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페나 감독의 <아틱(Arctic)>에서 비행기 추락 사고 이후, 북극에 조난된 오버가드(매즈 미켈슨 분)는 언젠가 구조될 날이 올 것을 믿고 기다린다. 급격히 다가오는 극한의 상황과 서서히 다가오는 극한의 상황이 공존하고, 나를 구해줄 것이라는 기대에서 내가 구해야 한다는 책임으로 정서가 변화한다.
북극을 배경으로 한 극한 생존기 영화를 보면서 간접 경험하는 고통의 강도는 정말 다를 수 있는데, <아틱>은 드라마틱한 소설 같은 영화라기보다는 일기장 같은 영화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생존영화를 보면서 아파하고 눈물 흘리다, 마지막 장면에서 왜 칸국제영화제 상영 당시 10분간의 기립박수가 있었는지 공감하게 된다.

◇ 생존에 대한 기대감이 생존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바뀐다! 감정이입한 관객의 정서도 함께 이동한다!
<아틱>은 영화 초반에 내가 스스로 나를 구할 수 없는 상황을 관객이 공감하게 만든다. 누군가가 나를 구해주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관객 또한 동의하며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저곳에 있다면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해 영화 초반에 오버가드를 보면서 생각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오버가드는 추락한 헬기 속에서 생존자(마리아 델마 스마라도티르 분)를 발견한다. 생면부지의 조난자는 부상을 당해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을 하지도 못한다.

나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 막막한 상황에서 누군가를 보살펴야 한다면? 나를 구해줄 것만 같았던 헬기의 추락과 함께, 영화는 오버가드와 관객들에게 새로운 상황과 질문을 던진다.
그 이전까지는 나의 생존을 위해 살아야 했다면. 이제는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내가 살아야 하는 것이다. 명분과 책임이 주어지니 오히려 적극적으로 행동하게 되는 모습은 인상적인데, 오버가드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사명감과 인간애 그리고 그것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체력이라고 생각된다.

<아틱>은 ‘휴머니즘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드는데, 평상시 인간답게 살 때의 휴머니즘과 극한의 상황에서의 휴머니즘의 적용 자체가 달라질 수도 있다고 느끼게 한다.
◇ 관객에 따라 느끼는 고통의 크기는 크게 다를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고, 한다고 해서 바꿀 수 있다는 기대를 하기 힘든 극한의 상황! 실제 저런 상황에 놓인다면 어떤 감정일까? 무서움, 두려움, 답답함, 외로움, 배고픔, 절망감, 혹은 또 다른 감정 중에서 어떤 감정이 가장 크게 작용할까?

<아틱>은 오버가드가 어떻게 조난됐는지 생략하고 이야기가 전개된다. 위험에 빠지게 된 과정 전부터가 아닌, 위험 상황부터 관객의 감정이입은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이 감정이입하는 오버가드의 감정은 각각 다를 수도 있다. 위험 속에서 오버가드는 무척 침착하다. 나는 저런 상황에서 침착하고 냉정할 수 있을까? 허둥대거나 지레 포기하지 않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아틱>에서 오버가드는 눈앞에 닥친 급박한 위험과 서서히 펼쳐지는 고통을 모두 견뎌야 한다. 어느 시간에서는 지루하다고 느껴질 수 있을 정도로 상황이 천천히 진행된다. 실제로 조난당하면 저런 시간을 겪어야 할 것이다.

관객은 각자의 성향에 따라 그냥 버티면서 시간을 견디는 것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도 있고, 내가 무언가 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는 것 자체를 참을 수없이 힘들어할 수도 있다.
영화를 보면서 간접 경험하는 고통의 강도는 정말 다를 수 있다. 오버가드가 묵묵히 버티는 시간을 관객은 다 다르게 느낄 수 있다. <아틱>이 드라마틱한 소설 같은 영화라기보다는 일기장 같은 영화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오버가드가 매 순간 치열한 생존의 사투를 벌이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본인이 북극에 있는 듯 생존의 사투를 느끼는 관객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대자연 앞에서 인간의 나약함과 위대함을 동시에 보여준 영화! “당신은 혼자가 아니니까 괜찮아요”
<아틱>은 대자연 앞에서 인간의 나약함과 위대함을 동시에 보여준 영화이다. 대자연 앞에서의 무력감과 겸손함을 느끼게 하면서, 동시에 한 명의 인간이 위기 속에서 얼마나 위대해질 수 있는지 희망을 가지게 만든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니까 괜찮아요”라고 오버가드는 반복해서 말하는데, 어린 여자에게 하는 말이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 다짐하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 속 선택의 순간에서, 살리기 위해 살아야 한다면 나는 어떻게 할지 영화를 보면서 계속 생각하게 된다. 이 영화는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주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내 삶이 힘들다고 해도 저 사람보다 절망적일까? 내 삶을 극복하기 위해서 저 사람보다 더 노력하고 시도하기를 반복할 수 있을까? 칸국제영화제에서의 기립박수는 극한의 외적인 상황뿐만 아니라, 오버가드가 전달한 강한 내적 울림이 함께 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