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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뮤지컬] ‘잭더리퍼’ 누가 주인공인가? 누구에게 감정이입해야 하나?

발행일 : 2019-02-03 21:17:09

플레이앤씨 주최, 뮤지컬 <잭더리퍼(Jack the Ripper)> 10주년 기념공연이 1월 25일부터 3월 31일까지 올림픽공원 우리금융아트홀에서 공연 중이다. 누가 범인인가, 범행의 이유는 무엇일까도 궁금하지만, 누가 주인공인가, 누구에게 감정이입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궁금해지는데, 그 안에 있는 내면의 이야기를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보이면 보일수록 마음이 더 아파지는 뮤지컬이다.

‘잭더리퍼’ 공연사진. 사진=플레이앤씨 제공 <‘잭더리퍼’ 공연사진. 사진=플레이앤씨 제공>

◇ 2019년 서울에서 1888년 런던으로 관객을 데려가는 방법! 시간, 장소, 공간을 넘어 정서를 넘어가는 경험을 공연 시작 때 하는 이유는?
 
<잭더리퍼>는 공연을 시작하기 전 ‘1888년 런던’이라는 자막이 관객들을 먼저 맞이한다. 시곗바늘은 7시를 가리키는 것 같기도 하고, 8시라고 알려주는 것 같기도 하다. 곧 있으면 펼쳐진 131년 전의 이야기는 호기심을 자아낸다.
 
빗소리, 천둥소리로 무대는 시작한다. 공연이 시작되면 분침은 가만히 있고, 시침은 거꾸로 빠르게 돌아간다.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는 시침은 관객을 과거로 데리고 간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보인다.

‘잭더리퍼’ 공연사진. 사진=플레이앤씨 제공 <‘잭더리퍼’ 공연사진. 사진=플레이앤씨 제공>

시계는 빨간색인데, 시작 전 파란색 조명과 대비를 이룬다. 공연 처음에는 주의를 환기해 몰입하게 만든다. 2019년 서울에서 관람하는 관객을 1888년 런던으로 데려가면서 시간, 장소, 공간의 이동뿐만 아니라 정서 또한 이동하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잭더리퍼>를 끝까지 보면 누가 주인공인지, 누구에게 감정이입해야 하는지와 연결돼 있다는 것을 찾을 수 있다. 공연 시작 때 시간, 장소, 공간을 크게 이동했다면 공연 마지막에는 정서와 감정의 점핑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잭더리퍼’ 공연사진. 사진=플레이앤씨 제공 <‘잭더리퍼’ 공연사진. 사진=플레이앤씨 제공>

◇ 무언가를 쫓는 사람들, 무언가를 간직한 사람들
 
<잭더리퍼>는 무언가를 쫓는 사람들과 무언가를 간직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사랑을 쫓는 자, 다니엘(엄기준, 최성원, 정동하, 환희, 켄 분), 광기를 쫓는 자, 잭(신성우, 서영주, 김법래 분), 범인을 쫓는 자, 앤더슨(이건명, 민영기, 김준현, 정필립 분), 돈을 쫓는 자, 먼로(강성진, 장대웅 분)와 함께 희망을 간직한 여인, 글로리아(스테파니, 김여진 분), 추억을 간직한 여인, 폴리(백주연, 소냐 분)가 등장한다.
 
쫓는 대상인 사랑, 광기, 범인, 돈은 이 작품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일 수도 있고 사람들의 내면에서 원하는 것일 수도 있다. 간직하는 대상인 희망과 추억을 쫓는 대상과 개별적으로 연결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인물의 캐릭터와 관계성 또한 마찬가지이다.

‘잭더리퍼’ 공연사진. 사진=플레이앤씨 제공 <‘잭더리퍼’ 공연사진. 사진=플레이앤씨 제공>

◇ 누가 주인공인가? 다니엘인가, 잭인가? 누구에게 감정이입해야 하나?
 
<잭더리퍼>에서 처음에는 누가 범인인가가 궁금한데, 시간이 지나면서 왜 죽여야 하는지 궁금해진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누가 주인공인지도 궁금해지는데, 다니엘과 잭, 혹은 글로리아나 폴리, 누구에게 감정이입해야 하는지도 쉽지 않을 수 있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다른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면 어떨까? 그런 결정을 하는 것도 힘들었겠지만, 스스로 그런 자신의 모습을 계속해서 보는 것은 더욱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공연을 보고 있으면서 그 이유가 추측될수록 마음이 너무 아파 눈물이 난다.

‘잭더리퍼’ 공연사진. 사진=플레이앤씨 제공 <‘잭더리퍼’ 공연사진. 사진=플레이앤씨 제공>

◇ 칼 구스타프 융의 세계관, 인간관을 <잭더리퍼>에서 찾을 수 있다
 
집단무의식의 개념으로 심리학의 새로운 장을 펼친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의 분석심리학, 융적 세계관, 인간관을 <잭더리퍼>에서 찾을 수 있다. ‘내 안의 또 다른 나’와의 대극의 합일을 발견한다는 것은, 뮤지컬의 마지막 반전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나에게 열성인 요소를 우성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림자(shadow)이다. <잭더리퍼>에서 다니엘에게 잭은 그림자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다른 상황의 사람일 수도 있지만 비슷한 조건에서 투사가 가능한 인물이 잭이기 때문이다. 투사는 자기 내면에 있는 스스로 견디기 힘든 부분을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가해 고통과 괴로움을 줄이려는 무의식의 선택을 뜻한다.

‘잭더리퍼’ 공연사진. 사진=플레이앤씨 제공 <‘잭더리퍼’ 공연사진. 사진=플레이앤씨 제공>

융적 세계관을 배제할 경우 <잭더리퍼>에서 잭과 다니엘의 관계성은 상징적인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 안의 또 다른 나’, ‘나는 너다’라는 개념을 뮤지컬 안에서 찾게 되면, 공연 초반부터의 디테일이 얼마나 치밀했는지 느끼며 감탄하게 될 것이다.
 
앤더슨이 범인을 알게 된 후에 공표하지 않는 이유 또한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일반적인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 감출 수 있는 것을 감췄다고 볼 수도 있지만, 융이 말한 개념을 적용할 경우 인간의 존재 자체에 대한 불신이 증폭돼 사회적 파장이 폭발하는 것을 막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잭더리퍼’ 공연사진. 사진=플레이앤씨 제공 <‘잭더리퍼’ 공연사진. 사진=플레이앤씨 제공>

일반적인 기준으로 볼 때는 앤더슨이 다른 선택을 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렇지만 분석심리학을 적용할 경우 앤더슨이 현재의 선택을 한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리뷰 기사를 보는 사람이 모두 <잭더리퍼>를 관람한 관객이라면 스포일러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더 평이하고 직접적인 표현을 통해 더욱 명쾌하게 해석과 분석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관람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을 배려해 더 이상 자세히 설명하지 못하는 점에 대한 독자들의 양해가 필요하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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