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우 연출, 박경수 극본의 SBS 월화드라마 ‘귓속말’ 제11회는 이보영(신영주 역)의 차 트렁크에서 발견된 김홍파(강유택 역)의 시신으로 인해 경찰에 잡힌 이보영을 이상윤(이동준 역)이 변호사의 자격으로 찾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두 사람의 대화를 ‘사리대화(事理對話)’와 ‘심정대화(心情對話)’라는 측면에서 살펴볼 경우 내면심리에 대한 전달과 함께 드라마 제목인 ‘귓속말’이 가진 상징성을 알 수 있다. 또한, 작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전달하는 메시지는 ‘직면(直面)’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볼 경우 더욱 명쾌하게 다가온다.

◇ 드라마 속 사리대화와 심정대화, 꿰뚫어 보는 내면심리
“언제 옮겼을까? 송태곤 실장이 시신을 옮긴 증거만 있으면”이라는 이보영의 말에 이상윤은 대답 대신에 손수건을 꺼내 볼과 손의 상처를 닦아주며 “묵비권 행사하세요. 어떤 진술을 해도 최일환 대표 귀에 들어갈 겁니다. 왜곡하고 선제 대응할 거예요.”라고 답한다.
이상윤은 이보영을 닦아 주었던 손수건을 이보영의 손 옆에 놓으며 “부탁할만한 말이 있으면 해요”라고 말을 덧붙인다. 이상윤과 이보영의 대화에는 사실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는 대화와 서로의 내면을 공유하는 대화가 모두 포함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려대학교 한성열 교수의 ‘심리학 콘서트’에 의하면 대화에는 정보와 지식을 주고받는 사리대화와 감정을 주고받는 심정대화가 있다. 사리대화를 머리로 하는 대화라면 심정대화는 감정으로 하는 대화인 것이다.
이보영과 이상윤의 대화는 팩트를 전달하려는 이보영의 사리대화로 시작했는데, 이상윤은 사실을 파악하는데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이보영이 그 일로 얼마나 힘들었는지 어떤 것을 원하는 지로 바로 들어가는 심정대화를 한 것인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상윤은 언어로만 심정대화를 한 것이 아니라 손수건을 꺼내 이보영이 다친 곳을 닦아줬고 그 손수건을 이보영에게 전달함으로써 행동으로 심정대화를 하는 수준 높은 의사소통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이는 같은 대화를 하면서도 어떻게 상대방의 마음을 얻을 수 있고 시청자들을 감동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귓속말’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기에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내면심리가 모두 중요한데, 사리대화와 심정대화를 오가는 이보영과 이상윤의 대화는 드라마를 지나치게 목적 지향적으로 흐르게 하지도 않고, 감정에만 치우치게 만들지도 않는다.
만약 연인이나 부부가 사리대화와 심정대화를 원활하게 오가며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면, 상대를 배려하기 위한 특별한 노력이나 행동 없이도 서로 행복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역으로 생각하면,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과 행동이 전제돼야만 사리대화 속에서도 심정대화를 할 수 있고, 심정대화를 하면서도 사리대화를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할 수도 있다.

◇ 작고 낮은 목소리로 직면하게 만드는 방법, 그 강력한 힘을 실감하며
‘귓속말’ 제10회 리뷰에서는 그간 나지막하게 전달한 이야기가 얼마나 큰 파급력을 지니는지에 대해 언급했었다. 이번에는 그 나지막하게 전달한 이야기를 ‘직면’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귓속말’ 제8회 방송에서 “강정일 팀장, 조심해”라고 이보영이 박세영(최수연 역)에게 한 이야기는 박세영 마음의 근본을 흔드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제9회에서는 “백상구는 믿지 마”라고 이상윤이 박세영에게 말했고, “강정일씨는 연인도 버린 사람이에요”라고 조달환(조경호 역)에게 이상윤은 말했다. 제10회 방송에서는 권율(강정일 역)이 “나도 귓속말이 들리네”라고 하면서 이상윤의 귀에다 대고 “포기해”라고 말했다.

심리학, 상담의 측면에서 보면 이런 모습은 직면이라고 볼 수 있다. 회피하지 않고 핵심에 마주하게 되는 것인데, 작은 목소리로 직면하게 만들 때 거부하기보다는 오히려 피할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을 ‘귓속말’은 무척 흥미롭게 보여준다.
‘귓속말’ 제11회 방송에서는 “후회합니다. 왜 신창호씨의 작은 목소리를 외면했을까?”라고 이상윤이 이보영에게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직면하지 않았던 자신에 대한 반성과 후회를 포함하는 이야기로 이제는 피하지 않고 직면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귓속말’의 제작진이 등장인물 간의 대화와 스토리텔링을 만들 때, 사리대화와 심정대화, 그리고 직면이라는 측면을 명확히 해 콘셉트를 잡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대화에는 사리대화와 심정대화가 원활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귓속말’은 보여주고 있다.
특히, 직면은 강렬할 경우 더욱 영향력이 있다고 추측할 수도 있으나, 작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직면시켰을 때 얼마나 큰 파괴력을 가지는지를 ‘귓속말’이 알려준다는 것은 귓속말이 일종의 최면의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귓속말’ 전체의 대화를 이런 시야로 바라보는 것도 드라마를 즐겁게 볼 수 있는 재미를 높여줄 수 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