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연 피아노 리사이틀 ‘늦가을에서 겨울 문턱으로’가 11월 16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공연됐다. 라모의 ‘클라브생 모음곡집’과 슈베르트의 ‘악흥의 순간’, ‘방랑자 환상곡’이 연주됐는데, 같은 프로그램으로 18일 유스퀘어문화관 금호아트홀에서 무대에 다시 오를 예정이다.

◇ 라모 ‘클라브생 모음곡집’
라모의 ‘클라브생 모음곡집’은 ‘알라망드’부터 ‘가보트와 6개의 변주곡’까지 7개의 모음곡으로 연주됐다. 김규연은 넘치는 에너지에 부드러움을 겸비한 피아니스트이다. 질주하는 부분의 연주에서 심취하여 몰입하는 모습이 인상적인데, 이번 공연에서도 그런 매력을 보여줬다.
세 번째 모음곡인 ‘사라방드’를 연주할 때, 김규연은 특유의 행복한 표정으로 피아노와 함께 했다. 무대에서 피아노를 연주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표정을 보여줬는데, 긴장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마구 즐기기만 하는 것도 아닌, 몰입했을 때의 넘치는 행복감을 연주와 표정으로 관객들에게 전달했다.

그녀는 자신의 피아노 연주에 스스로 도취됐을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나르시시즘으로 표현한다면, 김규연의 나르시시즘은 자아도취라기보다는, 자기감동이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들은 자신의 연주에 심취할 수 있다는 것은, 수준급의 연주를 하면서 악보와 소리를 전부 자신의 색채로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빠른 템포의 곡을 연주할 때 몸을 피아노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김규연의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세계의 손’에서 기교적 빠름 속에 서정적 리듬이 들어간 시간에는 음악과 표정 모두 악센트와 부드러움을 오가는 완급조절을 보여줬다. 김규연의 연주를 직접 들으면 스케일이 큰 연주자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안에 강렬함과 부드러움을 다 넣을 수 있고, 기교 있는 빠른 연주를 하면서도 손가락이 살아있을 수 있는 것이다.

김규연이 빠른 곡을 연주할 때는 연주를 따라가기 버거운 상태도 아닌, 그렇다고 절제하지 않고 앞서나가는 것도 아닌, 딱 맞는 옷을 피트가 돋보이게 입은 듯 연주한다. 타고난 재능도 있겠지만, 쉬지 않고 손가락을 굴리는 연습과 노력의 결과로 생각된다.
◇ 슈베르트 ‘악흥의 순간’
슈베르트의 ‘악흥의 순간’은 곡의 제목처럼 훅 들어갔다가 빠져나오는 연주가 펼쳐지는데, 김규연은 완급조절시에도 부드러움을 유지했다. 그녀의 내면에는 2가지 감성이 공존하는 것으로 느껴지는데, 질주하는 광기와 부드러운 연결을 조화롭게 연주로 승화시킨다. 김규연은 연주를 분산시키지 않고, 음을 모아가는 피아니스트라고 할 수 있다.

제3악장을 연주하면서 김규연은, 아기를 쳐다볼 때 사람들이 아기와 같이 빵긋 웃는 것처럼, 연주에 몰두해있으면서 피아노를 보고 빵긋 웃는 표정을 짓는다는 것이 흥미롭다. 느린 선율에서는 다른 아티스트들처럼 심오한 표정을 짓지만, 빠르고 격정적인 질주에서의 미소 짓는데, 이것 또한 완급조절과 연관하여 볼 수 있다.
◇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
김규연은 자리에 앉자마자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 제1악장의 빠른 연주를 시작했다. 이 곡은 ‘빠르지만 지나치지 않게’, ‘느리게’, ‘매우 빠르게’, ‘빠르게’의 4악장으로 구성된 곡으로 점층적 몰입을 통해 뒷부분으로 갈수록 빠르고 현란한 기교를 보여주는 곡이다.

공연이 끝난 후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로 보이는 관객들 중에는 ‘방랑자 환상곡’을 연주해야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곡 자체의 매력도 있지만, 그들은 평소 알던 곡을 김규연의 해석을 통해 새롭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김규연은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박수를 받으며 앙코르곡 연주가 끝난 후에는 더욱 박수와 환호가 커지는 아티스트이다. 직접 연주회를 찾은 관객들에게는 엄청난 호응을 받지만, 일반적으로는 실력에 비해 아직 덜 알려진 피아니스트이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협연하면서도 앙코르 요청에 4곡을 추가로 연주한 적도 있었는데, 그녀의 내면과 실력이 모두 분출될 수 있는 콘서트홀에서의 단독 리사이틀을 기대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