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교향악단의 ‘로미오와 줄리엣(Romeo and Juliet)’이 6월 1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공연됐다. 알렉상드르 블로슈의 지휘로 진행된 이번 연주는 관현악으로 듣는 슬픈 러브 스토리를 담았다.
프랑스의 릴 오페라 음악감독인 젊은 지휘자 블로슈(1985년생)는 연주 후 퇴장했다가 박수를 받으며 다시 들어올 때도 관객들의 시간과 감정을 끌지 않고 뛰어 들어오기도 했다. 관객들과 감정의 밀당을 하지도 않고, 환호와 찬사에 지나치게 도취되지도 않은 그의 모습에서 로미오가 보였다.

◇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 ‘로미오와 줄리엣’ 환상 서곡
차이콥스키의 ‘로미오와 줄리엣’ 환상 서곡은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시작했다. 감정이 고조돼 질주하는 부분에서도 일정 범위를 준수하려는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거칠게 연주 소리를 내기보다는 고급스럽게 음을 표현했는데, 연주 후반부에서 거침없이 질주하기 시작했을 때는 곧 막이 오를 것 같은 기대감과 설렘을 줬다.
서곡 자체에 하나의 시나리오를 넣었다는 느낌은, 부드럽게 이어지는 스토리텔링이 감정의 연속성을 유지해 마치 명상을 하는 듯한 차분함으로 느껴졌다.

◇ 레너드 번스타인,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교향적 무곡’
번스타인의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교향적 무곡’(이하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는 연주자들이 손가락으로 현을 퉁기며 리듬을 타고 연주를 시작했다. 손가락으로 표현하는 아카펠라라고 생각될 정도로 서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점이 주목됐다.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연주에는 악기 고유의 소리뿐만 아니라 변형된 소리도 같이 했다. 원래 악기가 아닌 다르게 활용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는데, 타악기도 투박하게 때려서 원래 타악기가 아닌 물체를 타악기로 활용하는 듯한 소리를 만들기도 했다.

바이올린, 첼로 등 독주 파트에서는 방금 전 거칠게 몰아치던 리듬과는 차이를 뒀는데, 크로스오버 악기 연주와 정통 클래식 연주가 오버랩 되는 느낌을 줬다. 연주자들은 연주 중에 추임새를 넣기도 했는데, 지휘자 블로슈는 첫 곡과는 달리 강렬한 움직임으로 역동적인 지휘를 했다.
지휘자의 흥겨움은 시각적으로도, 음악을 통해 청각적으로도 관객석에 전달됐는데, 블로슈는 자신의 예술적 끼와 흥을 점점 더 오케스트라와 관객들에게 발산하고 있다고 여겨졌다.

◇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 ‘로미오와 줄리엣’ 발췌곡
프로코피에프의 ‘로미오와 줄리엣’ 발췌곡은 셰익스피어의 동명 희곡에 기초한 발레음악 중에서 발췌된 곡이다. 아름다운 선율의 하이라이트를 맛볼 수 있는 시간임과 동시에 몰입된 감정을 여러 번 점핑하며 따라가야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지휘자 블로슈는 감정에 몰입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몬태규 가와 캐플렛 가’는 강렬한 타악의 몰아침으로 시작했고, ‘소녀 줄리엣’에서 음이 아기자기하게 펼쳐질 때에는 지휘자도 그런 동작을 취했다. ‘미뉴에트’에서는 에너지 속으로 한 번에 훅 들어간다는 느낌을 블로슈는 줬는데, 오케스트라 또한 한 번에 그 기운 속으로 이끌고 들어갔다.

발췌곡은 발췌이기 때문에 지금 이 부분의 연주가 ‘로미오와 줄리엣’ 원곡에서 어떤 부분의 연주인지 감정선상의 흐름을 파악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 발췌한 곡마다의 정서와 느낌은 몰입과 점핑을 반복했는데, ‘티볼트의 죽음’에서 지휘자가 발산하는 광기는 경쾌하면서도 불안감을 축적해 초초하게 만들기도 했다.
커튼콜에서 지휘자는 시간을 끌지 않고 바로바로 무대에 나왔다. 관객들의 감정을 높은 위치에서 만끽하지 않고, 그렇다고 억제시키지도 않고, 정말 친한 친구들처럼 같이 공유한다는 점은 관객들에게 소속감과 일체감까지 줘 더욱 행복하게 만들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