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주 감독의 ‘폭발하는 황혼(The Fury of Twilight)’은 제16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희극지왕 부문에 진출한 단편영화이다. 은행 주차 관리원 이판국(유순웅 분)은 자신이 근무하는 발해은행 주차장이 무인주차 시스템으로 변경되며 해고당한다. 부당함에 억울한 이판국은 시한폭탄을 제조해 복직을 요구하는데,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이 영화는 답답하고 억눌린 정서를 희극적인 에피소드를 통해서 진행한다. 40분이라는 단편영화로는 짧지 않은 상영 시간 동안 많은 억울함을 표현하면서도 관객들이 지나친 피로감에는 젖지 않도록 완급을 조절만 면이 주목된다.

◇ 억울한 정서, 다양한 좌절, 어느 하나의 에피소드에는 내가 속해 있을 공감
‘폭발하는 황혼’은 표면적으로 밝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우울하고 억울한 정서를 내면에 깔고 있다. 영화 속에서 나오는 크고 작은 다양한 좌절을 보고 있으면, 대부분의 관객들은 자신이 비슷한 경험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이판국은 주차장이 좋아지면서 정리해고를 당한 뒤 부당함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자신은 은행 소속이 아니라 파견 용역업체 소속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는 비정규직의 설움과 파견직의 억울함을 동시에 관객들에게 노출한다.
은행 ARS도 내 마음대로 활용하기 힘들고, 폭탄을 설치했다고 자백해도 경찰서에서 믿어주지 않는다. ‘폭발하는 황혼’이 이판국의 좌절만 다뤘다면 개인의 이야기로 축소돼 받아들여질 수도 있었을 것인데, 다른 사람들의 작은 좌절과 마음의 상처도 담고 있다.
고자임(박지연 분)은 중국집에 점심 식사를 주문하면서 외근하는 사장에게 어떤 음식을 먹을 것이냐고 물어봤다가 구박을 받는데, 어느 회사든 막내 직원 또는 사무직 여직원은 겪어봤을 상황이다.
고자임은 중국집에 주문을 할 때 쿠폰을 사용한다는 것을 은근슬쩍 숨기고, 중국집 배달원은 쿠폰이 아닌 현금을 받아 가기를 바라는데, 서로 상대방의 이야기 같지만 많이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주고받음이라는 점은 적대적인 대결을 피하면서도 작은 좌절을 효과적으로 관객들에게 전달하게 만든다.

◇ 억울함과 무기력함을 과도하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으로 표현한 유순웅
‘폭발하는 황혼’에서 유순웅은 하는 일마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어르신 이판국 역을 맡았다. 무척 억울하면서도 과도하게 억울함에 초점을 맞추지 않아, 오히려 관객들로부터 생길 수도 있는 반감과 비난을 사전에 방지하고 이판국 캐릭터에게 공감해 응원하도록 만든다는 점이 돋보인다.
사회의 단면을 풍자하는 영화에서, 사회에 전면적으로 대항하는 강한 저항자라기보다는 적절한 어필을 통해 풍자로 승화하는 연기를 유순웅은 멋지게 소화했다.
영화의 거의 모든 장면에 등장해 전체적인 정서를 이끌고 있는 유순웅이 주인공의 역할을 멋지게 소화한 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도 노년을 사는 분들이 주인공으로 살 수 있다는 뉘앙스와 여운을 남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