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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영화] ‘축복의 집’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카메라의 시선, 현재에 초점을 맞춘 정서

발행일 : 2022-02-12 12:50:55

박희권 감독의 <축복의 집(Dust and Ashes)>에서 영화적 판타지보다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카메라의 시선은, 현재에 초점을 맞춘 영화 전반의 정서와 일맥상통한다. 어두운 화면 속 검정은 다른 색과의 화학적 혼합을 통해 이미지를 바꾸기보다는, 다른 뉘앙스의 색들과의 공존을 보여준다. 이는 영화 속에서 색을 표현하는 방법과 등장인물의 정서를 표현하는 방법이 같은 맥락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효과를 수반한다.

‘축복의 집’ 스틸사진. 사진=필름다빈 제공 <‘축복의 집’ 스틸사진. 사진=필름다빈 제공>

◇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카메라의 시선
 
<축복의 집>에서 카메라의 시선은 영화적 판타지보다는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날짜의 변화를 자막으로 알려주며 지금 현재가 어떤 상황인지 명확하게 전달하려고 한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 그 현재 중에서도 3일간의 현재에 이야기는 집중한다. 해수(안소요 분)의 과거 이야기를 통해 인물의 캐릭터를 구축하는데 크게 집중하지도 않고, 엄마가 세상을 떠나게 된 이유를 알 수 있는 지난날의 이야기도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축복의 집’ 스틸사진. 사진=필름다빈 제공 <‘축복의 집’ 스틸사진. 사진=필름다빈 제공>

따라서 제삼자의 입장에서 사건의 흐름을 이해하려는 관객은 이야기를 채 듣지 못한 것처럼 느낄 수도 있으나, 자신의 이야기처럼 감정이입하는 관객은 누나인 해수의 현재 감정, 동생인 해준(이강지 분)의 현재 감정 자체에 깊게 공감하고 위로하며 그로 인해 위로받을 수도 있다.
 
<축복의 집>에서 해수와 똑같은 상황에 처하지 않았더라도 공감하게 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젠 아이도 아직 어른도 아닌 20대 초반이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를 보며, 종류와 깊이와 크기에는 다소 차이가 있더라도 같은 감정으로 공감하는 관객은 많을 것이다.

‘축복의 집’ 스틸사진. 사진=필름다빈 제공 <‘축복의 집’ 스틸사진. 사진=필름다빈 제공>

자신이 짊어진 삶의 무게에 대해 어른들에게, 그리고 세상에서 크게 평가받지 못한 채 견디고 극복해야 하는 세상의 많은 해수들에게, 영화 속 해수는 억눌러왔던 감정의 분출구가 될 수 있다. 영화 속에서 해수의 극적인 감정 표현이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다는 점 또한 세상의 많은 해수들이 해수에게 공감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 영화 초반 정서를 전달한 색감의 표현은 이미지적 암시일 수 있다
 
<축복의 집>은 영화 초반 구체적인 사건을 보여주기보다는 정서를 이미지적으로 구축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상 속에서 어떤 색을 사용했는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밝을 수만은 없는 이야기를 담으며 감독은 정서를 어둠으로만 채우려고 하지는 않았는데, 이는 현재 등장인물의 양가감정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고 어둠 속에서도 밝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감독의 의지일 수도 있다.

‘축복의 집’ 스틸사진. 사진=필름다빈 제공 <‘축복의 집’ 스틸사진. 사진=필름다빈 제공>

영화는 검은 화면으로 시작하는데 기계음만 들린다. 검정 바탕의 화면이 아닌, 색이 있는 화면으로 시작했더라면 영화의 느낌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영화 초반에 대사보다는 움직임과 소리, 시각적인 면이 더 부각되기 때문에, 관객은 스토리텔링의 전개보다 영화 속 현재에 대한 인식, 인물의 감정에 자연스럽게 더 몰입하게 된다.
 
아침에는 공장에서, 저녁에는 식당에서 일하는 해수는 검정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입고 있는 회색 상의에도 검은색 무늬가 있다. 메고 있는 가방의 끈도 검정이고, 닦기 전 불판의 색도 검정이다.

‘축복의 집’ 스틸사진. 사진=필름다빈 제공 <‘축복의 집’ 스틸사진. 사진=필름다빈 제공>

색채심리학의 측면에서 보면 검정은 모든 빛을 흡수한 색이며, 힘과 권력의 색이고 엄숙하고 절제미가 있는 색이다. 어둠과 죽음, 죄와 악마의 색으로 상징되기도 하고, 세련되고 우아한 아름다움의 색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검정은 화려한 색의 긍정적 의미를 반대로 변화시킨다. 사랑을 상징하는 빨강이 검정과 만나면 미움이 되고, 삶의 즐거움인 노랑과 빨강이 검정과 만나면 이기심이 되기도 한다. 빛이기도 하지만 부정적 의미도 내포한 노랑이 검정과 만나면 이기심이나 거짓과 같이 훨씬 더 강력한 부정적 의미가 될 수 있다.

‘축복의 집’ 스틸사진. 사진=필름다빈 제공 <‘축복의 집’ 스틸사진. 사진=필름다빈 제공>

<축복의 집>에서 빨강과 노랑 같은 화려한 색을 검정과 직접 결합했다면 검정이 가치의 전환이라는 영향력을 주었을 것인데, 검정과 색 자체를 섞지 않고 검정 속에서 혹은 검정의 주변에서 밝은 색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긍정적 정서가 검정의 이미지에 의해 부정적 정서로 바뀐다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긍정적인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영화의 스토리텔링과도 부합한다.

‘축복의 집’ 스틸사진. 사진=필름다빈 제공 <‘축복의 집’ 스틸사진. 사진=필름다빈 제공>

해수가 검정의 불판을 닦고 나니 은색으로 변하고, 불판 옆에서 물을 나올 수 있는 호수의 색은 녹색이다. 음식물 쓰레기를 거르는 도구는 분홍이고, 거른 음식물을 옮겨 담는 통은 짙은 빨강이다.
 
저녁에 해수가 걷는 길은 기본적으로 어두운 검정이지만 밝은 빛이 존재한다. <축복의 집>에서 영화 초반 정서를 이끄는 색은 검정이지만, 검정 주변에 있는 색들은 대체적으로 밝은 색이다.

‘축복의 집’ 스틸사진. 사진=필름다빈 제공 <‘축복의 집’ 스틸사진. 사진=필름다빈 제공>

<축복의 집>에서 검정은 주변의 색을 모두 잡아먹는 색이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꼭 그렇지만은 아닌 색이기도 하다. 이런 색의 조합은 영화 속에서 현재 상황과 앞으로 일어날 일을 시각적으로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상복의 색은 검정과 흰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밝은 조명에서는 검정이 더 부각될 수도 있지만, 명암이 어두운 영화적 화면에서는 흰색이 더욱 부각될 수 있다. <축복의 집>의 영상에서도 그런 모습을 찾을 수 있는데, ‘그 안에 있는 희망’이라는 측면에서 해석해도 타당할 것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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