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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김영란법’ 비웃는 페라리의 ‘거짓말’

발행일 : 2021-07-16 11:42:46
[취재수첩] ‘김영란법’ 비웃는 페라리의 ‘거짓말’

2016년 9월 28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속칭 ‘김영란법’이 시행됐다. 이 법은 공직자를 비롯해 언론인·사립학교 교직원 등 법안 대상자들이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상관없이 1회 100만원(연간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수수하면 형사 처벌(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도록 규정한 법이다. 또 직무 관련자에게 1회 100만원(연간 300만원) 이하의 금품을 받았다면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더라도 수수금액의 2∼5배를 과태료로 물도록 했다.

이 법이 등장하고 나서 언론계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시행 초기에는 구체적인 법률이 정해지지 않아 시승차를 아예 운영하지 않는 업체가 속출했다. 시승차를 제공하는 게 ‘청탁’에 해당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6개월여의 혼란기가 지난 후 시승차는 다시 제공됐다. 주말 이용을 제한하거나, 1박 2일로 기간을 제한하거나, 시승기를 반드시 작성하는 등의 조건을 달아 다시 허용된 것이다. 시승차를 탔으면 시승기를 쓰는 게 당연한데, 이러한 규정을 둔 건 한국 언론계의 뿌리 깊은 ‘폐습’ 때문이었다. 언론사 편집국장이나 산업부장이 골프를 치러가기 위해 주말에 시승차를 빌린다거나, 자동차 출입처를 떠나 다른 파트로 간 기자가 시승차를 달라고 하는 일들이 이 법의 시행을 계기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해외 출장에도 변화가 생겼다. 과거에는 매체 영향력이 강한 언론사나 홍보인과 친분이 두터운 기자에게 배정되던 해외 출장 기회가 기획단계부터 대부분 기자에게 오픈됐다. 방송사나 일간지, 월간지나 온라인 등으로 매체를 구분하고 각기 정원을 정한 후,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추첨으로 출장 가는 기자를 정하는 게 업계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한데, 어렵게 자리 잡은 조치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최근 위법행위를 하는 업체들이 스멀스멀 생겨나고 있다. ‘페라리’ 브랜드와 그 홍보대행사가 대표적이다.

6월에 삼성 스피드웨이에서 열린 2021 코르사 필로타 코리아 <6월에 삼성 스피드웨이에서 열린 2021 코르사 필로타 코리아>

페라리는 이달 중순에 인제스피디움에서 SF90 스트라달레의 시승회를 열고, 고객과 일부 기자들을 초청했다. 하지만 이런 행사가 열렸다는 걸 아는 기자들은 극히 드물다. 초청 과정이 오픈되지 않은 까닭이다. 이에 앞서 지난 6월에는 포르토피노 M과 페라리 로마의 시승회도 열었는데, 역시 소수의 기자에게만 기회를 줬다. 어느 특정 매체는 6월과 7월에 연달아 초청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 홍보대행사 드밀커뮤니케이션의 페라리 메인 홍보담당자에게 “어떤 기준으로 초청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라이프 스타일 매거진 위주로 초청하라는 본사의 지침이 내려왔다“고 답했다. 라이프 스타일 매거진이 아닌 곳도 몇 곳 있더라는 기자의 얘기에 ”그곳은 평소 기자들이 시승차를 달라고 계속 요청을 해온 곳“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초청받은 기자들의 얘기는 달랐다. 평소에 페라리 시승차를 요청한 적이 없었는데, 시승회에 오라는 연락을 받고 참석했다는 얘기다.

페라리는 불과 2~3년 전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 과거 홍보대행사인 ’더 컴퍼니‘가 담당하던 때는 시승회를 열기 전에 ▲운전 경력 ▲서킷 주행 경력 등을 미리 물어보고, 경력이 어느 정도 있는 이들에게 우선권을 줬다.

사실 이는 서킷 초청행사에서 꼭 필요한 과정이다. 운전을 이제 막 시작한 이들까지 무작위로 부를 경우 서킷에서 어떤 사고가 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몇 달 전 인제스피디움에서 진행된 모 수입차 시승회에서는 서킷 인근의 공도를 달리던 차가 도로 아래로 굴러떨어질 뻔한 대형사고가 일어났다. 탑승자는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시승차는 폐차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현재 페라리 브랜드와 홍보대행사의 시승행사 진행은 포르쉐와도 대비된다. 포르쉐는 지난 5월 강원도 고성에서 전기차 ’타이칸‘의 1박 2일 시승행사를 진행하면서 출입기자들에게 고루 참석 기회를 줬다. 코로나 때문에 활동에 많은 제약이 있던 기자들은 강원도의 맑은 공기 아래서 1박 2일 동안 포르쉐 라인업을 마음껏 타봤다.

혹자는 ”시승행사를 안 불러서 이런 소리를 하느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천만의 말씀이다. 지금의 페라리 홍보를 보면 와달라고 애원해도 전혀 갈 생각이 없다. 다만 이렇게 법을 무시하고, 기자들에게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는 걸 도저히 두고 보고 있을 수 없어서다.

드밀 커뮤니케이션은 과거 ’스캣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회사명으로 활동하면서 람보르기니 홍보를 맡았었는데, 이때는 더 심했다. 인제스피디움에서의 시승행사를 ’선착순‘으로 6명에게만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메일이 오자마자 클릭했지만, 대부분 기자는 ’마감됐다‘는 메시지만 볼 수 밖에 없었다.

슈퍼카 시승행사를 선착순으로 받는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서 홍보담당자에게 솔직하게 말해보라고 했더니, 그는 ”사실 라이프 스타일 매거진에 기사가 실렸으면 하는 본사의 오더가 있었다“고 했다. 앞선 멘트와 판박이였다. 바로 그 홍보대행사가 이번에도 같은 방식으로 시승행사를 진행한 것이다.

자동차를 진짜 좋아하고 사랑하는 기자들의 바람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니다. 좀 더 많은 시승차를 타보는 것이 거의 전부다. 그런 소중한 기회가 극히 일부 기자들에게만, 그것도 밀실에서 야합하듯이 초청이 이뤄지는 걸 알고도 넘어가는 건 ’직무유기‘다.

운전을 잘하고 글을 멋지게 쓰는 기자가 영향력이 큰 매체에 글이나 영상을 올려주는 건 홍보담당자라면 누구나 원하는 일일 것이다. 그 심정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투명하지 못하게 일을 처리한다면 강하게 비난받아 마땅하다. 김영란법 입법에 앞장섰던 국민권익위원회도 이러한 위법 행위를 똑똑히 감시하길 바란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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