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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갤러리] 교보아트스페이스 “당신과 나, 우리가 사는 동안에-구본주”展 디테일한 역동성

발행일 : 2018-11-28 13:56:04

“당신과 나, 우리가 사는 동안에_구본주”展이 11월 23일부터 2019년 1월 20일까지 교보아트스페이스에서 교보문고 주최로 전시 중이다. 37세의 짧은 생을 살다간 천재 조각가 고(故) 구본주은 인간 존재에 관심이 많았던 작가로 알려져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의 동적인 움직임과 정적 자세 모두에서 디테일한 역동성이 느껴지는데, 실감 나게 표현하면서도 강조하려는 부분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내면의 메시지와 울림 또한 인상적으로 전달된다는 점이 주목된다.
 
◇ ‘지나간 세기를 위한 기념비1, 브론즈, 스테인리스 스틸, 110×20×30cm, 2001’
 
‘지나간 세기를 위한 기념비1, 브론즈, 스테인리스 스틸, 110×20×30cm, 2001’은 보드를 타고 있는 사람의 동적인 움직임을 순각 포착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작품 속 사람은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진 물체를 따라 움직일 수도 있고, 아니면 현재 공중에 떠 있는 상태인데 단지 조각으로 고정시켜 표현하기 위해 스테인리스 스틸이 사용됐을 수도 있다.

‘지나간 세기를 위한 기념비1, 브론즈, 스테인리스 스틸, 110×20×30cm, 2001’. 사진=교보문고 교보아트스페이스 제공 <‘지나간 세기를 위한 기념비1, 브론즈, 스테인리스 스틸, 110×20×30cm, 2001’. 사진=교보문고 교보아트스페이스 제공>

둘 중 어떤 경우라도 중력을 거스르려는 작가의 의지 혹은 중력 자체에 얽매이지 않는 작가의 정신세계가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공중 동작을 할 정도로 역동적으로 보드를 탈 때는, 공기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펄럭거리는 옷을 입지 않고 동작도 보드와 몸이 한 몸이 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그런 일반적인 제약을 극복했거나 무시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적인 에너지가 현실적으로 살아 숨 쉬게 표현됐다는 점이 돋보인다.
 
사람의 팔, 다리, 손, 발이 가늘고 길다는 점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가늘고 길게 표현하면서도 근육과 동작의 디테일을 살려, 단지 동작과 행동만 전달하지 않고 그 순간의 감정과 정서를 전달한다는 점이 주목된다. 실제 전시장에서 다양한 위치와 높이, 각도로 관람할 경우 다르게 보인다는 점을 알 수 있는데, 조각품과 그림자의 느낌이 다를 수 있는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 ‘선데이 서울, 브론즈, 30×27×31cm, 2002’
 
‘선데이 서울, 브론즈, 30×27×31cm, 2002’의 사람 얼굴을 보면 상부보다 하부로 내려올수록 입체적으로 넓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앉아있어서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만 몸통은 상대적으로 굻고 장딴지 쪽 다리는 점점 가늘어지는데, 전체적으로 마름모꼴의 육체를 가진 사람이라고 보인다.

[ET-ENT 갤러리] 교보아트스페이스 “당신과 나, 우리가 사는 동안에-구본주”展 디테일한 역동성

눈보다 입의 크기가 더 크게 강조된 것은 있는 그대로 보는 것보다 말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크다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보이고, 한때는 운동을 열심히 해 팔과 다리에 근육이 많이 있지만 현재는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 몸의 균형이 이전과는 달라진 사람의 외형을 작가는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런 표현의 부분들이 각각의 내면 심리라고 생각하면 작품 속 남자는 작가의 자화상이거나 작가의 내면이 투영된 사람이라고 느껴진다. 브론즈로 이런 물성과 질감, 내면을 표현한 작가의 디테일에 감탄하게 되는데, 만약 10배 정도 큰 작품이었으면 어떤 느낌을 더 강렬하게 전달했을지 궁금해진다.
 
◇ ‘노동, 나무, 45×35×45cm, 1992’
 
‘노동, 나무, 45×35×45cm, 1992’는 나무로 만들어진 사람을 H빔 위에 설치한 작품이다. 걸터앉아 쉬고 있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고 불안하게 앉아 있는 모습은 안전불감증을 염려하게 만들지만, 내 안전을 챙기기보다는 삶의 피곤함에 담배를 피우는 것이 우선인 사람의 고뇌가 느껴진다.

‘노동, 나무, 45×35×45cm, 1992’. 사진=교보문고 교보아트스페이스 제공 <‘노동, 나무, 45×35×45cm, 1992’. 사진=교보문고 교보아트스페이스 제공>

제목이 ‘노동자’가 아닌 ‘노동’이라는 점은 작품에 대한 해석을 달리할 수 있게 만든다. 조각품은 노동으로 지친 사람을 표현하고 있지만, 제목에 사람이 아닌 행위를 붙인 것은, 작가가 사람보다 행위를 먼저 보기 때문이 아니라 행위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사람이 겪고 있는 고통을 덜어주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이 작품은 앞의 두 작품에 비해 9~10년 전에 만들어졌다. 앞의 두 작품에 등장한 인물에 비해 건장한 체격의 남자는 더욱 묵직한 저돌성을 전달하는데, 9~10년 전에는 내면에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가 그 이후에 많이 내려놓았기 때문에 인물 표현이 그렇게 됐을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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