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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영화] ‘사자’(1) 종교적인 관점보다는 인간 내면의 심리, 가족의 측면에서 접근하고 해석할 수도 있다

발행일 : 2019-07-26 06:14:59

김주환 감독의 <사자(The Divine Fury)>는 ‘악에 맞서는 자, 그가 신의 사자다’, ‘악의 편에 설 것인가, 악에 맞설 것인가’라는 카피를 통해 영화의 뉘앙스를 전달한다. <사자>는 종교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종교적인 관점보다는 인간 내면의 심리, 가족의 측면에서 접근할 수도 있다.
 
엄마가 없는 용후(박서준 분)와 용후 부(이승준 분)는 서로에게 일정 부분 엄마의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안신부(안성기 분)는 오랜 시간 혼자 살아온 용후에게 두 가지 의미에서 아버지의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용후의 내면의 분리와 통합, 내면의 악 또한 종교적 관점에서 해석할 수도 있고, 가족의 측면에서 이해할 수도 있다.

‘사자’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자’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대상관계이론, 도날드 위니콧의 참 자기와 거짓 자기, 멸절, 충분히 좋은 엄마! 엄마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엄마! 어린 용후와 용후의 아빠?
 
생물학적 엄마만 엄마가 아니라 엄마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엄마라는 측면에서 살펴보면, <사자>에서 어린 용후와 용후의 아빠는 모두 일정 부분 엄마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금으로 간을 맞추는 것이 서투른 어린 용후는 아빠를 위해 계란말이를 만든다. 어린 용후는 일반적으로 엄마가 가족에게 대하는 것처럼 아빠에게 음식을 먹으라고 하면서 잔소리를 하기도 하고, 애답지 않게 걱정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어린 용후는 엄마가 가족을 기다리듯 아빠를 기다리기도 한다.

‘사자’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자’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용후 아빠는 용후를 혼자 키우면서 남자이지만 엄마가 자식에게 하는 엄마의 역할을 한다. 용후의 엄마는 용후를 출산하다가 세상을 먼저 떠난 것으로 보이는데, 엄마가 없는 가정에서 어린 용후와 용후의 아빠는 각각 서로에게 일정 부분 엄마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엄마가 없는 결핍을 서로에게 채워주기 위해 아빠와 아들은 노력했던 것이다.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s Theory) 심리학자 도날드 위니콧(Donald Winnicott)의 ‘참 자기(true self)와 거짓 자기(false self)’, ‘멸절(annihilation)’ 및 ‘충분히 좋은 엄마(good enough mother)’ 개념을 적용하면, 어린 용후가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는지 느낄 수 있다.

‘사자’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자’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엄마의 뱃속에서 안전하게 보호받다가 태어난 아이에게 자아라는 개념은 아직 없다. 태어나기 전에 엄마와 자기는 하나의 존재였다고 느끼며, 태어난 후에도 엄마로부터 극도의 보살핌을 받기 때문에 자기가 엄마와 분리된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아이는 자기를 인식하기 전에, 상대인 엄마를 먼저 인식한다. 자아 이전에 대상을 먼저 인식하는 것이다. 절대적 의존성이 필요한 시기에 엄마의 보호를 받으며 안전감을 느끼던 아이는,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순간 스스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공포, 자기의 존재 자체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 같은 극한의 공포인 ‘멸절’을 경험하게 된다.

‘사자’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자’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멸절’을 느끼는 이유는 아직 독립된 자기가 되기 이전에 정서적, 육체적으로 한 몸이라고 생각했던 엄마와의 육체적인 분리를 인지하게 된 상태에서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직 자아가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계속 보호받고 있지 않다고 느껴지는 분리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게 여겨지는 공포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충분히 좋은 엄마’는 아이를 멸절로부터 보호한다.
 
<사자>에서 어린 용후는 태어나면서부터 엄마를 잃었던 것인데, 태어나면서부터 멸절을 겪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어린 용후가 처음에 멸절에 너무 힘들어하지 않았던 이유는, 아빠가 엄마의 역할을 하면서 멸절이 되지 않게 용후를 보호했기 때문이다.

‘사자’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자’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위니콧에 의하면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해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을 경우 ‘참 자기’를 지키기 위해 ‘거짓 자기’를 만든다. 여기서 참과 거짓은 도덕적인 질서의 옳고 그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본 기질을 충실히 따르느냐를 뜻하는 것이다.
 
<사자>에서 용후가 엇나가기 시작한 것은 기도가 아빠를 살려줄 것이라는 믿음이 깨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는데, 자신을 제대로 보호해주던 아빠 또한 세상에서 사라지게 됨으로써 더 이상 보호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사자’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자’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타고난 기질에 충실한 참 자기로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이 됐기에, <사자>에서 용후는 이전과는 철저하게 다른 사람이 되려고 했고 됐을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용후가 파이터가 된 것은 거짓 자기라고 볼 수 있는데, 여기서 거짓 자기는 도덕적으로 잘못됐다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라 기질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 엄마에 이어 아빠의 부재까지 경험하며 오랜 시간을 살아온 용후에게, 안신부는 두 가지 의미에서 아버지의 역할?
 
<사자>에서 용후는 엄마에 이어 아빠까지 없는 세상에서 오랜 시간을 혼자 살아왔다. 용후 앞에 나타난 안신부는 용후를 인정하고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다. 안신부는 아버지 없이 살아온 용후에게 기댈 수 있는 아버지의 역할을 하는데, 종교적인 측면에서 보면 신의 사자로 신을 대신하는 아버지의 역할 또한 한다고 볼 수 있다.

‘사자’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자’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엄마의 부재에 이은, 아빠의 부재로 마음이 분리된 용후는 내면의 악을 활성화시킴으로써 참 자기로 살아가기 힘든 삶을 견딜 수 있는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을 했었던 것이다. 안신부가 용후에게 아버지 역할을 함으로써 분리됐던 용후는 점점 통합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용후의 통합은 종교적인 측면에서 해석할 수도 있고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도 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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