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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영화] ‘원더랜드’(6) 준의 멸절, 참 자기와 거짓 자기! 준의 엄마와 준은 모두 충분히 좋은 엄마?

발행일 : 2019-08-12 14:57:34

딜런 브라운 감독의 <원더랜드(Wonder Park)>에서 엄마가 병 치료를 위해 집을 떠난 후 딸인 준은 세상이 없어진 것 같은 막막함에, 원더랜드의 존재 자체도 부정하려고 한다.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s Theory) 심리학자 도날드 위니콧(Donald Winnicott)의 ‘멸절(annihilation)’, ‘참 자기(true self)’와 ‘거짓 자기(false self)’의 개념을 적용하면 준이 왜 세상이 없어진 것 같은 두려움을 겪었는지 알 수 있는데, 엄마가 준에게 해 준 것처럼 준 또한 피넛에게 ‘충분히 좋은 엄마(good enough mother)’의 역할을 해줌으로써 준이 스스로 다시 참 자기를 찾아간다는 점은 감동적이다.

‘원더랜드’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원더랜드’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대상관계이론, 도날드 위니콧의 ‘멸절’과 ‘충분히 좋은 엄마’
 
도날드 위니콧에 의하면, 갓 태어난 아이는 자아라는 개념이 아직 없다. 태어나기 전 엄마 뱃속에서처럼 엄마와 자기는 하나의 존재라고 여기기 때문에, 자기를 인식하기 전에 엄마를 먼저 인식한다. 자아 이전에 엄마를 먼저 인식하는 것이다.
 
자아가 아직 없는 절대적 의존성이 필요한 시기에 보살핌을 받지 못하면 자기의 존재 자체가 없어지는 것 같은 극도의 공포인 멸절을 아이는 경험하게 된다. 그런 아이는 자기가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느껴지면 참 자기를 지키기 위해 거짓 자기를 만든다.

‘원더랜드’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원더랜드’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여기서 참과 거짓은 도덕적 질서의 차원에서 옳고 그름이 아닌, 타고난 자기의 기질대로 살고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 나뉘는데, 충분히 좋은 엄마는 아이를 이런 경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예방한다.
 
참 자기가 기질적으로 타고난 내 본 모습이라고 하면, 거짓 자기는 참 자기가 보호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 원래의 나의 모습을 감추고 세상과 다른 사람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뜻한다.

‘원더랜드’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원더랜드’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아이가 멸절을 경험할 때 ‘충분히 좋은 엄마’는 이런 경험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고 예방하기 위해 ‘안아 주기(holding)’, ‘다루어 주기(handling)’, ‘대상 제시(object-presenting)’의 세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고 위니콧은 제시한다.
 
안아 주기는 신체적인 면과 정서적인 면을 모두 포함하며, 다루어 주기는 엄마의 민감한 손길과 신체에 대한 섬세한 배려를 통해 통합된 방식으로 신체적, 정서적 만족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고, 대상 제시는 엄마가 외부 세계를 유아에게 가져다주는 방식이다.

‘원더랜드’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원더랜드’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준의 멸절, 참 자기와 거짓 자기
 
멸절은 쉽게 말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은 불안하고 두려운 상태를 뜻한다. <원더랜드>에서 엄마가 병 치료를 위해 집을 떠난 후 딸인 준은 세상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세상 속에서 자신이 받던 절대적인 보호를 더 이상 받을 수 없어서 자신의 존재 자체도 없어질 것 같은 멸절의 공포를 경험한다.
 
준의 나이는 위니콧이 말한 멸절을 겪는 유아기보다는 많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유아기의 멸절은 인류가 공통적으로 겪는 인간 발달 단계에서의 경험일 수 있는데, 준의 멸절은 의식의 영역에서 인지할 수 있는 개별적 멸절이라고 볼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어른 또한 멸절을 경험할 수 있는데, 세상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자신의 존재 자체도 없어진 것 같은 두려움을 경험했을 때가 멸절이었던 것이다.

‘원더랜드’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원더랜드’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원더랜드>에서 준은 장난기 많고 상상력이 풍부한 소녀였다. 준은 기질적으로 장난기와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고, 이런 모습이 준의 참 자기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엄마가 떠난 후 준은 원더랜드에 대해 흥미를 잃는 것에 머물지 않고, 원더랜드가 싫어졌다. 원더랜드를 가짜라고 말하고, 세상에서 가장 가고 싶지 않은 곳이라고 말한다. 장난기와 상상력을 발휘했을 때 무조건 인정하고 수용해주던 엄마가 없는 현재, 준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원래의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세상이 원하는 모습인 원더랜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아이가 된 것이다.

‘원더랜드’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원더랜드’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참 자기로 더 이상 혼자 버틸 수 없는 준은 거짓 자기를 선택한 것이다. 여기서 거짓은 정의와 도덕의 측면에서의 용어가 아니라, 태어난 기질과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뜻이다. 상담학을 발전시킨 심리학자들이 사용하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사용하는 용어와 달라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데, 같은 용어도 심리학자에 따라 다른 의미로 사용하기 때문에 누가 말한 용어인지 확인해서 적용할 필요가 있다.
 
◇ 준이 피넛에게 충분히 좋은 엄마의 역할을 해줌으로써, 자신이 참 자기로 돌아갈 수 있었다
 
<원더랜드>에서 준은 원더랜드의 동물 중의 하나인 피넛에게 충분히 좋은 엄마의 역할을 한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피넛은 원더랜드가 없어질 것 같은 멸절의 공포를 겪는데, 준이 겪는 멸절의 공포와 큰 틀에서 연관돼 있다.

‘원더랜드’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원더랜드’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준은 피넛에게 민감한 관심과 배려, 위로를 통해 신체적, 정서적인 면에서의 안아 주기와 다루어 주기를 한다. <원더랜드>에서 신체적인 면보다 정서적인 면이 더욱 강조되는 것은 피넛 또한 생물학적인 유아기를 벌써 지났기 때문일 수 있다.
 
준은 피넛에게 원더랜드가 어떤 세계인지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느끼게 만들어준다. 외부 세계를 피넛에게 가져다주는 대상 제시를 하는 것이다. 안아 주기, 다루어 주기, 대상 제시의 측면에서 볼 때 <원더랜드>의 준은 피넛에게 충분히 좋은 엄마의 역할을 한다. 생물학적 엄마는 아니지만, 엄마의 역할을 하는 엄마인 것이다.

‘원더랜드’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원더랜드’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더욱 의미 있는 점은 준이 피넛에게 충분히 좋은 엄마의 역할을 하면서, 준 또한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던 기질대로 돌아간다는 점이다. 다른 대상에게 충분히 좋은 엄마의 역할을 하면서 참 자기로 돌아간 것이다.
 
엄마의 보호와 수용, 인정으로 인해 참 자기로 돌아간 게 아니라 자신의 행동과 선택으로 인해 그렇게 된 것이다. 준의 엄마가 돌아오고 나서 준이 참 자기로 돌아온 게 아니라, 준이 참 자기를 다시 찾은 후 엄마가 왔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준은 스스로 참 자기를 회복한 것이다. <원더랜드>에서 준의 성장기가 더욱 감동적이고 마음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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