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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연극] ‘인형의 집 Part 2’ 집 나간 노라는 왜 15년 만에 돌아와야만 했는가?

발행일 : 2019-04-11 10:32:52

루카스 네이스 작, 김민정 연출, <인형의 집 Part 2>가 4월 10일부터 28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이다. 16(화), 17(수), 23(화), 24(수)일 공연 종료 후 약 30분 동안 연출가와 배우가 참여하는 ‘관객과의 대화’가 객석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또한, 6월 1일에는 부산문화회관에서 공연된다.
 
집 나간 노라는 왜 돌아와야만 했는가? <인형의 집 Part 2>는 완결된 것 같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서이숙은 같은 대사를 반복하면서도 뉘앙스를 다르게 전달하는 표현의 디테일을 발휘했고, 손종학은 관객이 자신을 얄밉게 생각했다가 공감하게 만드는 반전의 연기를 매력적으로 보여줬다.

‘인형의 집 Part 2’ 손종학(토르발트 헬머 역), 서이숙(노라 역), 우미화(노라 역), 박호산(토르발트 헬머 역), 사진=LG아트센터 제공 <‘인형의 집 Part 2’ 손종학(토르발트 헬머 역), 서이숙(노라 역), 우미화(노라 역), 박호산(토르발트 헬머 역), 사진=LG아트센터 제공>

◇ 집 나간 노라는 왜 돌아와야만 했는가? 완결된 것 같았지만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
 
19세기 여성들에게 혁명적 아이콘이었던 노라(서이숙, 우미화 분)가 다시 돌아왔다. <인형의 집>으로 완결된 것 같았던 이야기가 다시 이어진 것인데, 현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을 바로 떠올릴 수 있다.
 
‘인형의 집’ 문을 열고 나갔던 노라가 다시 문을 열고 찾아왔는데, 전편에서는 노라의 몸이 나갔다면 이번에 노라는 서류까지 정리하고 싶어 한다. 전편에서 집을 나간 것이 개인적으로 시도였다면, 이번에는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확실하게 인정받겠다는 대의의 명분을 가지고 있다고 보인다.

‘인형의 집 Part 2’ 우미화(노라 역). 사진=LG아트센터 제공 <‘인형의 집 Part 2’ 우미화(노라 역). 사진=LG아트센터 제공>

15년 만에 집에 돌아온 노라는 아이들을 다시 만나지 않겠다고 한다. 토르발트 헬머 역(손종학, 박호산 분)에게는 인사도 하지 않겠다고 앤 마리(전국향 분)에게 말한다. 노라는 만나고 싶지 않은 것일까, 만나기를 두려워하는 것일까?
 
노라는 여자들에 대한 글을 써서 돈을 버는 작가가 됐다. 그렇지만 본명을 사용하지 않고 필명을 사용한다. 글을 쓸 수는 있고 사람들에게 어필하기는 하지만, 아직도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필명 뒤에 숨어야만 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인형의 집 Part 2>는 알려주고 있다. 결혼하기 전에 삶의 만족도가 더 높았다고 노라는 말하는데, 현재도 그렇게 여기는 사람들이 꽤 많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인형의 집 Part 2’ 전국향(앤 마리 역). 사진=LG아트센터 제공 <인형의 집 Part 2’ 전국향(앤 마리 역). 사진=LG아트센터 제공>

무대 천장에는 4명의 이름이 쓰인 등이 있다. 노라의 이야기가 주도적으로 펼쳐질 때는 ‘노라’라는 등에 불이 켜지고, 토르발트의 이야기가 주도적으로 펼쳐질 때는 ‘토르발트 헬머’라는 등이 켜져 지금 누구에게 감정이입하면 더 좋은지 관객들에게 가이드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인형의 집 Part 2>에는 두 명의 또 다른 여자가 등장한다. 토르발트 집안의 아이들을 돌본 유모인 앤 마리와 노라의 딸인 에미 헬머(이경미 분)이다. 앤 마리는 자신의 업적과 노력, 행동을 인정해주지 않는 것에 대한 억울함을 가지고 있는데, <인형의 집 Part 2>에 등장하는 네 명은 모두 각각 성격이 다른 억울함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인형의 집 Part 2’ 이경미(에미 헬머 역). 사진=LG아트센터 제공 <‘인형의 집 Part 2’ 이경미(에미 헬머 역). 사진=LG아트센터 제공>

에미 헬머는 엄마인 노라에 대한 기억이 없다. 엄마와 딸은 강한 갈등과 대결을 보이기도 하는데, 서이숙과 이경미는 모두 대사전달력이 좋아 갈등의 포인트가 첨예하게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 대사가 많고 중요한 연극! 관객들에게 계속 생각하게 만든다
 
<인형의 집 Part 2>는 대사가 무척 많은 연극이다. 대사가 무척 중요한 연극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예전에는 하지 못했던 진짜 속마음을 솔직히 드러내는데, 말을 많이 하지 않았으면 알 수 없었던 내면의 깊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인형의 집 Part 2>에서 역설적으로 대화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도 있다.
 
<인형의 집 Part 2>는 선택과 ‘너’라는 존재 사이의 갈등 등 결론에 대해 화두를 던지고, 질문을 하고, 자기 의견을 피력한다. 그런데 이런 설정에 관객은 성향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다. 많은 대사가 계속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화려하고 감각적인 모습을 원하는 관객에게는 다소 불편할 수도 혹은 지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형의 집 Part 2’ 박호산(토르발트 헬머 역). 사진=LG아트센터 제공 <‘인형의 집 Part 2’ 박호산(토르발트 헬머 역). 사진=LG아트센터 제공>

◇ 발음이 명확하고 또박또박한 서이숙! 같은 대사를 반복하면서도 뉘앙스를 다르게 전달하는 표현의 디테일을 발휘하다
 
서이숙은 발음이 명확하고 또박또박하다. 그녀의 장점은 드라마, 영화에서도 좋지만, 연극 무대에서 더욱 빛을 낸다. <인형의 집 Part 2>에서 노라는 자신이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반복하는데, 서이숙은 상황에 따라 관객이 다르게 느낄 수도 있도록 차이를 만드는 디테일을 발휘한다.
 
정말 행복하다고 느끼게 만들기도 하고, 행복해야 한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들리게 만들기도 하고, 아직 완벽하게 행복하지 않기에 역설적 혹은 반어적으로 와닿게 만들기도 한다.
 
정말 행복하기만 했으면 같은 말을 이렇게 많이 반복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자신만 행복한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말을 아꼈을 수도 있는데, 노라가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을 보면 노라의 마음도 하나로 명확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서이숙은 같은 대사를 하면서도 관객이 상황에 따라 뉘앙스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표현한, 연기의 디테일을 발휘한 것이다.

‘인형의 집 Part 2’ 서이숙(노라 역). 사진=LG아트센터 제공 <‘인형의 집 Part 2’ 서이숙(노라 역). 사진=LG아트센터 제공>

◇ 토르발트 캐릭터의 변신을 통해 분위기를 잘 살린 손종학
 
개는 좋지만 죽을 때 헤어지기 싫어 키우지 않겠다고 토르발트가 말했다고 앤 마리는 전한다. 토르발트의 이런 모습은 연극 초반에는 고집불통인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됐는데,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돌아보면 강해 보이는 그가 얼마나 삶에 대해 불안하고 두려워하는지 드러낸 단면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토르발트에게는 지난날의 불만이 많이 쌓여있다. <인형의 집 Part 2>에서는 토르발트를 단순한 가해자로 여기지는 않는다. 토르발트가 기억을 왜곡해 스스로를 피해자로 만들었을까?
 
토르발트는 화를 내지 않으면서도 할 말은 다 하고, 논리적인 것 같지만 무시하는 태도를 견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형의 집 Part 2> 전반부에 토르발트가 한 쪽으로 편중된 말을 할 때 관객석에서는 ‘헉’하는 느낌을 순간적으로 표현하는 여자 관객들이 많았는데, 손종학은 정말 얄밉게 표현했다. 손종학은 토르발트를 아주 ‘나쁜 놈’으로 만들지 않으면서도, 어이없이 숨을 ‘탁’ 막히게 만드는 인물로 제대로 표현함으로써 관객들이 노라에 더욱 밀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인형의 집 Part 2’ 손종학(토르발트 헬머 역). 사진=LG아트센터 제공 <‘인형의 집 Part 2’ 손종학(토르발트 헬머 역). 사진=LG아트센터 제공>

<인형의 집 Part 2> 후반부에 손종학은 진지하게 사람들을 웃겼다. 토르발트는 자기개방을 통해 두려움을 공개하고 결혼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도 하는데, 손종학은 공연 전반부에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얄밉게 보도록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연 후반부에 자신에 대해서 인정하고 공감하게 만드는 마력을 발휘했다. 극작가 루카스 네이스가 만든 토르발트, 연출 김민정이 설정한 토르발트의 마력일 수도 있고, 배우 손종학의 연기력과 공감능력 덕분일 수도 있다.
 
<인형의 집 Part 2>는 노라를 통해 이 세상에는 나쁜 규범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려준다. 노라는 그 규범들을 따르지 않을 것이며, 20, 30년 후에 그런 세상이 오도록 만들겠다고 다짐한다.
 
첫 번째로 문을 나갈 때는 가진 것이 없었고 잃을 것도 없었던 노라는, 이번에 두 번째로 문을 나갈 때는 가진 것이 많아졌고 그것들을 다 잃을 수 있다는 각오까지 하고 있다. 처음이 더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두 번째가 더 어려울 것이라고 느끼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노라의 도전이 끝나지 않았다는 점은, 연극이 끝난 후에도 많은 생각을 계속하게 만드는 여운을 남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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