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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뮤지컬] 누가 가장 힘든 사람인가? ‘뮤지컬 밑바닥에서’

발행일 : 2017-03-16 13:13:11

NCC 제작, 왕용범 연출의 ‘뮤지컬 밑바닥에서’가 3월 9일부터 5월 21일까지 학전 블루에서 공연 중이다.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창시자, 러시아 대문호 막심 고리키의 희곡을 뮤지컬로 승화한 이 작품이 10년 만에 다시 대학로 관객들을 찾아왔다.

‘뮤지컬 밑바닥에서’는 소극장 뮤지컬로 생생한 뮤지컬 넘버와 강렬한 연극적 움직임을 눈앞에서 만끽할 수 있는 공연이다. 러시아 사람들의 이야기이지만, 등장인물 중 한 명은 나인 것 같고, 나와 같지는 않더라도 그때의 감정은 내 감정인 것 같이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작품이다.

‘뮤지컬 밑바닥에서’ 공연사진. 사진=쇼온컴퍼니 제공 <‘뮤지컬 밑바닥에서’ 공연사진. 사진=쇼온컴퍼니 제공>

◇ 강력한 연극적 움직임, 소극장 뮤지컬의 묘미를 진하게 느낄 수 있는 공연

‘뮤지컬 밑바닥에서’는 동시다발적인 움직임과 노래로 공연을 시작한다. 마치 근대 러시아의 어느 술집에 진짜 들어간 것처럼, 한눈에 모든 것이 다 정리되지는 않게 시작한다.

최근에는 뮤지컬뿐만 아니라 마이크를 사용하는 연극 또한 드라마처럼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경향이 있는데, ‘뮤지컬 밑바닥에서’는 강렬한 연극적 움직임을 보여준다는 점이 주목된다.

‘뮤지컬 밑바닥에서’ 공연사진. 사진=쇼온컴퍼니 제공 <‘뮤지컬 밑바닥에서’ 공연사진. 사진=쇼온컴퍼니 제공>

싸친(김대종, 조순창 분)이 배우(이승현, 박성환 분)를 때리는 장면은, 영화처럼 진짜 때리는 리얼한 연기를 보여준다. 때리는 흉내만 내는 경우 관객이 몰입된 감정에서 순간 빠져나올 수 있는데, 진짜 때리기 때문에 관객의 성향에 따라서 때리는 혹은 맞는 느낌을 실감 나게 받는다.

정제된 군무와 부드러운 연기의 뮤지컬에 익숙해 있는 관객에게 ‘뮤지컬 밑바닥에서’는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이내 무척 신선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뮤지컬 밑바닥에서’를 보는 관객은 복합 무대 공연 다운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뮤지컬 밑바닥에서’ 공연사진. 사진=쇼온컴퍼니 제공 <‘뮤지컬 밑바닥에서’ 공연사진. 사진=쇼온컴퍼니 제공>

◇ 그중 한 명은 나인 것 같은, 최소한 그때의 감정은 내 감정인 것 같은 이야기

나타샤(김지유 분)를 만나고 나서 “나도 좀 사람답게 살아보자”라고 말하는 페페르(최우혁 분)는 희망과 현실 사이에서 발버둥 친다. 페페르는 항상 위태위태한 생활을 하고, 밝아 보이는 나타샤는 위태로운 분위기에 새로 놓인 인물이다. 김지유가 뮤지컬 넘버를 시원시원하게 소화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당당하지만 자신을 업신여기는 눈길을 감당해야 하는 나스짜(임은영 분), 많은 것을 가진 것 같지만 진정으로 채울 수 있는 것이 항상 부족한 백작(김은우 분), 중요한 일원이지만 존재감이 크게 보이지 않는 조프(김태원 분), 보호를 받는 것 같지만 무리에 제대로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막스(이윤우, 이지훈 분)는 우리 주변의, 우리의 단면일 수 있다.

최우혁(페페르 역), 김지유(나타샤 역), 서지영(타냐 역). 사진=쇼온컴퍼니 제공 <최우혁(페페르 역), 김지유(나타샤 역), 서지영(타냐 역). 사진=쇼온컴퍼니 제공>

‘뮤지컬 밑바닥에서’의 등장인물을 보면 그중 한 명은 나와 같다는 생각을 할 수 있고, 캐릭터 전체가 아닐지라도 최소한 어떤 순간에서의 감정은 내 감정과는 같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원작자 막심 고리키의 힘이기도 하고, 무대에서 구현한 연출과 배우들의 힘이기도 하다.

◇ 누가 가장 힘든 사람인가? 가장 많이 추락한 배우와 바실리아일까? 고통 앞에 선 페페르와 타냐일까?

‘뮤지컬 밑바닥에서’에 등장하는 인물 중 가장 힘든 사람은 누구일까? 극의 내용상 외적으로 힘든 것과 내적으로 힘든 것은 혼재돼 있다. 이 작품은 모든 캐릭터가 아픔과 고통을 가지고 있다. 삶을 적나라하게 부각하고 있기 때문에 유쾌하게 관람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승현(배우 역), 박성환(배우 역), 임은영(나스짜 역). 사진=쇼온컴퍼니 제공 <이승현(배우 역), 박성환(배우 역), 임은영(나스짜 역). 사진=쇼온컴퍼니 제공>

백작을 대신해 감옥에 들어갔다가 갓 출소한 페페르는 캐릭터 표현에 “난 불쌍하지 않아”라는 반어적인 의미를 전달할 정도로 힘든 인물이다. 사랑했던 여자는 자신이 감옥에 갔을 때 백작과 결혼하고, 출소 후 만난 나타샤와의 사랑도 쉽지 않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슬퍼도 제대로 슬픔을 나눌 수 없는 타냐(서지영 분)가 가장 불쌍해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타냐와 페페르 주변에는 그들을 아끼는 사람들이 있다. 힘들지만, 나를 지지해주고 내 곁에 머무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김대종(싸친 역), 조순창(싸친 역), 김은우(백작 역). 사진=쇼온컴퍼니 제공 <김대종(싸친 역), 조순창(싸친 역), 김은우(백작 역). 사진=쇼온컴퍼니 제공>

한때 다른 사람들에게 집중적인 사랑을 받았으나 추락한 인물로는 배우와 바실리아(안시하 분)가 있다. 극 중 배우 역을 더블 캐스팅으로 맡은 이승현과 박성환은 실제로 무대 속에서 맞기도 하고, 업신여김을 당하기도 한다. 현재 다른 사람들에게 이용당할지라도 배우 존재 자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있다.

바실리아의 경우 사랑했던 페페르가 감옥에 가자 배신을 하고 백작 부인이 됐으나, 이제는 백작의 사랑이 아닌 무시를 당한다. 바실리아 역의 안시하는 무대에서 육체적으로는 내동댕이 당하고, 자신의 추락을 다른 사람들이 비아냥대는 언어적 고통을 당한다.

김태원(조프 역), 이윤우(막스 역), 이지훈(막스 역). 사진=쇼온컴퍼니 제공 <김태원(조프 역), 이윤우(막스 역), 이지훈(막스 역). 사진=쇼온컴퍼니 제공>

‘뮤지컬 밑바닥에서’는 여자 관객들이 많은데, 바실리아 캐릭터는 다른 여자 캐릭터들보다 미움을 받을 가능성이 많기에 관객들의 사랑과 환호도 상대적으로 작을 수 있다.

모든 등장인물이 아픔과 고통을 가진 ‘뮤지컬 밑바닥에서’ 중에서도 가장 힘든 역할은 바실리아일 것이다. 모든 다른 배우들과 관객들 모두 극에 감정이입하기 때문에, 안시하는 내용상으로도 무대 위에서도 가장 큰 외로움과 쓸쓸함을 겪어야 할 수도 있다.

‘뮤지컬 밑바닥에서’ 안시하(바실리아 역). 사진=쇼온컴퍼니 제공 <‘뮤지컬 밑바닥에서’ 안시하(바실리아 역). 사진=쇼온컴퍼니 제공>

매우 특별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세상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힘들고 아프다. 그렇지만, 그중 많은 사람들이 아픔과 슬픔을 같이 공유하고 위로할 사람들이 있다. 소외된 사람들 중에서도 소외된 사람,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 중에서도 내면적으로도 누군가의 위로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는 분명히 있다. ‘뮤지컬 밑바닥에서’의 깊은 울림은 주변을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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