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컨텐츠컴퍼니 제작, 왕용범 작/작사/연출, 뮤지컬 <벤허(BEN-HUR)>가 7월 30일부터 10월 13일까지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에서 공연 중이다. 유다 벤허(카이, 한지상, 민우혁, 박은태 분)와 메셀라(문종원, 박민성 분) 중에 누가 더 억울할까? 배신감과 함께 느껴지는 억울함과 근본적인 결핍에서 오는 억울함은, 억울함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결은 다르다.
그렇다면 에스더(김지우, 린아 분)는 억울하지 않을까? 유다 벤허의 억울함과 메셀라의 억울함이 강력하게 대비를 이루면서, 에스더의 억울함은 크게 눈에 띄지도 부각되지도 않았을 수 있다.
◇ 영상과 무대 장치의 과감한 사용! <벤허>만의 독특한 이미지 표현법!
<벤허>는 분노한 행동, 곳곳에서의 폭동을 영상과 무대 장치의 과감한 사용을 통해 실감 나게 표현한다. 유다 벤허에게 “네 눈에는 분노가 가득하구나”라고 로마의 해군 사령관 퀀터스(이병준, 이정열 분)가 말하는 것처럼 대사를 통해서 분노의 마음을 알려주기도 하지만, 큰 스케일의 영상과 무대 장치를 통해 표현한다.
제2부 전차 경주 장면에서 말의 움직임은 더욱 인상적이다. 진짜 말보다도 더 특징적으로 말의 모습을 표현한 무대 장치는 놀랍다. 웅장함과 생동감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몰입해 바라보면 말의 움직임 속에 분노가 느껴진다. 유다 벤허와 메셀라의 분노가 감정이입해져 있기 때문일 수도 있는데, 말 자체도 분노하고 있다고 느껴진다는 점이 흥미롭다.
바닷속으로 빠지는 영상은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생동감을 전달한다. 무대 벽면의 일부만 영상의 영역으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전체를 사용해 바닷속 깊이를 실감하고 상상하게 만든다는 점이 눈에 띈다.
◇ 양면성, 이중성, 중의성, 복합성
<벤허>의 행동과 대사들은 양면성, 이중성, 중의성, 복합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쉽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고, 정말 많은 것이 동시에 느껴질 수도 있다. 유다와 메셀라를 비롯한 주요 등장인물들은 하나의 생각과 마음, 정서만 가진 게 아니라 반대되는 것들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두 가지 상호 대립되거나 모순되는 감정이 공존하는 상태의 마음인 양가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해가 뜰 때와 해가 질 때, 낮도 밤도 아닌 경계의 시간에 날이 어둑어둑해지면서 사물의 윤곽이 희미해지는 시간을 개늑시(개와 늑대의 시간)라고 한다. 저 너머에서 다가오는 실루엣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정확하게 분간할 수 없는 시간이라는 뜻인데, 개늑시는 물리적인 시간으로도 심리적인 시간으로도 다가올 수 있다.
<벤허>에서 조난의 상태에 있는 유다와 퀀터스는 저 멀리서 오는 배를 보고 적군의 배인지 아군의 배인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두려움과 희망을 동시에 느낀다. 현재를 정확히 판단하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그들에게 그 시간은 심리적인 개늑시였다고 볼 수 있는데, <벤허>에는 등장인물뿐만 아니라 관객도 순간 멈칫하게 만드는, 양면성, 이중성, 중의성, 복합성의 상황과 대사가 많다.
유다가 퀀터스에게 건넨 “오랜만입니다. 별을 보는 게”라는 대사 또한 이중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중적인 의미의 동작도 있는데, 깃발을 휘두를 때 칼을 휘두르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동작을 통해 비유를 표현하는 것 같은 뉘앙스 전달한다는 점이 주목된다.
유다 벤허의 마음에도 이중성과 양면성이 있는데, 로마인에 대해 분노하면서도 로마인을 아버지로 삼은 것이다. 중요한 점은 그런 이중성과 양면성에 진정성이 있다는 것이다. 퀀터스가 죽었을 때 “위대한 장군께서 별이 되셨다”라고 표현했다. 이 표현 또한 죽음과 빛나는 별을 동시에 배치하는 이중적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제1부 마지막에 유다가 부른 노래에는 “이제 내가 너의 죄를 심판하리라”라는 가사가 있고, 제2부 노래에는 “저들을 용서하라”라는 가사에 이어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신이시여, 이젠 내게 대답하소서”라는 가사가 펼쳐진다. 작품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중의성과 양면성은 행동과 선택의 반전에 정서적 개연성을 부여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 유다의 분노를 표출한 한지상! 카리스마 넘치는 맑은 고음의 노래를 부른 김지우!
<벤허>에서 유다 벤허 역 한지상은 노래를 부를 때 높은 가사 전달력을 보여준다. 유다의 분노를 표출할 때 뉘앙스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정확한 가사를 통해 디테일한 감정을 전달하는데, 가사 전달력이 좋기 때문에 관객이 편하게 몰입해 감정이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에스더 역 김지우는 카리스마 넘치는 맑은 고음의 뮤지컬 넘버를 소화해 관객들로부터 큰 환호를 받았다. 김지우의 폭발적 가창력은 에스더가 수동적이고 자기희생적인 면만 있는 게 아닌, 강력한 내면 의지를 가진 캐릭터라고 느끼게 만든다.
◇ 메셀라의 행동을 미워하면서도, 메셀라의 마음에 공감하며 안타까워하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벤허>에서 유다 벤허와 메셀라 중 누가 더 억울할까? 잘해줬는데 뒤통수를 맞았다고 느껴져 벤허가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관객도 있을 것이고, 근본적인 억울함을 메셀라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벤허>에서 벤허의 부모는 메셀라는 데려다 키웠다. 그들은 메셀라를 형제라고 불렀지만 (그들의 부모는) 더 맛있는 빵은 그들에게 주고, 먹다 남은 반토막의 빵을 자신에게 줬다고 메셀라는 노래로 표현한다.
그들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던 메셀라는, 환심을 사기 위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만 했을 것이다. 메셀라는 그들로부터 환심을 잃을까봐 전전긍긍했을 수 있다. 메셀라에게 노력의 결과는 사랑이라기보다는, 환심이나 동정심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이런 메셀라에게서 자신의 억울한 모습을 찾은 관객도 있을 것이다.
반면에, 부자로 태어난 벤허는 배신감 때문에 좌절하고 허무해진다. 형제로 여겼던 메셀라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매우 억울했을 것이다. 벤허와 메셀라는 둘 다 서로에게 억울했을 것인데, 그렇지만 결은 다르다. 두 사람 모두 서로에게 매우 강한 양가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 물리적 장소이면서 심리적으로 안전한 공간인 카타콤! 관객들에게도 정서적 안정을 주는 장소!
카타콤(Catacomb)은 로마 근교에 있는 초기 그리스도 교도의 지하묘지를 뜻한다. <벤허>에서 죽은 자들이 묻힌 곳인 카타콤에 로마 병사들은 오지 않는다. 지하묘지인 카타콤은 오히려 물리적으로 안전한 공간이기 때문에 심리적으로도 안전한 공간이 된다.
반역을 꿈꾸는 장소라기보다는 기도를 드리는 장소라는 점이 부각되는데, 로마에도 심리적 안전감을 찾을 수 있는 장소가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카타콤이 없었더라면 그들은 24시간 내내 불안했을 수도 있다.
이는 관객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24시간 내내 불안한 등장인물의 모습에 몰입해 감정이입한 관객은 같이 불안해질 수 있다. 카타콤은 몰입해 관람하는 관객에게도 긴장 이완과 힐링을 선사하는 장소라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종교적인 의미도 물론 있지만, 심리적인 의미를 더 많이 살렸다는 점은 <벤허> 제작진의 똑똑한 선택이라고 여겨진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