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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연극] ‘레드’(2) 스승으로부터 벗어나기, 선배 아티스트로부터 벗어나기

발행일 : 2019-01-10 09:04:50

1월 6일부터 2월 10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연극 <레드>가 공연 중이다. 실존인물인 화가 마크 로스코(강신일, 정보석 분)와 가상인물인 조수 켄(김도빈, 박정복 분)의 대화 속에는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만들기 위해 마음의 스승으로부터 벗어나기, 선배 아티스트로부터 벗어나기를 시도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레드’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레드’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 스승으로부터 벗어나기, 선배 아티스트로부터 벗어나기
 
문화예술을 전공했을 경우 대학, 특히 대학원을 졸업한 후부터 죽을 때까지의 여정은 ‘스승으로부터 벗어나기’, ‘선배 아티스트로부터 벗어나기’라는 말이 있다. 나에게 영향력을 주는 사람에게 철저하게 밀착해 배운 후, 아이러니하게도 훨씬 더 많은 시간을 그 사람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을 한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그것도 죽을 때까지 말이다.
 
배우는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르는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르는 상황에서는 먼저 이룩한 스승님, 선배 아티스트를 추종할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

‘레드’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레드’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그런데 그런 추종은 내가 나만의 독창적인 예술을 하려고 하는 순간, 나의 발목을 잡는다. 나는 무엇을 해도 스승의 스타일을 따르고 있고, 선배 아티스트를 모방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예술가의 불타오르는 창조력은 모든 것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도록 시도하게 만든다.
 
처음부터 나를 완전히 버리지 않고, 나를 간직한 상황에서 스승과 선배 아티스트를 추종했으면 그 이후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며 에너지를 소비하는 게 아니라 바로 나만의 창작을 위해 매진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것도 가정일 뿐, 나를 완전히 버리지 않고 있었다면 제대로 배우지 못했을 가능성 또한 커졌을 것이라고 예상되기도 한다.

‘레드’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레드’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 로스코가 말하는 큐비즘을 짓밟아 쫓아내기!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로스코의 철학과 신념!
 
추상표현주의 시대의 절정을 보여준 화가 마크 로스코는 <레드>에서 큐비즘을 짓밟아 쫓아낸다는 말을 반복한다. 스승으로부터 벗어나기, 선배, 대가로부터 벗어나기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원론적으로 알려주지는 않지만,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강하게 어필한다.
 
선배 아티스트들을 이기려 했던 로스코는 후배 작가들에게 짓밟히는 게 두렵다. 그의 철학과 신념은 부메랑이 돼 자신을 겨눈다. 현실 부정을 통한 독창성 추구는 로스코를 자기모순에 빠지게 만들고 가식적인 인물일 수 있다고 여기게 만들기도 한다.

‘레드’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레드’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자식을 아버지를 몰아내야 한다는 로스코의 대사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내면의 극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인데, 자세한 부연 설명 없이 맥락 속에서 표현되기 때문에 관객은 심리적인 측면의 이야기가 아니라 행동에 초점을 둬 실제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오해할 여지도 있을 것이다.
 
◇ 현학적일 수도 있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 수도 있는 연극
 
<레드>는 현학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 수도 있는 연극이다. 붓과 안료만큼 중요한 도구는 교양이라고 로스코는 말하는데, 세 명의 작가인 앙리 마티스, 잭슨 폴락, 윌렘 드 쿠닝의 예를 들 때 미술적인 면 못지않게 그 안에 들어있는 정신과 철학을 강조한다.

‘레드’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레드’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니체, 프로이트, 융 등 많은 철학자, 심리학자의 이름도 로스코의 대사 속에 나오면서 서사는 계속 이어진다. 현학적인 대화 속에 진지함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로스코는 배타적인 자세를 취한다.
 
로스코에게는 진지함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진지한 자신 스스로가 더 중요한 것이라고 추정되는데, 실제로 그렇던 아니면 오해든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전달된다는 것 자체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로스코의 입장을 추종하고 있는 <레드> 또한 관객 각자의 성향에 따라 그렇게 전달될 수도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레드’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레드’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 심리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연극적 재미가 강한 연극
 
<레드>에서 대화 속에 나오는 빨간색, 칼 등 상징적인 오브제, 상징적인 매개체는 심리적인 이야기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보인다. 로스코는 켄에게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어느 장소도 가지지 못한다고 말하는데, 이 또한 행동보다는 심리적인 면에 초점을 둔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켄은 부모님 살해범을 평범하다고 가정한다. 살아남은 자신이 생존의 이유를 찾기 위해 부모님의 죽음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어야 하고 그래야 본인이 안전하다고 무의식적으로 느끼기 때문에 그런 가정을 했다고 추정되는데, 사람과 상황에 따라서 켄과 완전히 반대로 느낄 수도 있다.

‘레드’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레드’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빛이 사라지는 게 두려운 로스코에게 컬러를 잃어버리면 내용 없는 질서만 남는다고 켄은 말한다. 진지함의 중요성 강조한 로스코와 모든 게 다 중요할 필요는 없다고 더욱 강하게 말하는 켄의 대립 속에 진짜와 허상이 무엇인지 관객은 계속 생각할 수 있다.
 
사람들이 널 보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로스코는 뭐가 보이는지에 대한 질문을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던진다. 영화 속에서 이런 반복이 계속되면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데, 관객과 직접 호흡하며 펼쳐지는 연극이기에 위선, 회피, 직면 등 심리학적 표현이 더욱 생생하게 마음속으로 파고든다. <레드>는 심리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연극적 재미가 강한 연극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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