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마평 유래는 하마비에 있다
대소인원개하마(大小人員皆下馬)
신분이 높거나 낮거나 모두 다 말이나 가마에서 내려서 와라. 명령어다. 말에서 내려야 한다. 어디서부터 내리라는 걸까? 아무런 말이 없다. 여기저기 둘러봐도 표지판도 없다. 그런데 내려서 가야만 한다. 예를 갖추고 공경심을 표하며 단정하게 걸어가야 한다. 당상관과 당하관이 내리는 곳이 다르다. 평민은 보이지 않는다. 명백한 신분제 사회였던 600여 년 전 도성 안 모습이다. 하마비는 도대체 어디에 몇 개나 있었던 걸까?
대소인원과차자개하마(大小人員過此者皆下馬)
종묘 앞 정전으로 가기 전 외삼문 앞 하마비가 우뚝 서 있다. 가장 오래된 하마비에는 좀 더 구체적인 말이 적혀있다. 기록에 의하면, 1413년(태종 13) 예조에 건의하여 태종의 허가를 받아 나무에 새겼다. ‘대소 관리로서 신분이 높거나 낮거나 이곳을 지나는 자는 모두 말에서 내려라’고 비석에 쓰여 있다. 내리는 지점도 품계에 따라 다르게 표시했다. 1품 이하는 궐문으로부터 10보, 3품 이하는 20보, 7품 이하는 30보 거리에서 내려야 했다.

종묘 앞을 누가 지나갔을까? 왕과 왕비 그리고 왕족과 고관대작들이 지나갔을 것이다. 중인과 노비는 언급도 없다. 그 당시 말과 가마를 탈 수 있는 사람은 지극히 한정적이었다. 요즘으로 말하면 운전기사 딸린 세단이었을 것이다. 600여 년 전 최고의 교통수단이 말이요, 가마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말을 끈 마부와 가마를 든 가마꾼은 상전이 궁과 궐, 종묘와 성균관에 가는 사이 어디에 있었을까? 그들은 말을 묶어놓고, 가마를 내려놓고 옹기종기 앉아서 물 한 잔 마셨을 것이다. 시원한 차라도 마실 수 있었다면 금상첨화지만 주인을 기다리며 그들만의 대화로 피로를 풀었을 것이다. '어젯밤 거하게 마신 상전의 술집 이야기, 상전이 만난 비즈니스 파트너 이야기와 주인이 머리를 맞댄 뒷이야기'가 무성했을 것이다.

하마비 옆 주차장(?)에서 고급 정보와 뒷담화로 주인장을 평했으니 이것이 곧 '하마평(下馬評)'이다. 종묘 앞, 성균관 앞 그리고 경운궁 금천교 앞에 크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하마비가 있다. 또 어디에 있을까? 도성 밖 효창원에는 하마비동도 있었고, 방학동에는 하마평 마을도 있었다. 도성 안 경운궁 궁담길 따라 걸으면 우리나라 최초 사립 여성 교육기관인 이화학당 정문 앞에 하마비가 서 있다. 120여 년 전 새로운 신식 여학교가 외교의 거리 정동길에 세워졌고, 고종은 신식 학교 이름에 현판을 직접 써 하사했다. 이화학당(梨花學堂) 그곳에 하마비도 세웠다. 무심코 지나치면 보이지 않는다. 길 위에 멈추는 순간 그 곁에 머문다.
요즘 새로운 인물들에 대한 평들이 많다. 하마비를 지키는 사람들이 새로운 리더들에게 기대를 걸기 때문이다. 가을이 깊어 갈수록 새로운 리더들도 경운궁 궁담길처럼 격이 좀 높아지길 기대해 본다.
필자 소개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유엔해비타트 한국위원회 사무차장
-(사)서울아리랑보존회 이사
-‘한양도성에 얽힌 인문학’ 강연자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한양도성 따라 걷는 서울기행’ 저자
-‘한양도성 옛길’ 칼럼니스트
-‘최철호의 길 위에서 찾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