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슴 시린 사랑을 담담하면서도 현실적으로 표현한 옥주현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프란체스카 역의 옥주현은 로버트 역의 박은태와 만난 후 장면이 바뀌지 않았는데 바지를 입고 있다가 원피스로 옷을 갈아입고 나온다. 갈아입고 나온 원피스 드레스는 크게 화려하지도 않지만 프란체스카의 내면의 흔들림을 표현하는데 결정적인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이런 디테일을 눈치챈 관객도 있을 것이고 눈치채지 못한 관객도 있을 것인데, 실제로 프란체스카의 마음은 이때부터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 언제부터 끌리게 됐을지는 주변 사람들뿐만 아니라 당사자들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작정하고 누군가를 만난 게 아니라, 거역할 수 없는 감정으로 사랑이 찾아왔다면 그 순간 그 시간 그 감정은 서술적이기보다는 이미지적으로 기억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옥주현은 자연스러운 대사와 연기를 보여줬다. 뮤지컬이기 때문에 뮤지컬의 노래인 뮤지컬 넘버를 부를 때와 소리와 감정선의 톤을 유지하기 위해 마이크를 사용하긴 했지만, 옥주현은 이제 가수라기보다는 진정한 연기자라고 느껴졌다.
가요의 노래 방법과 뮤지컬의 발성 방법은 다른데, 옥주현은 노래를 뮤지컬식으로 잘 소화하는 것을 넘어, 뮤지컬 넘버와 함께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는 것을 넘어, 이제는 노래를 부르지 않고 연기만 할 때 어떨까 궁금해질 정도로 뛰어난 연기력을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발휘했다. 옥주현을 연극 무대에서 만난다면 어떨까? 새로운 매력이 옥주현의 새로운 아이덴티티로 자리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로버트를 만나고 나서 삶이 다시 활기차고 의미 있어진 프란체스카의 설렘, 판타지, 흔들림, 기대 그리고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을 옥주현은 정말 기혼의 연기자처럼 소화했다.
완전히 세파에 찌든 기혼자도 아니고 여유와 수줍음을 동시에 가진 여자를 표현했는데, 워킹맘이 많고 워킹맘이 아니더라도 자신을 가꾸는 것도 소중하게 여기는 주부들은 시대이기 때문에 옥주현이 연기한 프란체스카를 보고 나와 같다고 생각하는 여자들도 많을 것이다.
차를 탔을 때 박은태가 수통을 차 뒷자리에서 꺼낼 때 옥주현은 움찔하며 놀라는 모습을 표현했는데, 설렘과 떨림의 디테일을 표현한 점이 돋보인다. 연출의 세밀한 디렉팅인지 자신이 해석해 발휘한 연기력인지 궁금할 정도로 뛰어난 이런 디테일은 프란체스카와 로버트의 미묘한 심리를 더욱 빛나게 만들고 있다.
◇ 인터미션 후 분위기를 전환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인터미션 전후의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인터미션 전에 소극장 뮤지컬 다운 담담함이 있었다면 제2부는 시작부터 화려하게 관객들의 시선을 끌었다.
로버트의 전처 마리안과 프란체스카의 언니 키아라의 1인 2역을 맡은 유리아의 뮤지컬 넘버도 제1부와 제2부가 확연히 다른 색깔을 나타냈는데, 진지함 속에 피로감이 쌓이지 않게 분위기를 전환한 모습이 주목됐다.
등장인물들이 원형 대형으로 안무를 펼친 시간이 있었는데, 관객석을 바라보며 안무를 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들끼리 원형의 중심을 바라보면서 안무를 한다는 점이 독특했다. 보여주기를 꾀한 안무가 아닌 바라보기를 유도한 안무.
제1부에서는 마지가 프란체스카의 집을 몰래 훔쳐봤고 그 장면을 다시 관객들이 봤다면, 제2부에서는 자신들끼리 펼치는 안무를 관객들이 제3자처럼 쳐다보는 시간을 만든 것이었다. 관객을 감정이입시켰다가 객관적 위치에 가도록 하는 것을 반복함으로써 거부감과 지루함을 못 느끼게 하며 더욱 몰입하게 만든 연출이 돋보였다.
박은태의 뮤지컬 넘버도 제1부와 제2부가 다른 톤을 보여줬는데, 절절한 뮤지컬 넘버가 끝나도 관객들은 박수조차 치지 못하고 슬픔 속에 몰입해야만 했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슬픔 속으로 그보다도 더 깊은 마음속으로 관객들을 끌고 들어갔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대해 관객들은 성향에 따라 극명하게 다른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프란체스카와 로버트의 사랑이 이뤄졌으면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그리고 관객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까?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가진 사람들은 많을 것이기 때문에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대한 찬성 유무를 떠나서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슬픈 사랑 속에서 박수치고 환호할 것 같은 시간에 눈물을 펑펑 흘리며 카타르시스를 여운으로 길게 남길 수 있는 작품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