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ENT 오페라] 세종 카메라타 오페라 리딩(1) ‘비행사’ 한국어 가사 전달력, 대사 전달력을 높인 창작 오페라

서울시오페라단의, 세종 카메라타 오페라 리딩공연 세 번째 이야기가 6월 29일부터 3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예술동 5층 종합연습실에서 공연됐다. 작곡가와 극작가 8인이 의기투합해 ‘달나라 연속극’, ‘비행사’, ‘텃발킬러’, ‘마녀’ 등 4편의 창작오페라를 만들었다.

본지는 리딩공연에 대한 첫 리뷰로 조정일 대본, 나실인 작곡, 조정현 지휘의 ‘비행사’를 공유한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완성된 오페라로 빨리 보고 싶은 작품이다.

세종 카메라타 오페라 리딩공연 ‘비행사’ 리허설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세종 카메라타 오페라 리딩공연 ‘비행사’ 리허설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 아카펠라처럼 화음을 만드는 음향효과, 시각적 뒷받침이 없는 리딩공연에서 집중하게 만드는 힘

‘비행사’는 전쟁 후 버려진 마을의 이야기이다. 폭격으로 만들어진 세 개의 구덩이가 있는데 할미의 구덩이에는 할미(메조소프라노 최혜영 분), 수하(소프라노 임수주 분), 고하(소프라노 장지애 분)가 살고, 아비의 구덩이에는 아비(테너 노성훈 분)와 어미(소프라노 윤성희 분)이 산다. 돼지우리는 돼지를 키우는 구덩이다.

모래 폭풍 소리를 낼 때는 성악가들이 입으로 아카펠라처럼 음향효과를 냈는데, 리딩공연에서만 볼 수 있는 재미있는 광경이었다. 특별한 가사 없이 합창으로 이어진 노래는 공연 초반 관객들을 시각적 뒷받침이 없는 리딩공연에서 관객들을 집중하게 만들며, 감정선을 이어가며 축적하게 했다.

세종 카메라타 오페라 리딩공연 ‘비행사’ 리허설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세종 카메라타 오페라 리딩공연 ‘비행사’ 리허설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 연기를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는 리딩공연에서 연기력을 놀랍게 발휘한 소프라노 장지애

노래와 대사 위주로 이뤄진 리딩공연이기 때문에 지문 또한 리딩으로 들려주는데, 장지애는 동화를 구현하는 성우처럼 자연스럽게 지문을 읽어 관객들이 집중력을 높여줬다는 점이 눈에 띈다.

장지애는 연극배우 이상으로 표현력이 풍부한 성악가였는데, 눈을 감고 들으면 리딩공연이 아닌 실제 무대 공연 실황인 듯 느껴졌다. 장지애는 표정 연기에 있어서도 뛰어났는데, 아리아를 부르지 않는 장르에서 연기를 했어도 잘 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세종 카메라타 오페라 리딩공연 ‘비행사’ 리허설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세종 카메라타 오페라 리딩공연 ‘비행사’ 리허설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 주인공이라기보다는 외딴곳에서 소외된 비행사의 정서, 표정은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목소리는 내면의 감정으로 깊게 들어간 베이스 바리톤 전태현

공연 관람 전 ‘비행사’에서 비행사(베이스 바리톤 전태현 분)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일 것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런데, ‘비행사’에서 비행사는 주인공이라기보다는 외딴곳에 떨어져 소외된 낯설고 외로운 정서를 가지고 있다.

표면적으로 주인공이고 극을 이끄는 계기를 마련한 인물이지만, 극 속에서는 배고프고 외로운 정서를 전태현은 베이스 바리톤 특유의 독창적인 음역으로 표현했다. 재미있는 점은 표정은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목소리는 내면의 감정으로 깊게 들어갔다는 점인데, 대사를 하거나 노래를 하는 등 입을 열 때는 감정을 표현하면서 표정에서는 감정을 절제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세종 카메라타 오페라 리딩공연 ‘비행사’ 리허설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세종 카메라타 오페라 리딩공연 ‘비행사’ 리허설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 가사 전달력, 대사 전달력을 높인 창작 오페라 ‘비행사’

우리말로 된 창작 오페라에서 관객들이 느끼는 만족감을 좌우하는 포인트는 스토리텔링일 수도 있지만, 가사 전달력과 대사 전달력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가사 전달력과 대사 전달력이 떨어질 경우 몰입하기 힘들고 당연히 감정이입도 어려워진다.

모르는 내용의 작품을 처음 보는데 몰입도 감정이입도 안 된다면 재미있게 관람하기는 매우 어려워진다. 오페라에서 음역대의 특성상 소프라노의 가사 전달력은 다른 성악가들보다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는 한국어뿐만 아니라 다른 언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세종 카메라타 오페라 리딩공연 ‘비행사’ 리허설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세종 카메라타 오페라 리딩공연 ‘비행사’ 리허설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비행사’가 본공연으로 발전되기를 바라는 이유 중의 하나는 가사 전달력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나실인 작곡가가 기본적으로 작곡을 잘했기 때문인데, 조정일 극작가의 대본의 힘, 성악가의 힘이 합해졌기 때문에 가능한 성과이다.

소프라노 윤성희와 장재영은 고음의 아리아를 부를 때도 뛰어난 가사 전달력을 발휘했는데, 감정이 고조됐을 때도 관객이 스토리텔링에서 빠져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정서와 감정을 끊기는 느낌 없이 이어줬다는 측면에서 무척 긍정적이다.

세종 카메라타 오페라 리딩공연 ‘비행사’ 리허설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세종 카메라타 오페라 리딩공연 ‘비행사’ 리허설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비행사’가 우리말로 된 창작 오페라이고 아직 리딩공연이라는 점을 고려해 세 가지 방법으로 소프라노의 아리아를 들어봤다. 먼저 성악과 기악이 같이 들리고 있지만 성악이 없다고 가정했을 때 피아니스트 고우리의 기악 연주는 훌륭했다.

성악과 같이 듣는다고 생각하고 리듬과 정서 위주로 성악과 기악을 같이 들었을 때도 무척 어울렸고, 마지막으로 가사를 음미하면서 들었을 때 가장 감미롭게 들렸다는 점을 생각하면, 무대 공연에서는 얼마나 더 감동적일까 기대된다.

세종 카메라타 오페라 리딩공연 ‘비행사’ 리허설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세종 카메라타 오페라 리딩공연 ‘비행사’ 리허설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 음악에 심취해 있으면서도 명확하게 신호를 주고받는 지휘자 조정현

‘비행사’ 리딩공연의 또 다른 재미는 지휘자의 감성을 따라가며 관람하는 것이었다.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 지휘자는 악보에 충실하게 정박자의 모범적인 지휘를 하는 경우와 감각과 필을 중시해 지휘하는 경우로 나뉠 수 있고, 두 가지 스타일에 따라 곡의 해석은 무척 다르게 느껴진다.

조정현 지휘자는 노래를 입모양으로 같이 부르기도 하고 지휘 의자에 기대앉기도 하는 등 필을 충분히 표현하면서도, 피아노 연주자와 성악가들에게 명확하게 신호를 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세종 카메라타 오페라 리딩공연 ‘비행사’ 리허설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세종 카메라타 오페라 리딩공연 ‘비행사’ 리허설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조정현이 다른 음악과들과 만드는 라포르는, 과업을 수행한다기보다는 즐기는 모습이었는데, 과업만 수행하는 사람들보다도 더 철저히 과업을 수행하면서 즐기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비행사’ 공연은 에너지가 넘칠 수밖에 없었는데, 조정현은 발을 땅에서 든 상태에서 지휘하기도 했다. 지휘자의 정서와 감성이 성악가를 통해 그대로 전달됐다는 점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세종 카메라타 오페라 리딩공연 ‘비행사’ 리허설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세종 카메라타 오페라 리딩공연 ‘비행사’ 리허설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테너 김동욱과 바리톤 황규태는 많은 분량은 아니지만 주역 못지않은 실력을 발휘했는데, 특히 황규태의 목소리는 더 많은 분량의 역을 맡는 작품을 별도로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비행사’는 세종 카메라타의 가능성과 성과를 보여준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대극장 공연작으로도 만들 수 있는 작품이지만, 중소극장 작품으로 꾸준히 재공연되는 것도 훌륭한 선택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