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티나인 아트 컴퍼니의 ‘침묵(SILENCE)’은 2016 공연예술 창작산실 우수신작 릴레이 공연 무용분야 공연작이다. 장혜림 연출로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무대에 올랐으며, 헤르타 뮐러의 소설 ‘숨그네’를 모티브로 하여 만들어진 작품이다.
목소리가 없는 움직임의 언어로 담아냈으며, 소설 속 17세의 어린 레오가 타고 있는 수용소를 향한 기차를 작품의 배경으로 했으며, 그 안의 현상과 감정을 작품에 표현했다고 장혜림 안무가는 밝힌 바 있다.

◇ 춤으로 표현된 침묵... 즉흥과 현대무용의 다양한 움직임을 통해 쏟아낸 생각과 신체 에너지
‘침묵’은 ‘숨그네’(2015), ‘심연’(2016)과 함께 Ninety9의 우리 영혼을 어루만지는 춤 ‘1ounce(28.4g)’의 레퍼토리를 구성하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Ninety9은 1%의 영감을 99%의 노력으로 채우겠다는 열정적인 무용수들이 모여 만든 단체이다.
‘침묵’은 소프라노 엘라 만자시의 내레이션과 자막으로 시작한다. 자막으로도 표현된 내레이션은 친절한 설명이라기보다는 낯설게 하기에 더 가깝다. 침묵으로 시작해야 할 것만 같은 ‘침묵’에서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면서 선택한 안무가의 갈등이 느껴진다.

무대 뒤편 백스테이지의 막이 약간 올라가며 강한 조명이 노출된다. 어둠 속에서 밝은 빛은 관객석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관객들의 눈을 부시게 만든다. 맨 앞 측면 조명과의 만남은 초반의 안무가 바닥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예측하게 만든다.
아프리카 출신 소프라노의 반복되는 멘트와 고요한 음악은, 관객을 아프리카로 데려가는 느낌을 줬다. 원작을 떠올린다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의 수용소로 데려가는 것이다.
침묵을 안무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침묵을 안무로 표현하면서, 무용수들은 "Yes"라는 말과 의성어의 반복을 통해 침묵을 깨고자 했는데, "Yes"라는 말의 반복은 다른 언어들을 침묵시키고 있다고 생각되기도 했다.

◇ 제1부 기차, 포로들의 춤
‘침묵’의 제1부는 음악 없이 이뤄지는 안무, 의성어가 반복됐다. 무용수들이 반복하여 말하는 "Yes"는 긍정이 아닌 저항이자 절규로 느껴졌다. 노골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무언가 억압 속에 구속된 움직임이 전달됐는데, 격자 모양의 상부 조명 또한 구속의 오브제처럼 생각됐다. 음악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안무의 느낌이 확연히 달라진다는 것을 경험한 시간이었는데, 배경음악이 없을 때 관객은 더 긴장하게 된다.
필자는 일반적으로 공연을 관람하기 전에 프로그램북 등을 통하여 미리 예습하지 않는다. 가능한 사전 지식으로 인한 선입견과 예측이 없는 상태에서 공연을 접하려고 한다. 공연 후 프로그램북을 찾아보니 제1부는 ‘기차, 포로들의 춤’이었는데, 돌이켜 보면 음악 없이 이뤄진 안무는 침묵할 수밖에 없는 기차에서의 춤으로 표현된 절규였다고 생각된다.

◇ 제2부 설원, 자유의 노래
어둠 속에 펼쳐진 제2부 시작시 소품을 무대에 펼치는 소리는 배경음악 또는 음향효과인 폴링처럼 들렸다. 원형에 가까운 모양의 작은 스티로폼은 무대 측면에서 부는 바람에 움직이며 이동했는데, 바람은 음향효과이자 실제 무대를 조금씩 변화시키는 요소였다.
무대 바닥에 수북이 쌓인 스티로폼은 새로운 공간 창출을 했다. 하얀 사막 같은 느낌도 있었는데, 설원을 표현한 것이었다. 스티로폼의 움직임은 자연현상을 보는 듯 관객들을 집중하게 만들었다.

무용수들은 코러스처럼 소리를 내며 움직임을 펼치기도 했고, 여명이 밝아온 것을 표현한 듯한 조명은 밝은 느낌 전달했다. ‘침묵’의 프로그램북을 통해 무용수로 참여한 손가빈, 연은주, 이민주, 유현정, 장서이가 각각 침묵의 의미에 대해 의견을 표현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무용수들은 각자의 의견을 말로 표현하고, 다시 글로 정리하면서 ‘침묵’이 주는 의미를 소화하고 재해석해 무대에서 안무로 보여준 것인데, 안무자의 의도를 단순 전달하지 않고 무용수들이 같이 창출해냈다는 점은, Ninety9의 새로운 창작 안무에 대한 기대감을 지속적으로 갖게 만든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