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탕춘대성은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잇는 성곽이다
아침저녁으로 햇살이 그리워지는 10월이다. 찬 이슬에 곡식이 여물 듯 들판에 곡물들을 수확하는 절기다. 밤과 고구마도 이맘때 딱 제철이다. 밤을 삶고 고구마를 챙겨 아침 일찍 길을 나선다. 인왕산과 백악산을 잇는 창의문으로 향한다. 경복궁역에서 내리자마자 눈앞에 산이 펼쳐져 있다. 인왕산 세 봉우리에도 단풍이 살며시 들고 있다. 걸어서 갈 것인가, 차를 탈 것인가? 고민하는 사이 종로에서 구기터널까지 가는 7212번 버스가 멈춘다. 안성맞춤 내리는 곳도 창의문 앞이다. 버스 앞 넓은 유리창으로 보이는 나무 속 바위들이 백악산이다.

윤동주문학관 앞에서 내려 창의문을 향해 걸어간다. 약간 좁고 긴 오르막길이 마치 지네 같다. 언제나 이곳에 오르는 길은 정겹다. 단풍나무와 소나무 숲을 지나면 가장 오래된 성문이 반긴다. 600여 년 된 성문 아래 너른 바위가 반질반질 닳았다. 누가 밟고 다녔을까?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는 성문 앞에서 고개 숙여 예를 갖춘다. 창의문에 걸려 있는 현판을 보는 순간 이곳은 부암동이다. 누가 쓴 글씨일까? 언제나 보아도 힘이 넘친다. 彰義門(창의문) 밝게 의로움을 널리 알리고 싶었던 성문이다.
창의문에서 북악스카이웨이가 있는 언덕 위로 오르니 서쪽에 인왕산이 보인다. 인왕산 정상은 도성 안이요, 인왕산 기차바위는 도성 밖이다. 도성 밖으로 나가 무계원에서 서서히 올라가 본다. 안평대군의 별서로 무계원은 봄에 와야 제격이다. 복숭아꽃이 한창일 때 무릉도원을 꿈꾸며 도성 밖 이곳에 사람들이 모였을 것이다. 지금은 쌀쌀한 바람에 낙엽만 뒹군다.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잇는 서쪽의 성곽으로 향한다. 바위산 정상을 오르는 길을 쉽지 않다. 하지만 숙종을 생각하며 기차바위에 오른다.

창의문 서쪽 도성에서 삼각산 비봉까지 약 5.1km에 달하는 성곽이라 서성이라고 불리었다. 인왕산 기차바위까지 땀을 흠뻑 적히고 오르니 삼각산 족두리봉에서 향로봉 지나 비봉과 보현봉도 한눈에 보인다. 세검정에서 동쪽으로 100m 산봉우리 바위가 봄날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는 탕춘대(蕩春臺)도 눈앞에 있다. 탕춘대 아래 세검정과 홍제천 맑은 물은 한강을 향해 흘러간다. 한양도성의 서쪽 서성이 탕춘대 이름을 따 탕춘대성이 되었다. 탕춘대성과 북한산성은 이와 입술의 관계와 같다고 하더니 기차바위에 오르니 그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숙종의 오래된 숙원사업이 이루어졌다. 탕춘대성을 쌓고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이으니 수도가 완벽하게 감추어졌다. 300여 년 전 탕춘대성과 북한산성 사이 숙종이 친필 편액을 내리니 弘智門(홍지문)이 공식적인 이름까지 되었다.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잇는 탕춘대성까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된다면 서울뿐만 아니라 경기도 너머 전 세계인들에게 자랑스러운 상징물이 될 것이다. 이 가을에 성곽길을 걸어야 하는 이유다.
필자소개/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저자
-‘한양도성에 얽힌 인문학’ 강연 전문가
-한국생산성본부 지도교수
-(사)서울아리랑보존회 이사
-‘한양도성 옛길’ 칼럼니스트
-‘최철호의 길 위에서 걷다’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