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주 감독의 ‘기념사진’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상영작인 단편영화이다. 영화는 숨 가쁘게 뛰는 발자국 소리로 시작한다. 누군가에게 빠르게 달려가고 싶지만 달려가지 못하는 마음의 안타까움을 영화는 담고 있다.
◇ 수줍고 설레는 여학생의 내면
‘기념사진’은 수줍고 설레는 여학생의 내면을 담고 있다. 수줍은 여학생이라고 하면 여중생이나 여고생, 혹은 초등학생을 상상할 수 있지만, ‘기념사진’의 여학생은 여고생도 아닌 여대생의 내면을 담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시대는 빠른 변화를 통해 조숙해졌지만, 여대생과 사회인이 돼도 수줍은 사람들은 존재한다. 여중생, 여고생의 설렘을 담지 않고 여대생, 사회인의 수줍음을 담은 ‘기념사진’이 더 현실적으로 보이는 점은 흥미롭다.
‘기념사진’의 카메라는 예리(김민하 분)를 따라간다. 기념사진을 찍는 장면에서는 정면에서 바라보지만 그 이전에는 옆에서 또는 뒤에서 따라가는 장면이 많다.

◇ 결혼식 기념사진에 찍힌 사람들 사이에는 어떤 사연이 숨어있을까?
‘기념사진’은 결혼식 기념사진 안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 어떤 사연들이 숨어있을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다. 결혼 상대는 모르는 옛 애인이 있을 수도 있고, 아직도 얽혀 있는 관계의 인물이 포함됐을 수도 있다.
“남는 것은 사진밖에 없다”라는 표현이 영화 속에서도 나오는데, 사진 속에는 숨겨진 사연들도 남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기념사진’을 보면서 사진에 찍힌 사람들의 표정 속에서 관계와 사건들을 추론할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해본다.

‘기념사진’에서 예리, 신랑(장율 분), 신부(김시은 분)가 나란한 자리에 설 수 있도록 위치를 조정하는 사진 기사(김승철 분)의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만든다. 혹시나 하는 마음과 설마 하는 마음을 절묘하게 조합한, 감독의 미묘한 연출이 돋보인다.
◇ 장율이 남기고 간 시계의 의미
장율이 놓고 간 시계는 비록 유리가 깨졌지만 아직도 알람 기능이 남아있는 전자시계이다. ‘기념사진’에서 알람은 내 마음을 깨우기도 하지만, 내 마음을 들키게 만들기도 한다.

장율이 남기고 간 시계의 유리가 깨졌다는 것, 시계의 시각이 00초가 아닌 01초였다는 것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상상하게 된다. 영화 초반 예리가 달려간 이유는 영화가 끝날 때쯤이면 선명하게 알 수 있다.
동화 같은 영상 속 가슴 아픈 사랑은 닫힌 캐비닛에 남은 깨진 시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기념사진’은 상상 속 시나리오일 수도, 감독의 직간접적인 경험에 근거했을 수도 있다.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감정선을 계속 유지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