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로 명상하기 제작, 안재훈 감독의 ‘소나기(The Shower)’는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황순원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소설의 감동을 기억하는 사람은 알면서 더욱 감동받을 수 있고, 애니메이션으로 처음 접한 관객은 원작 소설을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만드는 감수성이 살아있는 작품이다.
‘소나기’는 스토리텔링과 수채화 같은 영상뿐만 아니라, 음악과 음향효과 또한 아름다운 작품이다. 소설 속에서 동화 같은 영상을 보면서 자연의 소리를 서정적인 음악과 함께 듣는 공간에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 시각화된 감동, 청각의 도움을 받아 펼쳐지는 첫사랑의 이야기
첫사랑은 누구에게나 판타지를 줄 수 있다. 실제 자신의 첫사랑을 떠올릴 수도 있고, 지금 펼쳐지는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처럼 들을 수도 있고, 자신의 기억 속에 제대로 남아 있지 않거나 그리 기억에 남을 만큼 인상적이지 않았던 첫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에 대한 대리만족을 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줄 수도 있다.
‘소나기’에서 지속적으로 들을 수 있는 개울가의 물소리는 잔잔한 영상을 역동적으로 여기게 만들어줘, 소년의 마음에 관객들이 감정이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수채화 같은 영상은 아리아리한 첫사랑의 마음을 시각화된 감동으로 배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사랑에 대한 바보가 없는 시대, 바보 같은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요즘 청소년들에게는 오히려 판타지 같은 이야기
우리는 사랑에 대한 바보가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있더라도 웬만해서는 찾을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회가 고도화되고 사람들이 똑똑해지면서, 자신의 마음도 상처받지 않는 것에 최우선을 둬 선택하기 때문에 바보 같이 멍청한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예전처럼 찾을 수는 없다.
첫사랑은 누구에게도 어설프고, 첫사랑은 누구에게나 미련이 남는 추억을 공유하는 세대에게 ‘소나기’는 아련한 지난날을 회상하게 만들어주는데, 바보 같은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요즘 청소년들에게는 오히려 판타지 같은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다.

과거에 사람들은 어떤 사랑을 했는지 이야기하면 고리타분한 이야기라고만 받아들일 수 있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소나기’를 같이 관람한 후 솔직 담백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 삐까뻔쩍한 여행지가 아닌, 그냥 평범한 자연 속으로 여행 가고 싶게 만드는 작품
‘소나기’를 보고 있으면 삐까뻔쩍한 여행지가 아닌 그냥 평범한 자연 속으로 여행 가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줄 것이라고 느끼게 된다. 영화 속 소년처럼 소를 한 번 타보면 어떨까에 대해서도 상상하게 된다.

만약 ‘소나기’가 3D 애니메이션이었으면 이런 감성이 전달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인데, 애니적 감성이 영상 속에 제대로 녹아있기 때문에 이런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길 수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 비 내리는 장면, 손잡고 달리는 심쿵한 순간, 수숫단 안쪽으로 비를 피하는 낭만적인 시간
비 내리는 장면에서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의 손을 잡고 달리는 순간은 많은 사람들을 심쿵하게 만든다. ‘소나기’에서 소년은 함께 수숫단 안쪽으로 비를 피하고, 물이 불어나 징검다리가 없어진 개울가를 건너기 위해 소녀를 업는데, 비 내릴 때 손잡고 뛰는 어른들의 모습보다 더욱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실제로 황순원문학촌의 소나기마을에 가면 수숫단 아래로 비를 피하는 체험을 할 수 있는데, ‘소나기’에서 소나기는 상징적인 의미와 추억의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수숫단 아래로 비를 피할 때 어떤 느낌이 들지 궁금해진다.
요즘 아이들과 청소년들은 ‘소나기’를 보면 어떤 마음이 생길까? 첨단에만 익숙해진다는 것은 앞으로 나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고, 소중한 것을 많이 놓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더욱 풍요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소나기’를 관람한 한 어른이 느낀 마음의 여운이자 바람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