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기의 기록 경쟁이다.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는 지금 두 골프 천재의 위대한 행보에 관심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사상 첫 그랜드슬램과 한ㆍ미ㆍ일 3국 투어 통합 상금왕 기회를 잡은 신지애(30ㆍ쓰리본드)와 사상 7번째 영구시드를 눈앞에 둔 안선주(31ㆍ모스버거)가 주인공이다. 일본 언론은 부상에서 회복한 스즈키 아이(24ㆍ일본)의 2년 연속 상금여왕 도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업계의 관심은 신지애와 안선주 쪽으로 기우는 분위기다.
51년 역사를 지닌 JLPGA 투어엔 아직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선수가 없다.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월드 레이디스 챔피언십 살롱파스컵이 2008년부터 메이저 대회로 승격되면서 4대 메이저 대회 형태를 갖췄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일본여자오픈과 일본여자프로골프선수권대회, LPGA 투어 챔피언십 리코컵이 3대 메이저 대회로 치러졌다.
오사코 다쓰코(66), 모리구치 유코(63), 시오다니 이쿠요(56), 히고 가오리(49ㆍ이상 일본), 투 아이유(64ㆍ대만) 등은 3대 메이저 대회를 전부 우승하고도 그랜드슬램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전설의 골프영웅 히구치 히사코(73ㆍ일본)는 일본여자오픈과 일본여자프로골프선수권을 17차례나 우승했지만, 그가 활동했던 당시는 리코컵과 살롱파스컵이 없었다.

후도 유리(42ㆍ일본) 역시 살롱파스컵만 우승이 없다. 전신인 살롱파스 월드 레이디스 골프 토너먼트(2005)와 니치레이컵 월드 레이디스 토너먼트(2002)에서 각각 우승했지만 그땐 메이저 대회 승격 전이어서 그랜드슬래머로 인정받지 못했다.
현역 선수 중 메이저 3개 대회 우승자는 신지애와 테레사 루(31ㆍ대만), 모로미자토 시노부(32ㆍ일본) 등이다. 테레사 루는 일본여자오픈과 리코컵, 일본여자프로골프선수권에서 우승해 살롱파스컵만 우승하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다. 신지애와 함께 가장 유력한 그랜드슬래머 후보다. 반면 리코컵 우승이 없는 모로미자토는 2009년 이후 우승이 없는 만큼 가능성이 매우 낮다.
신지애의 한ㆍ미ㆍ일 3국 통합 상금왕도 전 세계가 주목하는 대기록이다. 신지애는 2006년부터 3년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상금왕에 올랐고, 2009년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로 무대를 옮겨 한국인 첫 상금왕을 차지했다.

만약 일본에서도 상금여왕에 오른다면 전 세계 남녀 프로골프선수를 통틀어 사상 첫 한ㆍ미ㆍ일 3국 투어에서 상금왕을 경험한 선수가 된다. 신지애는 올 시즌 JLPGA 투어 8개 대회만을 남겨놓은 가운데 안선주(1억2595만1000엔)에 28만8000엔(약 280만원) 차 상금순위 2위에 올라 있다.
2010년 JLPGA 투어에 뛰어든 안선주는 데뷔 첫해 한국인 첫 상금여왕에 올랐다. 이듬해인 2011년에는 2년 연속 상금여왕을 차지한 뒤 슬럼프를 겪었지만 2014년 5승을 달성하며 다시 한 번 상금여왕 자리를 꿰찼다. 올해는 일찌감치 4차례나 우승컵을 거머쥐며 통산 4번째 상금여왕 기회를 잡았다.
안선주는 JLPGA 투어 통산 27승으로 한국인 최다승 보유자이기도 하다. 앞으로 3승만 더하면 통산 30승 이상 선수에게 주는 영구시드도 받는다. 역대 영구시드 획득 선수는 히구치 히사코(69승), 후도 유리(50승), 오사코 다쓰코(45승), 오카모토 아야코(44승), 모리구치 유코(이상 일본ㆍ41승), 투 아이유(대만ㆍ58승) 등 6명뿐이어서 한국은 물론 일본 골프역사에 위대한 골퍼로 기록될 만하다.

두 선수의 대기록은 10수년간 흘린 땀과 눈물의 결정체다. 미국과 일본으로 활동 무대를 옮겨 각각 상금왕에 오른 뒤 슬럼프를 겪기도 했지만 지금의 탄탄한 플레이어로 진화하는 데 있어 디딤돌이 됐다. 두 선수에겐 부상도 슬럼프도 장애가 되지 않았다.
국내 골프팬과 미디어의 무관심 속에서도 일본 현지 기업의 후원을 받으며 일본 골프팬이 더 인정하는 선수로 자리를 잡았다. 안 아픈 곳이 없을 만큼 온몸은 부상병동이지만 두 선수의 열정마저 무너트리진 못했다. 흐릿해진 목표의식으로 힘들어 하는 국내 젊은 선수들에게선 발견할 수 없는 단 하나의 무기, 열정의 힘이다.
![[오군의 재팬 골프 리뽀또] 신지애ㆍ안선주, 세기의 기록 경쟁](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18/10/01/article_01172635653337.gif)
필자소개 / 오상민
골프·스포츠 칼럼니스트(ohsm31@yahoo.co.jp). 일본 데일리사 한국지사장 겸 일본 골프전문지 월간 ‘슈퍼골프’의 한국어판 발행인·편집장 출신이다. 주로 일본 현지 골프업계 및 대회장을 취재한다. 일본 가압골프추진기구에서 골프 전문 트레이너로도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