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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영화] ‘증인’ 뻔한 질문 속 감동 “아저씨는 좋은 사람입니까?”

발행일 : 2019-01-29 00:05:00

이한 감독의 <증인(innocent witness)>을 만약 예고편으로만 본다면 무겁지 않고 잔잔한 서정적인 이야기처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관람하면 부드럽지만 날카로운 영화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영화는 가장 뻔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해 정말 지혜로운 대답을 한다.
 
동화 같은 구성으로 관객들을 무장해제 시키면서도 독성 생리대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관객들이 현실감을 놓치지 않게 만드는 이중적인 설정이 눈에 띄는데, 과하지 않게 거리를 유지하면서 현실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만든다는 점이 주목된다.

‘증인’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증인’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작은 움직임을 통해 내면을 표현하는 디테일! 정우성이 마음을 열고 있다는 신호는?
 
<증인>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내면이 알고 있는 진실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면을 표현할 때 작은 움직임을 통해 알려주는 디테일을 선보이는데, 순호(정우성 분)가 마음을 열고 있다는 신호가 언제 나오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갈등하지만 결국 순호는 마음이 가는 대로 선택을 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순호는 영화 초반에 미란(엄혜란 분)이 주는 청포도 사탕을 먹고, 영화 중반에 지우(김향기 분)가 주는 노란색 젤리를 먹는다. 상대방이 주는 작은 것을 먹으면서 순호는 그 대상에게 더욱 몰입하기 시작한다.

‘증인’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증인’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순호는 발암 사건 제1심 후 넥타이를 벗음으로써 내면의 답답함을 표현하는데, <증인>은 등장인물의 디테일한 행동에 담긴 마음에 관심을 가진다. 등장인물의 마음을 디테일한 행동으로 표현한다고 볼 수도 있다.
 
<증인>은 자살하는 사람의 마음, 누명을 쓴 사람의 마음, 자폐가 있는 지우의 마음, 변호사 순호의 마음, 검사 희중(이규형 분)의 마음을 모두 소중하게 여긴다. 이런 시야는 배우들이 마음 아픈 장면을 촬영하면서도 충분히 위로받았을 것이라고 추측하게 만든다.

‘증인’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증인’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주인공 중에는 악으로 똘똘 뭉친 캐릭터가 없다! 이중성과 복합성을 가진 캐릭터들!
 
“현실을 이야기하는 거잖아. 세상엔 인정해야 할 부분도 있다고”라는 영화 속 대사처럼 <증인>은 이상적인 상황을 설정하기보다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으려고 노력한다.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언급할 수는 없지만, 주연과 비중 있는 조연 중 악인은 악을 행하는데 있어서 모두 나름대로의 이유를 가지고 있다.
 
그 이유 때문에 악한 행동을 인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비난만 할 수는 없다는 점은 더욱 마음 아프다. 최근 한국 영화와 할리우드 영화(애니메이션 포함)에서 악당을 설정할 때 이런 이중적이고 복합적인 캐릭터를 넣는 경우가 많은데, 선악이 완벽하게 분리되지 않고, 명분과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시대 분위기와 맞닿아있다고 볼 수 있다.

‘증인’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증인’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증인>을 보면 지우도 귀엽지만 검사인 희중도 만만치 않게 귀엽다. 김향기와 이규형의 연기력과 표현력이기도 하지만, 문지원 작가, 이한 감독의 세계관과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 자신의 세상에서 나가기 힘든 사람과 대화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증인>은 자신의 세상에서 나가기 힘든 사람과 대화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졌을 때 보이는 세상은 어지럽고 정신없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데, 영화는 자신의 세상에서 나가기 힘든 사람과 대화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생각하게 만든다.

‘증인’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증인’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그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안으로, 그 사람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조언은 단지 영화 속 설정만은 아니다. 퍼즐, 퀴즈 등 지우가 좋아하는 것을 찾으려고 순호는 노력하는데, 특정한 목적이 있어서가 아닌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 자체로 다른 사람의 세상을 인정하고 그 안에 들어가려는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우의 엄마 현정(장영남 분)과 순호의 아빠 길재(박근형 분) 또한 각자의 세상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순호가 지우를 이해하는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현정과 길재가 영향력을 주는데, <증인>에서는 지우뿐만 아니라 순호가 관계를 설정해 나가는 방법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증인’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증인’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아저씨는 좋은 사람입니까?
 
“엄마에게 말하지 마세요. 엄마 마음 아파요. 시내 마음 아파요.”라는 말은 지우의 내면을 명확하게 드러낸 시점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이 대사부터 지우의 행동에 변화가 생긴다.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행동하는 계기가 되는데, 이 대사와 이 대사가 나오게 된 이유를 제공한 사건이 가진 의미를 살피는 것도 감정이입과 공감에 도움이 된다.
 
기자간담회에서의 필자는 정우성 배우, 김향기 배우, 이한 감독에게 같거나 비슷한 질문을 했다. 영화 속에는 “아저씨는 좋은 사람입니까?”라는 뻔한 질문, 뻔하게 느껴질 수 있는 질문이 반복되는데 무척 감동적으로 느껴진다. 영화 속에서 이 대사를 듣는 정우성 배우, 대사를 하는 김향기 배우는 어떤 마음이었고, 감독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증인’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증인’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연기로만 좋은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도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정우성은 영화 속에서 지우가 던지는 이야기를 받는 마음을 길게 설명했다. 나누는 감정의 따뜻함과 치유를 강조했는데, 순호 캐릭터를 표현함에 있어서 절제를 하지 않고 감정을 표현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우성은 가장 자신의 역할이나 의미를 잘 이해하고 대답을 했는데, 지우가 던진 느낌, 감정을 받아서 자연스럽게 표출하려고 리액션을 했다고 한다. 느껴야 할 것 같은 것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느낀 것을 영화 속에서 그대로 표현한 것인데 그의 진정성은 삶과 영화를 대하는 마음가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느껴진다.

‘증인’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증인’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김향기는 간단한 질문이지만 크게 다가올 수 있는 질문이라고 하면서, 순호 아저씨가 좋은 사람인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한 감독은 대사를 쓰고 나서 본인도 좋은 사람인지 생각해봤다고 대답했다.
 
감독은 이에 대한 대답을 할 때 서사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감각적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어쩌면 날카롭게 이야기하고 싶지만 날카롭게 던지기에는 무언가 이유가 있어서 안 하는 건지 못 하는 건지, 말로 명쾌하게 표현하기보다는 뉘앙스로 전달하려고 했다는 점이 느껴진다.

‘증인’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증인’ 스틸사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감독의 이런 표현법은 영화 속에서 메시지를 던지는 방법을 통해 명확하게 드러난다. 어른들을 통해 이야기하기 껄끄럽거나 불편한 이야기를 할 때 아이를 내세워 완충을 하면서 이야기를 듣는 상대방에게 덜 위협적으로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다.
 
아이의 입을 통해 묻는 “아저씨는 좋은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은 관객들도 스스로 속으로 대답하게 만든다. 만약 어른의 입을 통해 강력하게 전달됐으면, 관객은 거부감이 더 많이 생겨 대답하지 않고 마음의 문을 닫았을 수도 있다. 작가와 감독의 똑똑한 선택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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