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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연극] ‘기린의 뿔’ 눈앞에서 사극 드라마를 라이브로 보는 듯한 연극

발행일 : 2017-06-10 20:33:48

극단 김태수레퍼토리 9주년 기념공연 ‘기린의 뿔’이 6월 9일부터 7월 9일까지 대학로 여우별씨어터에서 공연 중이다. 김태수 작, 이영일 연출의 이번 작품은 역사에 가려진 장옥정(강경헌, 한다연 분)과 김만중(정의갑 분)의 피의 대결을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기린의 뿔’은 사극 드라마를 눈앞에서 라이브로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연극이다. 유배지에서 김만중이 쓴 소설 ‘사씨남정기’가 만든 파장이 숙종실록에 기록돼 있는데, ‘기린의 뿔’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장옥정이 자신을 모함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김만중을 그냥 뒀을 리 없다는 작가적 상상에서 시작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기린의 뿔’ 공연사진. 사진=후플러스 제공 <‘기린의 뿔’ 공연사진. 사진=후플러스 제공>

◇ 사극 드라마를 눈앞에서 라이브로 보는 듯한 연극

‘기린의 뿔’에서 장옥정 역을 맡은 강경헌의 강경헌 표독한 연기는 마치 사극을 직접 눈으로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장옥정의 빠른 대사에 대해 강경헌은 뛰어난 대사 전달력을 보여줬다.

연극 무대는 드라마와는 달리 연극적 톤의 대사를 사용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물론 최근에는 마이크를 사용해 드라마적 혹은 영화적 대화톤을 구사하는 연극도 있지만, 사극 연극인데 마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는 점은 독특하다.

‘기린의 뿔’ 공연사진. 사진=후플러스 제공 <‘기린의 뿔’ 공연사진. 사진=후플러스 제공>

‘기린의 뿔’은 화려한 소품을 사용하지 않았고, 코미디적 요소를 거의 포함하지 않은 사극이기 때문에 배우들의 연기가 무척 중요하다. 과하게 질주하지 않고 일정 범위 내에서 절제된 연기를 보여준 강경헌을 보면, 장옥정이 실제로 강하기만 한 캐릭터였을까, 아니면 내숭도 잘 떠는 캐릭터였을까에 대해 궁금함이 생긴다.

김기령(대비, 궁녀, 막심 역), 정용술(백세부, (후)도승지 역), 김건(장희재 역), 이석엽(김진규, (전)도승지 역), 오승준(전기수, 송시열 역)도 무대에서 진지하게 연기를 펼친다는 점도 주목된다.

‘기린의 뿔’ 공연사진. 사진=후플러스 제공 <‘기린의 뿔’ 공연사진. 사진=후플러스 제공>

◇ 분노와 화를 외부로 다 표출하지 않고 얼굴 주변에 머물러 있게 한 조춘호

‘기린의 뿔’에서 숙종 역 조춘호는 눈물 연기를 하기 전에 벌써 눈이 빨개진 상태에서 한참 동안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순간적인 감정에 몰입해 배우적 감성과 연기로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니라 진짜 억울하고 화가 나 참을 수 없는 상태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진정성이 관객석까지 전달된다.

조춘호는 대사를 하면서 좌우로 왕복해 걷기도 하는데, 움직임에 따른 몸의 방향, 얼굴의 방향이 한 곳을 향하지 않고 티 나지 않으면서도 계속적으로 변화해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 육성으로 진행되는 연극 무대에서 관객들이 관객석의 위치와 상관없이 골고루 잘 들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점이 돋보였다.

‘기린의 뿔’ 공연사진. 사진=후플러스 제공 <‘기린의 뿔’ 공연사진. 사진=후플러스 제공>

조춘호의 표정 연기를 보면 더욱 흥미로운 점을 찾아낼 수 있다. 조춘호는 분노와 화를 외부로 다 표출하지 않고 얼굴 주변에 머물러 있게 하는 오묘한 표정 연기를 소화했다. 장옥정과 김만중이 작품의 메인 주인공이기 때문에 숙종을 그 이상으로 부각하지 않으면서 캐릭터 표현이 정해진 곳까지 최선을 다해 표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숙종이 장옥정에게 휘둘리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면도 지니고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장옥정에게 밀착돼 있지만 중립과 평정을 지키려고 노력한 측면이 숙종에게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런 조춘호의 표정 연기는 숙종이 장옥정을 내칠 수도 있다는 암시의 역할도 하고 있는 것이다.

‘기린의 뿔’ 공연사진. 사진=후플러스 제공 <‘기린의 뿔’ 공연사진. 사진=후플러스 제공>

◇ ‘기린의 뿔’을 살릴 수 있는 배우는 의외로 ‘조춘호’이다?

우리나라 관객들이 정말 좋아하는 관람법 중 하나는 감정이입이다. 특히 여자 관객의 경우 멋진 여자 캐릭터 자체에 감정이입하거나 멋진 남자 캐릭터의 상대역 여자 캐릭터에 감정이입하는 경우가 많다. 남자 캐릭터가 여자 캐릭터를 안아주는 장면에서 감정이입한 관객은 포근함과 설렘을 느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린의 뿔’에서 김만중은 정의를 위해 목숨도 불사하는 인물이지만 극 중에서 여인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장면이 없다. 극 중에서 사랑하는 여인이 없고 따라서 관객은 김만중의 사랑을 받는 여자 캐릭터 자체가 없기에 그 사람이 돼 감정이입할 수도 없다.

‘기린의 뿔’ 공연사진. 사진=후플러스 제공 <‘기린의 뿔’ 공연사진. 사진=후플러스 제공>

숙종의 경우 장옥정에게 휘둘리는 모습과 장옥정을 아끼며 사랑하는 모습을 모두 다 보여주는데, 장옥정의 행동의 잘잘못 여부를 떠나 ‘기린의 뿔’에서 숙종은 여자의 말을 들어주고 또한 애정을 전달해주는 유일한 인물이다.

‘기린의 뿔’에서 장옥정 역은 강경헌과 한다연, 두 배우가 맡고 숙종은 조춘호 배우가 원캐스팅됐는데, 조춘호가 공연 회차에 따라 강경헌, 한다연을 얼마나 사랑하는 눈빛으로 대하는지에 따라 감정이입한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기린의 뿔’ 공연사진. 사진=후플러스 제공 <‘기린의 뿔’ 공연사진. 사진=후플러스 제공>

역사적 사실을 진지하게 다루고 있는 작품이고 코미디적 요소도 거의 찾아볼 수 없기에, 조춘호가 만들 수 있는 감정이입하고 싶은 정서는 1달 동안 계속될 ‘기린의 뿔’에 대한 입소문의 좋은 재료가 될 수 있다.

‘기린의 뿔’에서 조춘호가 강경헌을 바라볼 때 강경헌을 바라본다고 생각하지 않고 강경헌에 감정이입된 관객을 바라본다고 진정성 있게 임한다면, 한다연을 감쌀 때 한다연을 감싼다고 생각하지 않고 한다연에 감정이입된 감정을 감싸 안는다고 진실되게 다가간다면, 관객들은 진한 카타르시스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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