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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갤러리] 혁명, 그 위대한 고통 ‘20세기 현대미술의 혁명가들’ - 야수파 걸작전(2) 조르주 브라크,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샤를 뒤프렌

발행일 : 2019-06-25 11:33:12

6월 13일부터 9월 15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혁명, 그 위대한 고통 ‘20세기 현대미술의 혁명가들’ - 야수파 걸작전>(이하 <야수파 걸작전>)이 전시 중이다. 야수파(野獸派, Fauvism, 포비슴)와 입체파(立體派, Cubism, 큐비즘) 작품 세계를 알아볼 수 있는 전시로, 본지는 키스 반 동겐 작품 리뷰에 이어, 조르주 브라크,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샤를 뒤프렌 작품에 대한 리뷰를 공유한다.
 
◇ 조르주 브라크(Braque, Georges) ‘에스타크의 풍경(Paysage à l'Estaque), 1907, 캔버스 오일(Huile sur toile)’
 
조르주 브라크(Braque, Georges)의 ‘에스타크의 풍경(Paysage à l'Estaque), 1907, 캔버스 오일(Huile sur toile)’은 초근접해서 부분만 보면 거친 색의 나열처럼 보이는데, 약간 떨어져서 전체적으로 보면 평온하고 서정적인 느낌이 강해진다.

[ET-ENT 갤러리] 혁명, 그 위대한 고통 ‘20세기 현대미술의 혁명가들’ - 야수파 걸작전(2) 조르주 브라크,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샤를 뒤프렌

<조르주 브라크(Braque, Georges) ‘에스타크의 풍경(Paysage à l'Estaque), 1907, 캔버스 오일(Huile sur toile)’ © Laurent Lecat / Troyes, musée d’Art moderne, collections nationales Pierre et Denise Lévy>
 
안정적이고 평온한 느낌과 거칠고 정돈이 덜 된 것 같은 느낌의 공존은 브라크가 내면에 가지고 있을 양면성을 예술적으로 표현했다고 볼 수도 있고, 기존의 화풍과 차별화를 주기 위해 마지막 한 단계를 생략하고 마무리하는 고도의 선택을 했다고 볼 수도 있다.
 
땅과 물, 산과 하늘은 모두 가까이 있는 것 같이 보인다는 점은 흥미롭다. 색을 거친 듯 과감하게 사용함으로써 땅 내부의 입체, 물 내부의 입체, 산 내부의 입체, 하늘 내부의 입체를 만들고, 땅, 물, 산, 하늘은 원근법의 기준으로 볼 때 거의 대등한 위치에 놓았는데, 브라크가 세상을 보는 눈을 그림으로 표현했을 수도 있다.
 
전시장에서 ‘에스타크의 풍경’을 실제로 감상할 때 그림의 왼쪽 끝으로 근접해 오른쪽을 바라볼 때 훨씬 입체적이고, 오른쪽 끝에서 왼쪽을 바라볼 때는 상대적으로 평면적으로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 자연도 어떤 방향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른 느낌이 든다는 점이 떠오른다.
 
◇ 아메데오 모딜리아니(Modigliani, Amedeo) ‘잔 에뷔테른(Jeanne Hébuterne), 1918, 캔버스 오일(Huile sur toile)’
 
아메데오 모딜리아니(Modigliani, Amedeo)의 ‘잔 에뷔테른(Jeanne Hébuterne), 1918, 캔버스 오일(Huile sur toile)’은 전체적으로 보면 안정적인 한 사람의 모습인데, 색과 붓 터치에 집중해 부분을 바라볼 경우 무섭게 느껴질 수도 있는 작품이다.

[ET-ENT 갤러리] 혁명, 그 위대한 고통 ‘20세기 현대미술의 혁명가들’ - 야수파 걸작전(2) 조르주 브라크,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샤를 뒤프렌

<아메데오 모딜리아니(Modigliani, Amedeo) ‘잔 에뷔테른(Jeanne Hébuterne), 1918, 캔버스 오일(Huile sur toile)’ © Laurent Lecat / Troyes, musée d’Art moderne, collections nationales Pierre et Denise Lévy>
 
‘잔 에뷔테른’의 눈을 얼핏 보면 공포스럽거나 분노하고 있다고 보이는데, 잠시 시간을 두고 천천히 눈만 바라보면 울고 싶은데 차마 울지 못하는 것 같은 슬픔이 느껴진다.
 
얼굴과 목은 길지만 머리카락을 풍성하게 표현해 이미지를 완충하면서 숨겼다고 볼 수 있는데, 얼굴색에 붉은 기운을 많이 넣었지만 전체적인 색과 어울리게 해 파격을 선택했지만 파격의 강도는 조절했다고 생각된다. 기존의 정서를 벗어나려고 하면서도 기존의 공감을 어느 정도는 유지하고 싶었던 모딜리아니의 선택이었을 수 있다.
 
◇ 샤를 뒤프렌(Charles Dufresne) ‘마른 강의 물의 정령(Les Ondines de la Marne, 1920, 캔버스 오일(Huile sur toile), 148×179.2cm’
 
샤를 뒤프렌(Charles Dufresne)의 ‘마른 강의 물의 정령(Les Ondines de la Marne, 1920, 캔버스 오일(Huile sur toile), 148×179.2cm’은 콜라주 기법을 이용한 것처럼 서로 다른 네 명을 한 화폭에 담은 듯하다.

[ET-ENT 갤러리] 혁명, 그 위대한 고통 ‘20세기 현대미술의 혁명가들’ - 야수파 걸작전(2) 조르주 브라크,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샤를 뒤프렌

<샤를 뒤프렌(Charles Dufresne) ‘마른 강의 물의 정령(Les Ondines de la Marne, 1920, 캔버스 오일(Huile sur toile), 148×179.2cm’, Troyes, musée d’Art moderne © Olivier Frajman Photographe>
 
네 명의 사람은 각각의 영역에 위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영상이나 사진에서 화면을 분화해 합성하면서도 공통적인 정서를 통해 이질감을 줄였다고 느껴진다. 진하고 어두운 색과 진하고 밝은 색이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면서 공존한다고 보이는데, 그 안에 들어있는 사람들 또한 그러하다.
 
‘마른 강의 물의 정령’은 흰색도 밝음을 표현하고 초록색도 밝음을 표현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마른 강의 이미지를 초록으로 표현했을 수도 있는데, <야수파 걸작전>의 작품들은 현대적인 시야로 볼 때 더욱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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