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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연극] ‘아트(ART)’ 방백을 통한 적극적인 관객 설득, 프로이디안 슬립을 통한 내면의 난처한 표출

발행일 : 2018-02-15 22:43:05

덕우기획이 제작한 Yasmina Reza 원작, 성종완 연출의 ‘아트(ART)’가 2월 8일부터 3월 4일까지 드림아트센터 2관 더블케이씨어터에서 공연 중이다. 누적 관객 20만 명 이상에 달하는 연극으로, 약 10년 만에 대학로로 돌아온 작품이다.

마크(정상훈, 류경환, 안두호 분), 세르주(김결, 김정환, 박세원 분), 이반(김대곤, 장격수, 최원석 분)은 15년 동안 끈끈한 우정을 지킨 친구들이지만, 그림 한 점으로 인해 그간 서로에게 품었던 감정들이 쏟아져 나온다.

‘ART’ 공연사진. 사진=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제공 <‘ART’ 공연사진. 사진=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제공>

◇ 방백을 통한 내면 표현, 적극적으로 관객을 설득하려는 3명의 주인공

‘아트’에서 세 명의 등장인물은 방백(傍白, Aside)을 통해 각자의 내면을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전달하면서, 관객이 자기의 의견을 따르도록 적극적으로 설득한다. 독백(獨白, Monologue)은 등장인물이 무대에서 혼자 자신의 마음 등을 표현하는 대사이고, 방백은 무대 공연에서 등장인물의 말이 관객에게는 들리지만 다른 등장인물에게는 들리지 않는 대사를 뜻한다.

독백을 듣는 관객은 제3자의 입장에서 훔쳐듣기와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고, 방백을 듣는 관객은 배우가 관객 자신에게만 털어놓는 비밀을 듣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방백이 독백보다 더 직접적이고 주도적인 방법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러면서도 고급스러움을 유지하는 것은 배우의 능력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ART’ 공연사진. 사진=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제공 <‘ART’ 공연사진. 사진=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제공>

‘아트’에서 마크, 세르주, 이반은 방백을 통해 모두 각각 관객을 설득하려고 한다. 말다툼에 자기의 입장만을 이야기하며, 본인 주장은 무조건 옳다는 확신을 가진 반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듣더라도 일부분을 잡아서 왜곡하고 비난하는 것을 보면서, 관객은 설득 당하기도 하고 설득을 거부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아트’에서 2명씩 나올 때는 2인극의 느낌을 주는데, 정상적인 대화는 둘이 있을 때도 어렵고, 다른 사람의 말을 이성적으로 존중하지도 않고, 제대로 듣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연극적 설정이라기보다는 실제 삶의 모습의 단면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ART’ 공연사진. 사진=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제공 <‘ART’ 공연사진. 사진=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제공>

◇ 내면을 불안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들

질투심, 이기심, 경쟁의식, 자만심과 자괴감, 열등감, 콤플렉스, 비호감, 진상, 극혐 등 ‘아트’에는 내면을 불안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들과 대화가 많이 있다. 세르주가 흰색 바탕에 흰색 줄이 쳐진 하얀 그림을 돈을 많이 주고 비싼 값에 구입한 것은 마크와 이반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불안감 전달하는데, 세르주가 2억을 주고 그림을 산 이유가 궁금해서 불안한 것이다.

펜의 뚜껑에 집착하는 이반의 모습 등 외적이나 내적으로 집착하는 모습이 연극 속에는 많은데, 이는 관객 또한 집착하게 만들거나 혹은 집착하는 대상을 비난하게 만듦으로써 집중하게 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ART’ 공연사진. 사진=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제공 <‘ART’ 공연사진. 사진=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제공>

◇ 친하다는 이유로, 위한다는 명분으로, 마구 공격하는 사람들! 프로디이안 슬립을 감추지 못한다

‘아트’에서 등장인물들은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도 확신에 차서 이야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의견을 피력하는 게 아니라 판단하는 우월적 지위에 있다고 각자가 생각한다. 어떤 누군가에게는 별거 아니지만,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무척 중요한 문제에 대해 단정해서 말하는 경우가 많다.

세 등장인물은 서로 친하다는 이유, 친구니까 위한다는 명분으로 상대방을 마구 공격한다. 얼핏 들으면 위로해주는 말로 들릴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상대방을 공격하는 말을 들어본 관객은 많을 것인데, ‘아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ART’ 공연사진. 사진=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제공 <‘ART’ 공연사진. 사진=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제공>

‘아트’에서 짜증이라는 단어를 핑계 삼아 사용하면서 내면을 표시하는 것은 프로이디안 슬립(Freudian Slip)에 해당한다. 프로이트의 말실수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억압된 무의식이 의식에 개입해 속마음을 들켜버리는 말을 하는 것을 뜻한다.

실수로 말하는 것도 사실은 말실수가 아니라 내면에 그렇게 생각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프로이디안 슬립인데, ‘아트’에서 프로이디안 슬립을 디테일 있게 따라간다면 정말 깨알같이 내면을 들여다보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ART’ 공연사진. 사진=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제공 <‘ART’ 공연사진. 사진=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제공>

‘아트’에서 전체적으로는 보편적인 정서를 따라가고 있지만, 관객의 성향에 따라서 세부적으로는 덜 와닿는 표현과 장면이 있을 수 있다. 내게는 분명히 웃긴 상황인데 주변 사람들은 진지해서 웃음을 참는 시간이 있을 수도 있고, 다들 웃는데 왜 웃긴지 생각하게 만드는 시간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공통적으로 공감되는 것은 ‘아트’에 참여한 실력파 배우들이 많은 대사량을 진지하면서도 몰입해서 펼치고 있기 때문에 지적 호기심의 자극을 꾸준히 받으며 관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연의 일부를 직접 관객이 참여해 체험할 수 있다면 배우들이 얼마나 연기를 잘하는지, 연극 속 상황들이 현실과 얼마나 닮아있는지 더 깊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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