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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영화] ‘하린, 고양이 그리고 태현’(감독 이은향) 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1)

발행일 : 2017-02-01 10:49:51

이은향 감독의 ‘하린, 고양이 그리고 태현’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상영작인 단편영화이다. 태현(윤종석 분)은 자신에게 집중하지 않는 여자친구 하린(최지현 분) 때문에 속상하다. 사귀고 있는 남녀를 비롯해 일상의 편한 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감정의 작은 상처에 영화는 관심을 갖는다.

◇ 의미 있는 시작, 무뎌지며 퇴색해가는 주변에 대한 고마움

“나는 너한테 뭐가 될 순 있긴 하냐?”라고 태현은 하린에게 묻는다. 그 질문조차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하린에게, 자신을 TV 속 고양이만큼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태현은 생각한다.

‘하린, 고양이 그리고 태현’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하린, 고양이 그리고 태현’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사귀면서 이런 기분을 느껴본 사람은 꽤 많을 것이다.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도 마찬가지이다. 영화 제목에도 태현보다 고양이가 먼저 나온다. 처음에는 하린에게 중요한 순서처럼 생각됐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면 마음이 이동한 순서일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고양이(콩순 분)를 안은 하린을 보고, 고양이는 병균 덩어리라고 엄마(노윤정 분)는 말한다. 하린이 지금 이 순간 남친인 태현보다 관심을 주는 고양이가 엄마에게는 병균 덩어리로 여겨지는 것이다.

◇ 다가감과 끌어당김, 끌어당겨 심쿵하게 만든 태현과 다가가 심쿵하게 만든 하린

문이 닫히려고 하는 엘리베이터에 뛰어 들어온 하린은 문 앞에 서있던 태현과 마주하게 된다. 같은 수업을 듣고 있었지만 처음 마주해 대화한 의미 있는 시간이다.

이 시퀀스에서의 디테일한 표현은 섬세한 감정으로 이어진다는 점이 주목된다. 구두 소리를 내며 뛰어오는 하린,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려는 순간 문에 발을 내디뎌 문을 다시 열리도록 한 하린. 이때까지만 해도 하린의 능동적인 움직임은 생생한 음향효과와 함께 했다.

‘하린, 고양이 그리고 태현’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하린, 고양이 그리고 태현’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엘리베이터 안이 거의 차 있는 것을 본 하린은 그 앞에 멈추는데, 하린이 멈추면서 영화의 소리도 멈춘다. 마치 슬로모션같이 표현된 시간에 관객도 잠시 숨죽여 멈출 수 있다.

태현은 하린의 손을 잡아당겨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오게 한다. 들어오라고 말을 한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당긴 것이다. 순간, 스크린에서 관객의 마음속으로 심쿵함이 전달된다.

밀고 들어가는 민망함을 감수해야 할지에 대해 하린이 더 이상 고민하지 않게 만든 태현의 배려이자 행동인데, 두 사람이 서로 잘 알지 못 했던 상황이라는 점은 이 장면에 더욱 집중하게 만든다.

다가감과 끌어당김 중에서 태현은 끌어당김을 먼저 선택한다. 하린 역의 최지현의 표정연기가 돋보였는데, 두 사람의 상의가 줄무늬 티셔츠라는 공통점은 이 장면을 더더욱 운명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하린의 집에서 발견된 고양이가 줄무늬 옷을 입고 있었다는 점도 같은 정서를 전달한다.

‘하린, 고양이 그리고 태현’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하린, 고양이 그리고 태현’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영화 후반에, 무뎌진 마음에 더 이상 하린의 손을 잡고 끌어당기지 못하는 태현에게 하린은 갑자기 와락 안긴다. 태현의 끌어당김이 아닌 하린의 다가감은 관계의 회복을 넘어선 관계의 새로운 시작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감독이 의도했을 수도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는데, 하린이 집의 문을 열 때 번호를 틀려 다시 번호를 누르고 집으로 들어갔다는 것이 떠오른다. 폰을 보면서 번호를 누를 때는 틀렸는데, 번호에만 집중하며 누른 두 번째는 맞는 번호로 문이 열렸었다. 번호를 알고 있어도 다른 곳에 마음이 가 있으면 문을 열 수 없다. 어쩌면 영화 초반에 감독은 이런 암시를 던졌을 수도 있다.

◇ ‘하린, 고양이 그리고 태현’의 감성이 장편영화로 만들어진다면?

‘하린, 고양이 그리고 태현’은 긴 호흡의 장편영화가 아니기에 감정이입하지 않은 채 편안하게 보면, 미묘한 하린의 감정 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이는 영화에서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귀고 있는 사이일 때 당연히 여기는 마음, 편안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 커지면 상대방의 감정의 디테일을 놓칠 수 있다.

‘하린, 고양이 그리고 태현’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하린, 고양이 그리고 태현’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이은향 감독이 장편영화를 만든다면 ‘하린, 고양이 그리고 태현’에서의 섬세함이 큰 흐름의 이야기 속에 어떻게 녹아들어 갈지 궁금해진다. 감정만 반복될 경우 마음속을 파고들던 떨림은 무뎌질 수도 있고, 서사가 강조되면서 감정이 묻힐 수도 있다. 장편영화를 만들 때도 초심의 감각이 살아있기를 바란다.

◇ 색감이 뛰어난 영화, 단편영화를 다시 요약하는 엔딩크레딧의 그림

‘하린, 고양이 그리고 태현’은 색감이 뛰어난 영화이다. 총천연색의 원색으로 화려함을 추구하지도 않으면서, 파스텔톤의 부드러운 색감으로 표현했다. 영화가 표현하는 사랑에 대한 마음, 삶에 대한 태도와 영화의 색감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집안의 모습, 놀이터의 밤 모두 따듯하고 아름다운 색감을 전달한다.

엔딩크레딧은 영화의 정지된 화면을 배경으로, 영화의 주요 내용을 요약한 캐릭터 위주의 그림이 같이 보인다. 이미지적으로 요약정리한 것인데, 마치 애니메이션의 엔딩크레딧같이 마무리된다. 네 장의 그림은 그간의 이야기를 동화처럼 여운으로 남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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