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발레단 제178회 정기공연 <잠자는 숲속의 미녀>가 4월 24일부터 28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다. 오로라 공주(박슬기, 김지영, 신승원, 박예은 분)의 세례식에 초대받지 못한 카라보스(이재우, 김기완, 이영철 분)는 분노해, 공주가 16세가 되면 물레 바늘에 찔려 죽는 무시무시한 저주를 내린다. 데지레 왕자(허서명, 박종석, 하지석 분)와 라일락 요정(한나래, 정은영 분)은 공주를 지킬 수 있을까?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무대가 밝아서 발레 안무가 더 아름답고 산뜻하게 보이는 작품이다. 보기에는 편해보여도 실제로 구현하기에는 쉽지 않은 디테일의 동작들에 시선이 집중되고, 자연스럽게 공간을 만드는 귀족들의 대형 배치도 눈에 띈다. 발레리노 이재우는 큰 키를 이용한 시원시원한 동작으로 애니메이션 악당 캐릭터 같은 존재감을 발휘한다.

◇ 무대가 밝아서 발레 안무가 더 아름답고 산뜻하게 보인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서 무대의 막이 오르면 정지 화면처럼 무용수들은 정지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안무가 바로 펼쳐지지 않기 때문에 관객은 음악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맞이하게 된다. 청각적 측면에 더욱 몰입해, 시각적인 면은 이미지적으로 준비하는 시간이라고 볼 수 있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인형>과 함께 차이콥스키 3대 발레 중 하나이다. 제임스 터글 지휘로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연주했는데, 지휘자는 열정적이면서도 완급을 조절하는 지휘로 듣는 재미와 몰입감을 높였다. 하프 연주에 따른 장면 전환도 인상적이다.

제1막은 무대가 밝아서 발레 안무가 더 아름답고 산뜻하게 보인다. 어린아이가 줄 수 있는 밝음과 순수함 또한 잘 살리고 있는데, 남녀 어른 무용수와 어린 무용수 한 명이 같이 등장해 지금 펼쳐지는 안무와 공간이 편안하고 안전하다는 뉘앙스를 전달한다.
밝은 무대에서 밝은 군무가 주는 산뜻함은 보는 재미를 배가한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군무에서도 밝은 에너지, 풋풋한 에너지가 넘치는데, 극으로 구성된 발레 전막 공연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도 크게 긴장하지 않고 볼 수 있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 보기에는 편해보여도 실제로 구현하기에는 쉽지 않은 디테일의 동작들! 자연스럽게 공간을 만드는 귀족들의 대형 배치!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는 보기에는 편해보여도 실제로 몸으로 구현하기에는 쉽지 않은 디테일의 동작들이 많다. 제1막에서 6명의 요정 역 발레리나들이 군무를 추다가 각자 독무를 출 때, 동작이 모두 같은 게 아니라 각자 디테일이 다르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완전히 다른 장르의 춤이었다면 오히려 표현하기에 더 수월했을 것인데, 비슷하지만 디테일이 다른 동작을 각각 살려서 표현해야 했기에 더 힘들 수도 있다. 정말 밝은 무대 조명은 관객들이 편하게 관람하도록 돕는데, 무용수는 안무가 어둠 속에 가리지 않고 적나라하게 전달되기 때문에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그렇지만 본인을 더 잘 표현해 전달할 수 있는 시간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귀족 역 다수의 등장인물의 대형 배치가 눈에 띄는 이유는,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제1막에서부터 이런 대형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라운드를 만들지 않고 지그재그로 자연스럽게 위치를 선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직 몰입하지 않은 관객에게는 더욱 어색한 공간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주조연의 무용수들이 독무 혹은 2인무를 펼칠 때 무대 위 다른 등장인물들의 역할은 무엇일까 궁금할 수도 있다. 지금 춤을 추지 않으면서도 무대 위에 있는 사람들은 자연스러운 공간을 만들기 위해, 인위적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 공간을 창출하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무용수들의 등퇴장과 안무 동선에 따라 유연하게 자리를 이동하는데, 잘해도 잘한 티가 나지 않지만 잘못하면 공연 전체의 정서를 해칠 수도 있기에 부담을 갖게 될 수 있다.

규칙성 중의 불규칙성, 불규칙성 중의 규칙성을 대형을 통해 만드는 것인데, 공간을 창출하고 관객과 정서를 공유한다. 무대 위에서 관객과 같은 마음으로 지금 춤을 추는 무용수를 바라봄으로써 관객들과 공유와 공감을 나누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만약 무대에 귀족들이 없다고 가정하면 관객은 함께 발레 안무를 만끽한다는 느낌보다는, 무용수와의 각각 1:1로 만나는 것 같은 느낌에 더욱 긴장할 수 있다. 귀족들의 공간은 소품이나 영상으로 채워져야 할 것인데, 사람 냄새보다 첨단 기술을 향유하며 예술작품을 감상하게 되는 아쉬움을 경험하게 될 수도 있다.

◇ 밝음에서 어둠으로 급격한 정서의 전환! 큰 키를 이용한 시원시원한 동작으로 애니메이션의 악당 캐릭터 같은 존재감을 발휘하는 이재우!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밝음에서 어둠으로 급격하게 정서가 전환된다. 급박함이 느껴지는 시간에 어린관객들은 무서워할 수도 있다. 카라보스 역 발레리노 이재우는 큰 키를 이용한 시원시원한 동작으로 애니메이션의 악당 캐릭터 같은 존재감을 발휘한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악당의 키가 과장되도록 커지면서 무섭게 보이도록 만드는 장면이 종종 등장하는데, 이재우는 워낙 큰 키로 공중 동작을 하면서 더 크고 무섭게 보이게 만드는 효과를 발휘한다. 의상과 소품은 이재우의 그런 면을 더욱 강하게 부각한다.

이재우의 크고 시원시원한 동작은 무섭지만 무척 매력적으로 보인다. 악당이 멋있을 때 공연이 살아나는데,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악마와 천사가 공존하는 느낌을 발레로 표현하고 있다.
이재우는 과장되게 표현된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라이브로 보는 느낌을 전달한다. 검은 커튼은 검고 거대한 바다를 연상하게 만드는데, 세상을 마음대로 파도치듯 바꿀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자신은 저주를 실현시킬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재우는 커튼을 걷어 다른 무용수들이 아름답게 춤추는 모습을 보여줄 수도, 커튼을 닫아 더 이상 보여주지 않을 수도 있는 결정권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려준다. 발산하는 역할을 주로 담당하는데, 이재우는 무용 실력뿐만 아니라 연기력도 좋아 어떤 감정과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관객들이 느낄 수 있다는 점은 무척 큰 장점이다.
내용을 이해하면서 보면 더 재미있고, 디테일한 스토리텔링을 몰라도 움직임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어야 좋은 공연이라는 점을 적용하면, 국립발레단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은 무척 재미있고 감동적인 공연이다. 차이콥스키의 음악은 그런 감동을 더욱 뒷받침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