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민경 감독의 ‘결혼기념일(Wedding Anniversary)’은 2018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상영작인 단편영화이다. 건축과 교수인 최호기(김영성 분)는 결혼기념일을 맞아 아내(김그림 분)와 강원도로 여행을 떠나는데, 전화가 걸려온다. 계속... 걸려온다.

진짜 오랜만에 가는 둘만의 여행에서 지금까지 이뤄놓은 성과가 모두 물거품이 될 수 있는 위기를 맞이하는데, 중간이 없이 펼쳐지는 극과 극의 대비는 최호기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몰입하게 만든다.

<‘결혼기념일’ 스틸사진. 사진=2018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제공>

◇ 최호기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관객에게 계속 던지는 질문

최호기는 양심에 따라 증언할 것인가, 이익을 위해 침묵할 것인가의 선택에 따라 행복한 가정과 일류대학 교수라는 위치를 모두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해 있다. 최호기에게 전화를 거는 한 쪽은 증언을 꼭 해달라고 부탁하며, 다른 한 쪽은 절대 증언을 하지 못하게 협박을 가한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최호기에게 부탁 같은 강요와 강요 같은 부탁을 계속하고 있고, 감독은 관객에게 최호기가 어떤 선택을 하면 좋을지 계속 질문을 던지고 있다. 감정이입하지 않은 제3자의 시선으로 선택하면 무척 쉽게 정할 수 있지만, 내가 진짜 최호기라고 감정이입하면 솔직히 망설이게 된다고 고백하는 것이 솔직할 것이다.

정의와 진리를 선택할 것인가, 이익을 선택할 것인가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뉴스에서 자주 접하는 요즘, ‘결혼기념일’은 엄청난 국가권력의 핵심에 있는 사람이 아닌 개인에게 일어났을 때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생각하게 만든다.

토론 프로그램이나 시사 프로그램이었으면 관객은 자신의 성향에 따라 빠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것인데, 영화는 객관적 시야가 아닌 주관적 감정이입을 하게 만들기 때문에 이런 소재와 주제를 다른 시야로 볼 수 있게 만들면서 이어지는 파급효과는 더 극대화할 수 있는데, ‘결혼기념일’은 그런 영화의 속성을 잘 활용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결혼기념일’ 성민경 감독. 사진=2018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제공>

◇ 상대방이 눈앞에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통화로만 이어지는 갈등의 격발과 고조

‘결혼기념일’에서 최호기에게 전화를 거는 사람들은 그의 앞에 직접 나타나지는 않는다. 최호기는 상대방을 잘 모르고 있고, 얼굴을 보며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요청을 하는 뉘앙스를 정확이 알고 있지는 못하다.

또한, 최호기 옆에는 사건의 전말을 모르고, 앞으로도 모르기를 바라는 아내와 단둘이 있다. 다른 가족들과 함께 있다면 혼자 떨어져 나와 통화를 하면서 적극적인 자기방어와 상대의 의중 파악을 할 수가 있지만, 아내와 단둘이 간 여행이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다.

선택의 최호기가 할 수 있기 때문에 최호기에게 칼자루가 쥐어진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감독은 상대방에게 더 많은 권한을 주고 최호기는 한정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긴장감을 고조한다. 우연한 설정인지 계획된 설정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상당히 똑똑한 설정이다.

통화로만 이어지는 갈등의 격발은 흥미로운데, 최호기의 눈앞에 상대방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관객은 라디오 뉴스를 듣는 것처럼 상상력이 발휘하며 영화에 집중하게 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