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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인터뷰] ‘경치 좋은 자리’ 임혜령 감독! “그리움에 공감하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발행일 : 2019-05-01 20:21:53

전북 진안군 용담댐 수몰 지역을 배경으로 제작된 <경치 좋은 자리(A BEAUTIFUL VIEW)>는 올해 미국에서 개최된 제52회 휴스턴국제영화제에서 장편영화부문 금상과 아시안영화부문 베스트편집상을 수상했다. 본지는 연출을 맡은 임혜령 감독과 박중권 감독의 인터뷰를 차례로 게재한다.

‘경치 좋은 자리’ 스틸사진. 사진=씨네손수 제공 <‘경치 좋은 자리’ 스틸사진. 사진=씨네손수 제공>

이하 임혜령 감독과의 일문일답
 
Q1. <경치 좋은 자리>를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방송제작사에서 일하면서 알게 된 박중권 감독님의 제안으로 <경치 좋은 자리>를 제작하게 됐어요. 박중권 감독님이 준비하시는 작품에 대해 듣다가 용담댐 건설로 인해 살던 마을이 수몰된 저의 어린 시절 기억에 대한 경험에 대해 이야기 나누게 되었고 그 뒤에 많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용담댐으로 촬영 헌팅을 가게 됐어요.
 
박 감독님과 처음 저희 영화의 촬영지인 수몰지를 갔을 때가 물이 가득 차 있을 때였어요. 어떤 삶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 그냥 큰 호수 같았죠. 그때는 박중권 감독님이 별로 특별함을 느끼지 못하고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라고만 생각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5개월 정도 후에 댐의 수위조절로 물이 빠진 풍경이 됐을 때 제가 다시 박 감독님을 모시고 갔을 때 여기서 찍어야겠다고 말하더라고요.
 
사실 저에게는 자라면서 늘 봐온 일상적인 풍경 이였지만 처음 본 사람에게는 아니었던 거죠. 그때부터 시나리오 수정과 자료 조사 등을 진행하면서 본격적인 영화 제작에 들어가게 됐어요.

‘경치 좋은 자리’ 스틸사진. 사진=씨네손수 제공 <‘경치 좋은 자리’ 스틸사진. 사진=씨네손수 제공>

Q2. 영화의 배경이 된 용담댐 수몰에 관련된 어린 시절의 기억. 동네 풍경이 어땠는지 알려주세요.
 
저는 초등학교를 전학가지 않고 2군데를 다녔어요. 마을이 댐으로 인해 수몰되기 전의 초등학교와 수몰된 후에 옮겨서 새로 지은 같은 이름의 학교. 그때가 초등학교 4학년 11살 때. 그래서 저는 수몰되기 이전의 마을과 그 이후의 삶 두 공간의 기억을 지니고 있어요. 용담댐 사업이 시작되면서 댐이 생기고 마을 주민들이 이주하는 모습을 지켜봤어요. 그리고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주변에서 저는 아직도 살고 있어요. 그 속에서 어린 마음에 가장 인상적 이였던 것이 사람들의 표정 이였던 것 같아요.
 
선산에 모신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묘지를 여는 무거운 어른들의 표정들.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들의 표정. 슬픔 혹은 아쉬움이 서려있던 그들의 표정은 지금 어떻게 변해있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조그마한 장이 서던 깊은 산속 그 작은 마을의 가게 주인과 이웃집 아주머니들도 나처럼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고는 할까. 그런 궁금증과 기억의 잔상이 영화 속에 담기게 됐던 것 같아요.
 
저에게는 사실 촬영지는 굉장히 부자연스러운 감정이 드는 공간이에요.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 물속에 잠겨 있는 모습은 일반적으로 제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느끼는 엄청난 상실감이나 신기한 감정은 아니지만 그 풍경을 볼 때마다 기묘한 감정이 들어요. 수몰지의 물에 잠긴 나무들을 볼 때면 내가 저 나무였다면 나는 저곳을 떠나지 못하고 저렇게 잠겨 있겠지 라는 생각도 가끔 들어요.

‘경치 좋은 자리’ 스틸사진. 사진=씨네손수 제공 <‘경치 좋은 자리’ 스틸사진. 사진=씨네손수 제공>

Q3. 어떻게 영화감독이 되셨나요?
 
처음 카메라를 잡은 건 대학교 시절. 신문방송학과에 재학했지만 기사나 뉴스를 쓰는 것보다 영상제작에 관심이 더 많았어요. 그러다 좋은 기회에 제가 직접 연출과 촬영, 편집을 한 단편다큐멘터리를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상영하게 됐는데 이때 제 자신의 표현의 한계와 부족함에 대해 느끼면서도 더 해보고 싶다는 욕심도 많이 생겼어요.
 
그래서 대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서울로 상경해서 한국콘텐츠아카데미에서 영상제작 교육도 받고 그때부터 다양한 방송제작사에서 단편영화, 방송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했어요.
 
그 중에 <우포늪의 사람들>이라는 EBS다큐멘터리에 참여한 것이 제가 고향에서 수몰지를 배경으로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커지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중요습지를 보호하기 위한 국제 환경 협약인 람사르 협약 보호 습지로 창녕 우포늪이 지정되면서 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갈등과 삶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특히 그곳에서 어업을 해서 살아가는 어부들의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았어요.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과 이로 인해 이해가 충돌하는 모습에서 대규모 댐이 생기고 그곳을 떠난 수몰지의 사람들이 떠올랐어요. 그때부터 수몰지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언젠가 카메라에 담고 싶다고 늘 생각해왔어요.

‘경치 좋은 자리’ 스틸사진. 사진=씨네손수 제공 <‘경치 좋은 자리’ 스틸사진. 사진=씨네손수 제공>

Q4. 마을 주민들이 배우로 출연하게 된 계기와 이유는 무엇인가요?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가족들과 주민 분들을 인터뷰하면서 그 분들의 이야기를 대사와 이야기에 녹여내는 작업을 하다가 이분들이 직접 인물들을 연기하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제가 고향에서 마을 주민 분들과 단편영화를 만드는 교육을 진행하면서 그분들의 가능성을 봤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마을 주민 분들이 자신과 마을의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쓰고 직접 배우로 연기하고 단편영화를 만드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연기할 때 생동감과 생활감이 좋았어요. 그래서 그 느낌을 저희 영화 속에도 담아보고 싶었어요.

‘경치 좋은 자리’ 스틸사진. 사진=씨네손수 제공 <‘경치 좋은 자리’ 스틸사진. 사진=씨네손수 제공>

Q5. 친언니가 영화의 주인공이에요. 또 어머니도 출연하셨죠. 연기경험도 없다고 들었는데 왜 언니를 주인공으로 하게 됐나요?
 
저희 영화를 촬영하면서 제일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 주인공 정희 역할을 한 저희 언니였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연기를 하고 동생의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을 하니 부담감이 굉장히 심했어요. 사실 언니를 주인공으로 한 이유는 주인공 정희의 캐릭터를 쓰면서 수몰당시 언니의 기억들을 많이 참고했기 때문이었어요.
 
댐이 생기고 마을이 수몰되면서 이주하던 많은 사람들과 친구들, 부모님이 보상금을 사기 맞은 소문이 있던 친구나 마을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리고 나이가 어렸던 저보다 언니가 더 큰 그리움과 상실감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어요.
 
그래서 언니에게 부탁했고 주인공의 고향마을에 대한 그리움과 애증의 감정을 잘 표현 해준 것 같아요. 박중권 감독님과 촬영 전날에는 거의 매일 정희의 캐릭터에 대해 밤새 이야기를 하고 분석하면서 열정을 불태웠어요.
 
물을 맨발로 건너고 광활한 수몰지를 몇 시간씩 걷고 제가 정말 고생을 많이 시켰어요. 사실 정희는 대사가 많지 않은데 그 점이 더 언니를 힘들게 한 것 같아요. 점점 악화되는 영화 속 갈등 상황들과 체력적으로 힘든 와중에도 얼굴 표정으로 그걸 표현해야하니 차라리 대사를 시켜달라고 할 정도로.
 
촬영이 중간정도 진행 됐을 때 언니는 임신을 해서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어요. 촬영을 중단해야하는 상황까지 고려했지만 하지만 언니는 조금만 있으면 촬영을 할 수 있다며 계속 저를 안심시켰어요. 정말 미안하고 또 고마웠어요. 원래 구상했던 시나리오를 최대한 수정하고 줄여서 정말 조심스럽게 촬영을 진행했어요.
 
언니와 형부의 도움이 없었다면 저희 영화는 완성될 수 없었어요. 그때 태어난 조카가 벌써 세 살이네요.

‘경치 좋은 자리’ 메이킹사진. 사진=씨네손수 제공 <‘경치 좋은 자리’ 메이킹사진. 사진=씨네손수 제공>

저희 어머니는 버스정류장 할머니역할로 출연하셨어요. 버스 정류장 할머니는 정희에게 수몰지로 가는 길을 알려주고 정희로 하여금 자신의 엄마를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에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인데 사실 처음에는 예정에 없었는데 엄마가 출연하게 된 계기는 촬영 현장에서였어요.
 
촬영을 처음 진행 할 때부터 엄마가 계속 함께하셨는데 언니가 연기가 처음이라 힘들고 긴장 할 때마다 함께 대사를 연습하고 도와주는 모습을 보면서 결정했어요. 처음 연기하시는데도 엄마가 너무 잘하셔서 제가 대사를 자꾸 추가해서 힘들어하셨어요. 살아있는 캐릭터로 만들기 위해 엄마의 경험이나 감정을 넣어서 대사를 수정하고 그렇게 버스정류장 할머니 캐릭터가 만들어졌죠.
 
작년 서울독립영화제때에 관객과의 대화를 하면서 본 어머니 표정을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수줍어 하시면서도 굉장히 적극적으로 자신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시는데 정말 멋졌어요.

수업 중인 임혜령 감독. 사진=씨네손수 제공 <수업 중인 임혜령 감독. 사진=씨네손수 제공>

Q6. <경치 좋은 자리>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메시지가 뭘까요?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죽을 때까지 사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저처럼 살던 곳이 사라지는 사람도 있고 떠난 사람들도 있어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것이란 없지만 씨앗에서 자라 뿌리를 내리고 자란 있는 나무를 뽑아서 강제로 다른 땅에 심었는데 그 나무가 뿌리를 잘 내리는지 잘 내리지 못해 말라가는지 겉으로 보이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죠.
 
자의로든 타의로든 떠난 사람들이 옮긴 새로운 흙에 뿌리를 잘 내리고 살고 있을지, 예전의 그 땅을 그리워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 슬픔과 현재의 우리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요. 예전에 뿌리 내렸던 흙의 기억을 지닌 아이들이 자라서 성인이 되고 이미 흐릿해진 기억을 안고 살지도 모르지만 문득 그곳이 꿈에 나오고 옅은 그리움이 들 때 그 그리움에 공감하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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