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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인터뷰] 이헌주 박사, ‘죽음의 위기’ 연구를 통해 깨달은 가장 중요한 삶의 의미

발행일 : 2020-03-09 09:50:32

죽음은 공포이고 불안이다. 죽음은 사람에 대한 슬픔이고 그것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으로 나타난다. “죽음 위기 과정에서의 심리적 경험에 대한 연구”로 올해 연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헌주 박사를 만나 인간관계와 감정적 소통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이헌주 박사. 사진=이헌주 제공 <이헌주 박사. 사진=이헌주 제공>

이하 이헌주 박사와의 일문일답
 
Q1. 안녕하세요?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연세대학교에서 상담코칭학을 공부한 이헌주라고 합니다.
 
Q2. 네, 반갑습니다. 요즘 상담심리학이나 코칭, 더 나아가 인간의 감정과 관련한 궁금증이 많이 있는 것 같아요. 베스트셀러 목록만 봐도 이러한 부류의 책들이 눈에 띄고 강연과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시중에 있는 것 같아요.
 
네, 저도 상담학을 공부하면서 그러한 흐름을 느끼고 있어요. 저는 기업과 대학에서 상담 심리에 관련한 강의를 하고 정부나 지자체에서 스트레스나 감정, 관계에 대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현장에 가보면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주제가 사람 자체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 주제를 잘 들여다보면 대부분은 관계 안에서의 감정에 대한 호기심이 많습니다. 이를 테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사람들을 어떻게 보고 있나?”, “자꾸 사람들의 말에 상처를 받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런 질문의 대부분은 사실상 인간의 정서를 탐색하게 하는 질문이라 할 수 있죠.
 
Q3. 그렇군요. 이헌주 박사님은 인간관계와 감정적 소통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조금 의외에요. 제가 알기론 최근에 박사학위논문을 내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논문 제목이 조금 특이해요. “죽음 위기 과정에서의 심리적 경험에 대한 연구”인데요. 뭐라고 해야 할까?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와 같은 철학적 느낌이 나기도 하고요. 상담 분야 치고는 독특한 것 같습니다(웃음).
 
네, 그렇죠?(웃음)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제 평소 모습이 활발한지라 주변 지인들이 왜 안 어울리게 죽음에 대한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냐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사실 저는 죽음에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죽음이라는 것을 떠올리면 어떤 것이 생각나세요? 아마 질병, 노화, 자살, 소멸, 장례식장 등등이 생각날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것이 그리 유쾌한 주제는 아니죠. 조금 유쾌한 상상을 해볼까요? 이소룡이 쌍절곤을 휘두르는 상황을 생각해보세요. 사실 죽음과 삶은 쌍절곤 같아요. 마치 뫼비우스의 띠 같죠. 휘두를 때 그 둘은 동시에 나타나기도 하고 동시에 사라지기도 하죠.
 
사실상 죽음과 삶은 수미쌍관(首尾雙關)을 이루는 머리와 꼬리와 같이 뗄 수 없는 관계라 여겨집니다. 저는 죽음이 삶만큼 관심을 가져야 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악담은 아닙니다만 저와 기자님,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독자 분들은 언젠가는 모두 죽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진실이죠.
 
Q4. 죽음이 삶과 동등하게 중요하다는 것이군요. 그것은 오른발과 왼발처럼 같이 있는 것이군요. 혹시 상담학자로서 죽음에 관심을 갖게 된 지점이 있을까요?
 
네, 저는 죽음이 가져다주는 슬픔에 관심을 갖습니다. 그것은 아주 지독한 슬픔입니다. 성냥팔이 소녀가 눈 덮인 마을에서 죽어 있을 때 우리는 깊은 슬픔을 느낍니다. 작은 손길이 있었다면 그 소녀는 살아있었을 텐데, 성냥을 팔고 오라고 냉엄한 겨울 한복판에 아이를 내쫓은 난봉꾼 같은 아버지와 그렇게 던져진 아이의 시선을 피하고 지나치는 냉정한 사람들의 태도에서 우리는 분노를 느끼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은 그녀의 죽음에서 일어나죠.

2017 대한민국 코치대회에서 스트레스 관리 강의 중인 이헌주 박사. 사진=이헌주 제공 <2017 대한민국 코치대회에서 스트레스 관리 강의 중인 이헌주 박사. 사진=이헌주 제공>

Q5. 죽음은 슬픔이다. 사실 지금 말씀하신 동화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떤 슬픔, 분노 들이 다시 느껴지기도 하네요. 죽음 위기를 겪은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셨잖아요. 거기에서 어떤 발견이 있었나요?
 
네 저는 다양한 질병, 사고 등으로 죽음위기를 강렬하게 체험한 이들을 만나고 이를 연구의 주제로 풀어내면서 크게 세 가지를 찾았어요. 먼저 죽음 경험은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그 어떤 것보다 두렵고 무서운 과정이라는 점이에요. 우리가 보통 경험을 하게 되면 그것에 익숙해지고 그렇게 되면 두려움은 조금 줄잖아요.

그런데 죽음은 아니에요. 죽음 문턱을 넘을 뻔한 이들에게 죽음은 여전히 엄청난 공포예요. 그것은 어둡고 좁고 멍한 소리와 조이는 것 같은 압박감으로 다가와요. 누구와 함께 있지만 완전히 혼자 있는 이방인 같은 느낌이죠. 그런 의미에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사실 죽음에 대한 진술이라고 할 수 있어요.
 
두 번째로 불안과 죽음의 강한 연관성이에요.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DSM-5)이라고 하는 전 세계의 심리학자와 정신의학자들이 보는 책이 있어요. 그 책은 어떤 심리적 문제가 일어날 때 그 증상을 판별하는 가장 권위 있는 책이죠.
 
그런데 거기에 있는 공황장애의 13가지의 증상 중 죽음 위기의 증상을 비교해보면 12가지가 일치하고 있다는 점이예요. 공황장애와 죽음 위기는 상당히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상담자는 죽음에 대한 불안을 호소할 때 그것이 공황장애에 대한 호소가 아닐까 생각해볼 수 있어요.
 
반대 역시 마찬가지이죠. 공황장애는 아주 강하게 엄습하면서 호흡이 끊어질지도 모른다는 예기 불안이거든요. 그런 점에서 죽음과 공황장애에 대한 연관성은 앞으로의 연구에서 계속 드러나야 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이전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다시 말씀드리고자 하는 주제인데요. 슬픔이에요. 강렬한 슬픔이요. 내가 소멸된다는 슬픔, 내가 사랑하는 이를 다시 못 본다는 슬픔, 내가 이 세계로부터 밀려나고 있다는 슬픔, 익숙했던 내 몸이 낯설어지는 슬픔, 내 모든 경험이 상실될지도 모른다는 슬픔이요.
 
저는 애착(attachment)이라는 개념을 좋아하는 상담자인데요. 애착을 아주 손쉽게 말하면 우리 모두가 아주 어렸을 때 엄마에게 느꼈던 감정이에요. 예전에 어머니는 배가 아프면 제 머리맡을 양반다리에 품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어요. 어떤 노래를 불러주셨는데 그게 참 애절한 느낌이에요. 아마 대부분 이런 비슷한 경험이 있었을 거예요.
 
그것을 생각할 때 느껴지는 어떤 연합과 연결의 느낌, 그것이 저는 애착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결핍된 이들은 평생에 걸쳐 그것을 어느 방식에서든 되찾으려고 하죠. 보통 죽을 수 있다는 느낌이 현실로 다가오거나 죽음의 고통이 조금 잦아들면 두려움과 불안은 조금 줄어요. 그 대신 슬픔이 몰려와요. 그리고 그것은 가까운 이에 대한 강렬한 애착을 불러일으켜요. 저는 상담학자로서 그 애착,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래적인 측면이 아닐까 생각해요.

Q6. 죽음은 공포이고 불안이다. 죽음은 사람에 대한 슬픔이고 그것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으로 나타난다. 다시 생각해보니 죽음이라는 주제는 감정에 대한 주제 같군요.

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는 사람이 사람답게 길러지고 다시 사람을 양육하는 일련의 과정, 이를테면 동물이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엔 필연적으로 죽음이 있었어야 했다고 상상해 봅니다. 그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한계이고요. 그 한계 속에서 사람에 대한 깊은 애정이 형성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죽음의 위기를 겪은 한 어머니는 마지막엔 자신의 아이의 삶을 염려합니다. 아이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물었을 때 사랑을 전하고 싶다고도 했어요.

이것이 눈을 감기 전에, 어쩌면 생의 마지막일 수 있을 때 하는 이야기거든요. 그것은 어쩌면 상당히 이타적인 마음이에요. 자신이 죽는데 남겨진 아이의 일상을 걱정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죠. 어떤 의미에서 인간은 본래 이타적 존재일지도 몰라요. 죽음의 순간에서 그것이 드러나는 것이죠. 어머니는 전승된다고 하잖아요. 그것이 갖는 주제는 결국 사람이 남기는 유산은 죽음에서 드러나는 사람에 대한 애착이라고 생각합니다.

Q7. 그 말씀을 들으니 마치 죽음은 인간이 갖는 선한 마음을 피어나게 하는 토양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혹시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네, 독자 분들도 이번 기회에 죽음을 한번 묵상해보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괜찮으시다면 지금 내 주위의 가장 소중한 사람을 떠올려보세요. 그 사람과 영원을 함께 할 수는 없어요. 시간은 어찌되었든 한정되니까요.
 
죽음은 그것을 우리에게 분명히 알려주죠. 그렇기에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그 시간은 오늘이 가장 많은 시간이에요. 충분히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죠. 이제 봄이 서서히 다가오는데 소중한 이와 멋진 햇살을 보고 아름다운 길을 걸으며 ‘나와 당신만의 정서적 이야기’를 나눠본다면 어떨까요. 감사합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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