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토일드라마 ‘화유기’에서 이승기(제천대성 손오공 역)는 오연서(진선미/삼장 역)를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먹잇감으로 생각하는 것인지 갈팡질팡한다. 좋아하는 것도 금강고 때문인지, 아니면 시작은 금강고였지만 이제는 점차 진심인 것인지에 대해서 이승기는 물론 시청자들도 확신을 갖지는 못하고 있다.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s Theory) 심리학자 도날드 위니콧(Donald Winnicott)의 이론을 적용하면 이승기는 ‘참 자기(true self)’와 ‘거짓 자기(false self)’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있는 것이다.
◇ 대상관계이론, 도날드 위니콧의 ‘참 자기’와 ‘거짓 자기’
위니콧은 자기가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해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을 경우 참 자기를 지키기 위해 거짓 자기를 만든다고 했다. 여기서 참과 거짓은 도덕적인 질서의 옳고 그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본 기질을 충실히 따르느냐를 뜻한다. 기질대로 사는 자기의 모습이 참 자기라면, 사회적 환경 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적응해 사는 모습이 거짓 자기인 것이다.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홍대 거리를 밤에 거닐 때 편안하고 행복한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가지런히 한 채 정돈된 사무실에서 일을 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양복 입고 회사생활을 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기질대로 살고 있지는 못하는 것이다.
참 자기가 기질적으로 타고난 나의 본 모습이라고 하면, 거짓 자기는 참 자기가 보호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 원래의 나의 모습을 감추고 세상이 원하는 대로, 다른 사람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나의 적응된 모습이다.
◇ 참 자기와 거짓 자기의 끊임없는 갈등을 보여주는 이승기
‘화유기’에서 제천대성 손오공의 본 모습은 일단 삼장을 잡아먹는 요괴라고 볼 수 있다. 요괴의 본연적 습성으로 삼장을 잡아먹어야 하는데, 금강고라는 팔찌가 채워지면서 사랑의 족쇄가 돼 삼장을 사랑하게 되면서 잡아먹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요괴라는 참 자기의 모습과 금강고로 인해 삼장을 사랑하게 된 거짓 자기의 모습 사이에서 이승기는 끊임없는 갈등을 보여준다. 세상이 원하는 대로 적응한 모습이 거짓 자기라고 볼 때 이승기를 제외한 모든 대상이 이승기가 오연서를 잡아먹지 않기를 강력하게 바란다는 점은, 오연서를 사랑하는 이승기의 마음이 거짓 자기라는 것을 뒷받침한다.
오연서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금강고를 빼달라고 끊임없이 말하는 것은 거짓 자기와 참 자기의 끊임없는 갈등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랬다저랬다 하는 모습은 변덕이 아닌 내면의 중요한 갈등을 거친 선택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 완전 반대의 상황일 수도 있다!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이 참 자기인데, 요괴의 세계에서 거짓 자기로 살아온 것일 수도 있다!
본지는 이전 리뷰에서 ‘화유기’를 로날드 페어베언(W. Ronald D. Fairbairn)의 ‘분열성 양태(split position)’ 모델에 적용할 때 리비도적 자아와 반리비도적 자아를 완전 정반대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을 제시했었다.
마찬가지로, 이승기의 참 자기와 거짓 자기도 완전히 반대로 적용해 해석할 수도 있다. 일반적인 인간 세상의 대상관계가 아닌 요괴와 인간을 넘나드는 특수한 설정 때문이기도 하다. 관계성을 ‘서유기’에서 가져올 수도 있지만, 설정이 똑같지 않기 때문에 ‘화유기’ 자체에서 관계성을 찾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금강고를 착용하면서 거짓 자기가 생긴 것일 수도 있고, 반대로 참 자기를 찾게 된 것일 수도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흥미롭다. 오연서를 아끼고 보호하는 마음인 참 자기를 이승기는 철저하게 숨기고 있다가, 금강고에 의해 참 자기에 직면하게 된 것이라고 가정할 수도 있다.
요괴로 살면서 삼장은 당연히 잡아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차제가 요괴 세상에 적응하기 위한 거짓 자기였을 수도 있는 것이다. 드라마 회차가 더 진행되면 어떤 것이 맞는지 더 드러날 것인데, 극본을 쓴 홍자매(홍정은, 홍미란)의 의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승기가 오연서의 사랑의 노예인 것이 참 자기라면 드라마적 판타지는 더욱 커질 수 있다. 금강고로 인해 참 자기를 찾았다는 것이 더 아름답고도 개연성 있는 설정일 수도 있다.
다시 한 번 확인하면, 참 자기와 거짓 자기는 도덕적 평가 기준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본래 태어난 기질대로 살고 있는지 사회에 적응하면서 그 기질대로 살고 있지 못하는지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다.
‘화유기’에서 차승원(우마왕 역), 이홍기(저팔계 역), 장광(사오정 역), 이엘(마비서 역), 윤보라(앨리스 역), 성혁(동장군 역)은 모두 요괴의 모습과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어떤 모습이 참 자기이고 어떤 모습이 거짓 자기의 모습인지 살펴보는 것은 드라마를 보는 재미를 배가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질대로 살지 못하고 먹고살기 위해 사회가 요구한 모습대로 살아간다. 시청자들이 요괴와 인간을 오가며 살아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화유기’의 등장인물에 공감하게 되는 것은, 기질대로 살지 못하는 시청자들이 참 많기 때문일 수도 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