분을 ‘마녀’에서 표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1줄을 고치는데 2주일이 걸렸다는 에피소드를 알려줘,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최선을 다했는지 관객들이 알 수 있게 했다.

리딩공연에서 이렇게 감동을 받을 정도면 본공연은 얼마나 대단할까 싶어지기도 하고, 본공연에 대한 기대가 너무 높아져서 오히려 예상치 못한 감동은 크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리딩공연은 훌륭했다.
◇ 테너, 바리톤, 베이스가 함께 한 코러스, 소/중/대극장 모두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는 작품
‘마녀’에서 간수, 근위병, 코러스는 테너 박관희, 바리톤 유영은, 베이스 엄주천이 같이 맡았다. 테너, 바리톤, 베이스로 화음을 이룬 음역대를 모두 커버하는 조합은 멋진 감동적인 삼중창을 들려줬는데, 만약 대극장에서 공연된다면 합창으로 진행될 것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대규모의 합창으로 소화해야 할 아리아를 세 명의 성악가가 함께 했을 때 부족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이는 ‘마녀’를 소극장, 중극장에서도 효과적으로 공연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척 긍정적이다.
대극장 오페라가 중소극장에서 공연될 때는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을 주는데, 특히 대규모의 합창이 없어져 감동이 줄어들었을 때 커버할 수 있는 장치가 특별히 없는 것이 일반적이다. ‘마녀’는 그런 면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 여자 관객은 누구에게 감정이입해야 할 것인가?
무대 공연이나 영화 모두 남자 관객은 아무에게도 감정이입하지 않고 그냥 작품을 관람하는 경우도 많은데, 여자 관객은 누군가에게 감정이입해 좀 더 밀착해서 작품을 관람하는 경우도 많다.

‘마녀’에서 여자 관객이 여자 캐릭터에 감정이입을 한다면 마녀(소프라노 정주희 분) 또는 레니(소프라노 김민형 분)인데, 오페라 초반 설정을 보면 두 캐릭터 모두 오롯이 감정이입하고 싶지는 않을 수 있다.
마녀는 관객을 울먹이게 할 정도로 모성애를 발휘하기는 하나 후반부에 가서 그런 모습이 발휘되기 때문에, 조막손(테너 양인준 분)과 서로 마음을 주고받는 레니에게 감정이입하게 될 가능성이 더 많다.

레니는 조막손을 사랑하고, 조막손 또한 레니를 사랑하는데, 이루어지기 힘든 상황에 처해있기 때문에 더욱 애틋하게 여겨진다. 레니와 조막손의 이중창은 무척 감동적인데, 두 인물이 다른 가사를 사용하지 않고 같은 가사를 사용하도록 한 선택은 훌륭하게 여겨진다. 관객들의 감정을 확 잡아 올리는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기 때문이다.
레니와 조막손은 서로 사랑하는데 거의 동등한 깊이와 크기로 사랑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실에서는 무척 긍정적인 관계이긴 하지만 감정이입할 여자 관객들을 배려해 정서상으로 조막손이 더 레니를 사랑하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는데, 공연 후 질의응답 시간에 고재귀 작가는 그런 정서를 반영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 개인 캐릭터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강화된 아리아! 관객의 이해도, 흥미, 몰입을 높이다
‘마녀’에서 아리아의 특징 중의 하나는 개인 캐릭터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강화된 곡이 많다는 것이다. 여섯 번째 아리아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오!’, 일곱 번째 아리아 ‘내 이름은 조막손’ 등이 그러한데, 이런 아리아는 관객의 이해도와 흥미를 높여 몰입해 느끼는 재미를 높여준다.
‘마녀’를 직접 보면 소프라노 정주희는 진짜 마녀처럼 몰입해 전율을 느끼게 한다. 편견과 독선에 사로잡혀 마녀사냥을 즐기는 유형지의 대심문관 기욤과 왕좌를 지키기 위해 전쟁을 일삼는 황제의 1인 2역을 맡은 바리톤 염경묵은 마녀는 물론 조막손과 레니를 관객들이 응원할 수 있도록 만드는 악역을 훌륭한 가창력과 연기력으로 소화했다.

‘마녀’는 기존의 오페라적 문법이 주를 이루지만 우리 고유의 리듬도 발견할 수 있다. 창작 오페라를 만들면서 우리 고유의 리듬 혹은 우리 주변의 음악적 정서를 무조건 받아들이지도 무턱대고 배척하지도 않고 적절하게 차용한 점은 무척 돋보인다.
‘마녀’가 본공연으로 개발될 경우 호기심을 자극하고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했을 때 독자적인 검색 영역을 구축하기 위해 제목을 ‘눈먼 마녀’라고 하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앞에 붙은 수식어가 불필요한 서사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선입견을 없애는 좋은 선택이 될 수도 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