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된 기아 PV5가 이번엔 한국 미디어를 대상으로 상세한 성능과 개발 내용이 공개됐다. PV5는 기아가 2019년부터 구상한 PBV(목적 기반 모빌리티)다. 전용 플랫폼을 사용해 패밀리카나 캠핑카, 카고 등으로 다양한 변형이 가능한 게 가장 큰 특징이다. 현대·기아 R&D 센터 연구원들은 “레고 블록으로 조립하듯 자유로운 형태 구현이 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기아는 2020년 중반에는 E-GMP.S(Electric-Global Modular Platform for Service) 개발에 착수했고, 2021년 초반에 PV5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황선기 책임연구원은 “E-GMP.S는 PBV 시장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해 개발한 최초의 PBV 전용 전기차 플랫폼이다. 승객 및 화물 공간의 극대화, 다양한 사용 목적에 대응 가능한 구조적 유연성과 확장성 확보, 용도별 차량 성능 최적화, 그리고 TCO(Total Cost of Ownership, 총소유비용)를 고려한 경제성에 중점을 두고 개발했다”라고 설명한다.

PBV 전용 전기차 플랫폼으로 만들어진 PV5는 내연기관에서 파생된 전동화 경상용밴(LCV)에 비해 많은 이점이 있다. 내연기관의 엔진, 변속기 등을 들어낼 필요 없어 운전석 위치를 최전방에 배치할 수 있고, 언더 보디 포준화에 따른 저상화 풀 플랫 플햇폼을 만들 수 있어서다. 특히 PE(Power Electric) 시스템을 콤팩트하게 설계하면서 운전석 바로 아래에 경사지게 배치하고, 쿨링 모듈은 반대 방향으로 경사지게 설계해 공간을 최대한 활용했다. 황선기 책임연구원은 “더블 위시본 프런트 서스펜션을 채택해 쇼크업소버의 높이를 낮출 수 있었다”라고 강조한다. 더블 위시본은 인슐레이터 일체형 모듈 브라켓 구조 적용으로 조립 공정을 단순화해 정비 편의성도 향상했다.
뒤 서스펜션은 일명 '토션빔'이라 불리는 CTBACoupled Torsion Beam Axle)를 적용했다. 이에 관해 강승민 책임연구원은 “PV5는 차량 성능 최적화와 실내공간 극대화를 동시에 추구했다”고 강조한다. 특히 라이드&핸들링 성능이 우수하지만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멀티 링크 대신 CTBA 타입을 써서 실내 바닥을 평탄화하고 공간을 극대화했다.
후륜 CTBA는 내구성과 주행 성능 동시 확보를 위해 ▲듀얼 범프 스토퍼 ▲비선형(부등 피치) 스프링 등 신규 부품을 적용했다.

패신저(승용)와 카고(화물)의 차종에 맞는 분리형 CTBA 부싱도 적용했다. 강승민 연구원은 카고 모델은 내구성과 주행안전성 위주여서 강한 부싱으로, 패신저 모델은 승차감 위주로 개발해 연한 부싱을 적용했고, 듀얼 점퍼 스토퍼로 좀 더 세밀하게 튜닝했다“고 설명한다.
이와 함께 PV5에는 고객의 사용 환경을 고려해 최적화한 최고출력 120㎾(163마력), 최대토크 250Nm(25.5㎏f·m)의 모터·인버터·감속기 일체형 표준 구동모터 시스템이 탑재되며, 표준 배터리 케이스 2종을 기반으로 셀투팩(CTP, Cell to Pack) 기술이 적용된 NCM 71.2kWh, 51.5kWh, LFP 43.3kWh 등 3종의 배터리 시스템이 제공된다. LFP 배터리는 해외 시장 전용으로 운영된다.
기아는 2022년 2월부터 개인과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UX 콘셉트 검증을 통해 사용성 중심의 피드백을 받았다. 이어 9월에는 1차 PBV 파트너스 데이에서 좀 더 구체적인 디자인/상품성 피드백을 얻어냈다. 2023년 5~6월에 2차 PBV 파트너스 데이에서 부족한 부분을 다시 보완했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이나 노약자들이 쉽게 타고 내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반영해 스텝고를 399㎜로 낮게, 도어 열림량을 775㎜로 넓게 설계해 제작했다.
◆'플렉시블 보디 시스템'으로 다양한 차체 구현

기아는 '레고 블록처럼 조립하는 보디'라는 새로운 설계 및 생산 개념을 적용한 '플렉시블 보디 시스템'을 PV5에 최초로 도입했다.
플렉시블 보디 시스템은 차체, 도어·테일게이트 등 무빙 부품, 외장과 내장의 주요 부품을 모듈화해 다양한 사양을 유연하게 개발·생산하는 PBV 특화 기술로, 다품종 차량 개발에 최적화된 설계 유연성과 생산 효율성뿐만 아니라 구조적 안정성, 정비 편의성까지 동시에 확보한 것이 특징이다.
PV5는 전면부와 1열 구조를 전 모델에 공통 적용하고 1열 이후 구조는 리어 오버행, 테일게이트, 쿼터 글라스 등을 모듈 단위로 구성해 최대 16종의 보디를 유연하게 조합할 수 있는 체계를 갖췄다.

기아는 지난달 계약을 시작한 ▲패신저(롱) ▲카고 롱(3도어/4도어)을 비롯해 ▲카고 컴팩트(3도어/4도어) ▲카고 하이루프(3도어/4도어) 등 총 7종의 기본 보디를 우선적으로 선보일 계획이다.
이 중 카고 롱은 카고 컴팩트의 '리어 오버행 모듈'을 뒤쪽으로 이동시키고 전장을 늘리기 위한 '롱보디 모듈'을 추가해 제작되며, '쿼터 글라스 모듈' 및 '테일 게이트 모듈' 교체만으로 패신저 보디로 전환이 가능해 높은 호환성과 유연성을 자랑한다.
기아는 보디의 확장성과 더불어 안전성 및 정비 편의성까지 고려해 PV5에 '조립형 후측방 어라운드 가니쉬'와 '외골격 환형 구조'를 함께 적용했다.
D필러 이후 차체 외측에 적용되는 후측방 가니쉬는 차량의 전장·전고와 용도에 따라 다양한 크기와 형상, 차별화된 디자인으로 구현 가능하며, 세 조각으로 구성돼 충돌이나 스크래치 발생 시 손상 부위만 간편하게 교체할 수 있어 정비 효율성과 비용 절감에 기여한다.

또한, 기아는 조립형 가니쉬 구조를 바탕으로 차체 골격을 외측까지 두껍게 확장한 '외골격 환형 구조'를 구현해 차체의 구조적 안정성과 NVH 성능을 향상시켰으며, 롱보디 모델은 이 구조를 리어 오버행 연장 부위(롱보디 모듈)와 후측방(리어 오버행 모듈)에 이중 적용한 '외골격 듀얼 환형 구조'로 설계해 차체 강성을 더욱 강화했다.
아울러 D필러 전방의 차체 외측에는 2열 슬라이딩 도어 및 쿼터 글라스 유무에 따라 구분되는 스틸 패널을 단 2종의 금형으로 생산해 다양한 보디에 적용할 수 있어 개발 및 생산 효율성까지 극대화했다.
PV5는 전장 4495㎜(컴팩트), 4695㎜(롱·하이루프)로 일반적인 준중형급 크기임에도 ▲2995㎜의 긴 휠베이스 ▲운전석 전방 배치 ▲저상화 플로어 설계 등을 통해 대형 차급 수준의 실내 및 적재 공간을 제공한다.

PV5 패신저는 2-2-3 모델 기준으로 3열 좌석에서도 1000㎜ 이상의 헤드룸과 레그룸을 확보해 일반 승용차 2열에 준하는 넉넉한 공간감을 제공한다.
트렁크 용량은 2-3-0 모델 기준 1330ℓ로 2열 시트 폴딩 시 최대 3615ℓ까지 확장되고, 동승석 시트를 적재 공간으로 대체한 모빌리티 서비스 특화 모델(1-2-2)의 경우 해당 공간에 여행용 캐리어를 3개까지 적재할 수 있다.
PV5 카고는 419㎜의 낮은 후면 적재고를 바탕으로 컴팩트·롱은 1520㎜, 하이루프는 1815㎜ 수준의 카고룸 실내고를 구현해 상하차나 차량 내부 작업 시 편의성을 향상시켰다.

카고 롱은 최대 4420ℓ, 하이루프는 최대 5165ℓ의 적재 용량을 제공하며, 하이루프에는 격벽 슬라이딩 도어와 동승석 팝업 싱킹 시트를 적용한 '워크스루' 옵션을 적용해 운전자가 차량 밖으로 내리지 않고도 실내에서 카고룸으로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했다.
기아는 '기아 제뉴인 액세서리(Kia Genuine Accessories)' 사양으로 패신저 2-3-0 모델에 2열 폴딩 시 풀 플랫 공간을 제공하는 '러기지 평탄화 데크'를 운영해 차박과 레저 활동에 적합한 실내 환경을 제공하며, 카고 모델에는 부피가 큰 화물이나 팔레트 적재가 가능하도록 설계된 '카고룸 평탄화 플로어'를 운영해 고객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한다.
이 밖에도 PV5는 고객 의견을 적극 반영해 ▲운전석 크래시패드 상단 트레이 및 내부의 충전용 C타입 USB 단자 ▲플로어 및 도어 스커프 트레이 ▲대용량 도어 트레이 ▲센터페시아 슬라이딩 트레이 ▲카고 전용 1열 시트 후방 멀티 수납공간 등을 마련했다. 다만 이날 공개된 모델에서 2열 수납공간은 다소 부족해 보였는데, 기아 연구원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향후 보완하겠다“라고 밝혔다.

기아는 PBV 전용공장 '화성 EVO 플랜트' 인근에 구축한 '기아 PBV 컨버전 센터'와 'PBV 컨버전 개발 프로세스'를 통해 완성차 수준의 품질과 상품성이 확보된 컨버전 모델을 개발 및 생산하고, '컨버전 포털 시스템'과 '도너 모델'을 운영해 외부 컨버전 생태계도 지원한다.
기아는 PBV 컨버전 개발 프로세스를 새롭게 정립해 PV5 기본 모델의 개발 초기부터 다양한 컨버전 모델의 개발 계획과 디자인 방향성을 수립했으며, 필수적인 컨버전 요소들을 사전에 점검해 기본 모델 설계에 반영했다.
이러한 선제적 설계를 바탕으로, PV5 패신저 및 카고 등 기본 모델의 차체에는 홀, 너트, 브라켓 등 전용 마운팅 구조가 적용돼 PBV 컨버전 센터에서 별도의 추가 작업 없이도 필요한 부품을 안전하고 신속하게 장착할 수 있으며, 컨버전 전용 기능 구현을 위한 제어기와 와이어링 하네스 등도 기본 설계에 포함됐다.

기아는 향후 PBV 컨버전 센터를 통해 ▲오픈베드(트럭) ▲레저와 휴식에 최적화된 '라이트 캠퍼' ▲패신저 고급화 모델 '프라임' ▲내장탑차 ▲냉동탑차 등 다양한 컨버전 모델을 선보일 예정이다.
기아는 이와 함께 컨버전 포털 시스템을 운영해 외부 협력사가 컨버전을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컨버전 기술 가이드와 차량 데이터를 제공하고 연구소의 기술 지원까지 연계한다.
아울러 컨버전 과정에서의 불필요한 시간과 자원 낭비를 최소화하고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도너 모델'을 운영한다.
도너 모델은 시트와 트림류 등 불필요한 부품들을 사전 제거한 상태로 출고되며, 전력 포인트, 컨버전 전용 제어기,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연동 기능 등을 탑재해 외부 협력사가 손쉽고 안정적으로 컨버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한편, 기아는 다음 달 PV5 패신저 2-3-0과 카고 롱 모델의 국내 고객 인도를 시작하고, 올 4분기 유럽 출시를 기점으로 글로벌 시장에 PV5를 순차적으로 전개할 계획이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