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강남국제음악제,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가 1월 24일부터 25일까지 광림아트센터 장천홀에서 공연됐다. 박현준 예술총감독, 이기선 지휘로, 블라디보스토크필하모닉오케스트라, 위너오페라합창단이 함께 했다.
혼자 무대를 채우고 있을 때 소프라노 김수진이 보여준 자신감과 존재감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하녀 역을 맡았지만 가창력은 하녀가 아니었던 소프라노 신다영은 아리아를 인상적으로 소화해, 오페라 마지막인 제3막에서 관객들이 김수진의 정서에 더욱 몰입해 감정이입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 뮤지컬 같은 무대라기보다는 연극 같은 무대에서 펼쳐진 오페라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무척 좋아하는 작품이다. 오페라 자체에 ‘한(恨)’의 정서가 담겨 있기 때문에, 한국적인 설정으로 변환하지 않고 원작에 충실하게 공연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큰 감동과 공감, 위안을 받는다.
광림아트센터 장천홀은 오페라 전용극장도 아니고 그렇다고 소극장도 아니기 때문에, 전용극장처럼 화려한 무대 변환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소극장 오페라처럼 정말 많은 것을 생략할 수도 없다.
그런데 이번 제1회 강남국제음악제에서의 <라 트라비아타>는 영상으로 규모를 충족하면서, 무대장치의 큰 변화 없이도 집중할 수 있도록 연극 같은 무대로 만들어졌다는 점이 주목된다.
알프레도(테너 박현준 분)와 제르몽(바리톤 유승공, 노대산 분), 단 두 명만 무대에 있을 때 두 사람의 움직임은 더욱 연극적이었고 부모의 이기적인 마음은 더욱 생생하게 전달됐다. 비올레타(소프라노 김수진, 정혜민 분)와 안니나(신다영, 박소담 분), 단 두 명만 무대에 오르는 시간에는 빈 공간이 느껴지기보다는 클로즈업해 가까이에서 보는 것처럼 연출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 혼자 무대를 채우고 있을 때 소프라노 김수진이 보여준 자신감과 존재감
라 트라비아타’는 이탈리아어로 ‘길을 잃은 여자’, ‘길을 잘못 든 여자’라는 뜻이다. 비올레타를 칭하는 표현으로, 부유한 남자나 귀족 등 상류사회의 사교계 모임에 동반하는 창부(娼婦) 혹은 공인된 정부(情婦)인 코르티잔(courtesan)을 상징하고 있다.
첫날 공연에서 비올레타 역을 맡은 소프라노 김수진은 이어지는 고음, 계속되는 고음의 아리아를 멋지게 소화해 코르티잔의 화려함과 매혹적임을 제대로 표현했고, 알프레도의 오해에서 불구하고 알프레도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비올레타의 마음을 부드러우면서도 애처로운 움직임으로 잘 표현했다.
무대가 더 크고 화려했으면 무대 혹은 비올레타가 더 많이 눈에 들어왔을 수도 있는데, 심플하고도 명쾌한 무대는 혼자 무대에 올랐을 때의 김수진이 보여준 자신감과 존재감을 더욱 와닿게 만들었다.

◇ 하녀인 안니나 역을 맡았지만, 가창력은 하녀가 아닌 프리마돈나였던 소프라노 신다영
안니나 역의 소프라노 신다영은 아리아를 부를 때 고음으로 바로 들어가는 시원시원함을 선사했다. <라 트라비아타>에서 역할은 하녀였지만 가창력은 하녀가 아니었던 신다영은, 오페라 주인공에 대한 가능성과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라 트라비아타>에서 비올레타는 제1막부터 제2막 제2장까지는 화려하고 멋진 모습으로 나오다가 제3막 비올레타의 침실에서는 애처롭고 안쓰러운 모습으로 나온다. 알프레도와 제르몽이 도착하기 전, 비올레타와 안니나가 나누는 이야기는 극의 절정으로 도약하기 위한 정서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
만약 안니나 역을 맡은 성악가의 가창력이 조연급이었다면 전체적으로 우울한 분위기가 더 많이 연출됐을 것인데, 제3막에서 신다영의 아리아는 마치 제1막의 비올레타를 연상하게 만들 정도로 힘이 있었기 때문에 명확한 대비로 비올레타의 슬픔과 아픔을 더욱 생생하게 느끼게 만들었다.
신다영의 아리아가 평범했으면 전체적으로 우울한 분위기가 더 형성됐을 것인데, 중심을 잡은 신다영의 가창력이 비올레타 역의 김수진의 아픔과 슬픔에 관객들이 더욱 집중하게 만들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만약 노래가 아닌 대사로 표현됐다면 이런 효과를 얻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전체적인 분위기와 뉘앙스에 묻어갈 것인가, 사람(주인공)에 더욱 집중하게 만들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시간에서 연출과 신다영은 관객들이 오롯이 비올레타에게 집중하게 만드는 선택을 했다. 장면 설정과 해석의 디테일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