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소극장 산울림 주최 연극 <앙상블>이 9월 19일부터 10월 20일까지 소극장 산울림에서 공연 중이다. 파비오 마라(Fabio Marra) 원작, 심재찬 연출, 임수현 번역으로, 예수정(이자벨라 역), 유승락(미켈레 역), 배보람(산드라 역), 한은주(클로디아 역)가 출연한다.
유럽의 남자 작가가 쓴 이야기인데, 마치 한국의 여자 작가, 그중에서도 엄마 작가가 쓴 작품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한국적 정서를 가졌다는 점이 놀랍다. 감정조절 연기를 실감 나게 보여준 예수정과 대사 전달력 좋은 배보람의 케미가 돋보이는 공연이다.
![‘앙상블’ 공연사진. 사진=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http://img.etnews.com/news/article/2019/09/23/cms_temp_article_23181016206995.jpg)
◇ 이탈리아 나폴리 태생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작가가 쓴, 한국적 정서를 가진 이야기
<앙상블>의 원작자인 파비오 마라는 이탈리아 나폴리 태생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작가이며 연출가이자 배우이다. 그런데 직접 <앙상블>을 관람하면 유럽의 남자 작가가 쓴 작품이 아닌, 한국의 여자 작가, 그중에서도 엄마 작가가 쓴 작품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한국적 정서를 가졌다는 점이 놀랍다.
<앙상블>은 여성 심리에 주목한 작품인데, 제3자의 시야가 아닌 엄마 혹은 딸에게 감정이입한 관객은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껴져 연극 초반에는 매우 답답할 수도 있다. 엄마의 애환에 초점을 맞추면 딸이 비인간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앙상블’ 공연사진. 사진=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http://img.etnews.com/news/article/2019/09/23/cms_temp_article_23181020149949.jpg)
<앙상블>은 사람이 등장하기 전에 목소리가 먼저 등장하며 시작한다. 행동과 사건보다는 말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정서적 암시라고 볼 수 있다. 엄마와 딸의 신경전은 등장인물의 목소리를 통해 날카롭게 전달된다.
딸과 이야기하지 않으려는 엄마는 아직도 과거 사건으로 앙금이 남아있는데, 뒤끝작렬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만큼 마음의 상처가 컸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앙상블’ 공연사진. 사진=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http://img.etnews.com/news/article/2019/09/23/cms_temp_article_23181024233234.jpg)
<앙상블>에서 딸 산드라는 엄마 이자벨라가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자폐 기질이 있는 오빠 미켈레에게 정신적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생각을 엄마는 거부한다.
<앙상블>에서 관객은 누구에게 감정이입하게 될까? 예수정과 배보람은 관객이 엄마인 이자벨라와 딸인 산드라 중 어떤 누구에게 감정이입해도 가능하도록 밀착된 연기를 디테일하게 보여준다.
![‘앙상블’ 공연사진. 사진=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http://img.etnews.com/news/article/2019/09/23/cms_temp_article_23181028113820.jpg)
◇ 감정조절하기 위해 노력하는 엄마의 모습을 정말 실감 나게 표현한 예수정!
<앙상블>에서 예수정은 이자벨라를 한국적 여인으로 소화했다. 유럽의 엄마를 한국의 엄마로 소화했다기보다는, 처음부터 한국 엄마의 이야기인 것처럼 표현했다.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예수정의 연기를 본다면, <앙상블>은 우리나라 창작극처럼 느껴질 것이다.
강렬하고 날카로운 연기를 통해 순간의 존재감을 극대화할 줄 아는 예수정에게는 산드라 캐릭터가 더 잘 어울렸을 수도 있다. 이자벨라는 감정을 절제하고 참을 때가 많은데, 예수정은 이자벨라 캐릭터를 유지하기 위해 감정조절을 하면서 답답했을 수도 있다.
![‘앙상블’ 공연사진. 사진=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http://img.etnews.com/news/article/2019/09/23/cms_temp_article_23181032373155.jpg)
그런데 절제하는 모습과 그때의 답답함은, 남과는 다른 아들을 가진 실제 엄마의 모습일 수 있다. 예수정은 그런 엄마의 모습을 실감 나게 표현한다. 감정이입한 감정연기에 워낙 뛰어난 예수정이 연극을 하면서 감정이 훅 올라오는 순간에 감정조절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엄마들은 실제로 현실에서도 저렇게 감정을 억누르며 사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떠올라 마음이 짠해진다.
◇ 대사 전달력 좋은 배보람! 다른 배우들이 질주할 수 있게 중심을 잡는다
<앙상블>에서 배보람은 대사 전달력이 무척 좋다. 산드라 캐릭터가 갈등의 축을 이룬다면, 배보람은 정서의 축을 이루는 연기를 펼친다. 이자벨라, 미켈레, 클로디아가 각자의 마음에 따라 질주할 수 있도록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산드라를 배보람은 멋지게 소화한다.
![‘앙상블’ 공연사진. 사진=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http://img.etnews.com/news/article/2019/09/23/cms_temp_article_23181037993194.jpg)
산드라는 똑똑하고 능력 있지만 의사소통이 잘되지 않는 사람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여기는 사람과는 의사소통을 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엄마인 이자벨라와도 그렇고, 면접을 보러 온 클로디아와도 그러하다.
만약 배보람의 대사 전달력이 좋지 않았으면 산드라 캐릭터가 살아있게 느껴지기보다는 그냥 답답하기만 한 역할로 보였을 수도 있다. 배보람은 대사를 통해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면서, 내면의 생각과 정서 또한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앙상블’ 공연사진. 사진=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http://img.etnews.com/news/article/2019/09/23/cms_temp_article_23181042202507.jpg)
<앙상블>에서 엄마는 딸의 인생에 관심이 없었다고 느껴진다. 딸은 엄마가 자신의 곁에 있은 적이 없었다고 기억하면서 힘들어하는데, 엄마의 관심을 끌기 위해 늘 노력했다는 말을 할 때 배보람은 명확한 대사 전달력 속에 명확한 감정 또한 전달한다는 점이 주목된다.
<앙상블>에서 세 대의 포르쉐를 통해 극적 긴장을 해소하는 방법은 인상적이다. 서로 이해를 했다기보다는 그냥 있는 그대로를 수용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게 보이는데, 현실에서도 같은 원리가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느껴진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