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움직임이 역동적이지 않다? 파티가 파티같이 느껴지지 않는다?
‘동백꽃아가씨_La Traviata’(이하 ‘동백꽃아가씨’)에서 ‘축배의 노래’를 부를 때 무대 뒤쪽에 있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보면 파티가 파티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라 트라비아타’ 전반부에서 느낄 수 있는 파티의 정서, 흥분, 떠 있는 분위기를 ‘동백꽃아가씨’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는 ‘라 트라비아타’에서 가장 핵심적인 아리아이고, 갈라 콘서트에서도 많이 등장하는 ‘축배의 노래’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관객들은 아는 노래가 나올 때 더욱 즐거워하며 흥분하고, 그 이후에 공연에 더욱 몰입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축배의 노래’가 본연의 매력을 다 발산하지 못한 점은 무척 아쉽다.

주연을 제외한 합창단과 연기자, 무용수들은 서로 다른 의상이 아닌 단체복 같은 의상을 주로 입었는데, 체형이 드러나지 않은 한복이 주는 부풀려진 옷매무새는 많은 사람들로 무대가 너무 많이 채워진 느낌을 줬다.
즐겁게 거닐며 춤추는 흥겨운 파티가 아니라 마치 단체 사진을 찍는 것 같이 빽빽하게 무대를 채운 점은 사진으로 남긴다면 멋있을 수 있겠지만, 무대 공연이 주는 역동감을 느낄 수 없었다는 점은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 긴박하게 스테이지를 변경했으면? 변경 과정에서의 지루함을 줄였다면?
‘동백꽃아가씨’는 오페라극장의 실내공연이 아닌 야외공연이었기 때문에, 무대에는 오르고 내리는 막이 설치되지 않았다. 스테이지의 변경 과정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 변경 과정은 매우 천천히 진행됐고 관객들은 그 모습을 그대로 볼 수밖에 없었다.
너무 지나치게 여유로운 등장과 퇴장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오페라극장에서는 무대 막이 오르내리기 때문에 여유롭게 등퇴장해도 무리가 없지만, 관객들에게 그대로 노출되는 야외공연에서는 발레 무용수들의 빠른 등퇴장처럼 빠른 등퇴장이 이뤄졌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한 장면에서 다른 장면으로 바뀔 때 지루하게 시간을 끌어 관객들이 감정선을 그대로 이어가는 것을 저해했는데, 심지어는 커튼콜에서조차 지나치게 여유로운 등퇴장이 이뤄졌다는 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커튼콜에서 지휘자 파트릭 푸흐니에와 변사 채시라만 극적으로 등장했는데, 패션디자이너 출신의 정구호 연출은 무대는 정말 아름다운데 극적 긴장감은 크지 않고, 관객들은 절대 흥분하지 않는 오페라를 선보인 것이다.

만약 이번 공연이 창작 오페라였으면 그 오페라 자체가 그런 작품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동백꽃아가씨’의 원작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는 우리나라 관객들이 마지막 커튼콜에서 울먹이며 여운을 간직하는 작품이다.
◇ 빈틈이 없이 꽉 짜인 공연, 관객들이 흥분할 공간이 없다
‘동백꽃아가씨’는 절대 못 만든 작품이 아니다. 수준 높은 무대, 독특한 연출을 느낄 수 있는 수작이다. 그런데, 빈틈이 없이 꽉 짜인 공연은 관객들에게 흥분할 공간을 제공하지 않았다.

비올레타가 침대에 누워있는 장면은 관객들의 눈시울을 붉힐 수 있는 장면이다. ‘라 트라비아타’에서처럼 명확한 침대에 비올레타가 누워있지 않고, ‘동백꽃아가씨’에서는 그냥 일반 무대 구조물로 느껴지게 만드는 공간에 누워있었다.
비올레타가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아프다는 게 시각적으로 느껴지지 않았고, 그 장면에서 시중을 드는 한 명만 있으면 되는데 무대 위에 20여 명의 여자 출연자들이 올라왔다는 점은 그 의도에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아무도 없이 쓸쓸하게 죽음을 맞는 처절한 정서를 전달하는 시간에, 오히려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비올레타의 쓸쓸함은 상쇄한 것이다. 알프레도와 제르몽이 죽기 직전의 비올레타를 찾아왔을 때의 극적 감동을 감소시킨 이유가 궁금하다.
물론, 원작의 정서를 그대로 따라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원작에서 가장 고조되는 감정의 시간을 훼손하면서 만든 정서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면 아쉬움이 따를 뿐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