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용 감독의 <오늘만 날이다>는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SIFF2018, 서독제2018) 특별초청 부문에서 상영되는 단편 영화이다. 영화감독 정욱(박정욱 분)은 청주로 내려와 관객들을 만나는데, 그들은 모두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다.
정욱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상황의 문제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내가 그런 대접을 받았다고 상대방을 매우 나쁜 사람으로 취급하거나, 내가 그런 행동을 했다고 나를 스스로 쓰레기처럼 여기며 비하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 내 영화, 다른 감독, 다른 감독의 영화에는 관심이 있지만 나에게는 관심이 없는 관객들
<오늘만 날이다> 초반 정욱의 자기고백, 자기개방은 솔직한 자신감이 아닐까 잠시 기대하게 만들지만 자기비하, 자기축소의 의미를 더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나의 영화를 약간 좋아하기는 하지만, 나에게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나의 자존감을 낮춘다.
내 영화, 다른 감독, 다른 감독의 영화에는 관심이 있지만 나에게는 관심이 없는 관객들을 보며 나는 상처받을 수밖에 없다.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영화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왜 영화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냐고 뭐라고 하는 질문을 던지는 관객도 있다. 그러면서도 다른 감독의 이야기를 나에게 묻는다.
무한경쟁, 성과 위주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결과에만 집중하지, 그 안에 있는 사람을 볼 마음의 여유가 없다. 공연을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오는 배우가 허탈한 이유,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하고 집에 가는 개늑시에 마음이 아련해지는 이유는, 세상은 나를 배역이나 업무로 보는데 집중해 사람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 다른 사람의 말을 포용할 자신감이 없다! 개인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상황의 문제일 가능성이 더 많다!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상황이 문제다!
존중받지 못한다고 여기는 정욱은 관객들의 말과 행동에 휘둘린다. 포용할 수 있을 정도의 자신감이 없기에 괜히 관객들에게 화풀이를 하거나 방어에 머물지 않고 공격을 한다. 그런데 이것은 이건 개인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상황의 문제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마음에 있는 말이 아닌 다른 말이 나도 모르게 나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이유는, 정욱뿐만 아니라 등장인물 모두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까탈스럽게 상대방을 공격한다. 굳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필요가 없는데도 상처를 주는 것이다.
사람이 구석에 몰릴 경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불필요하게 공격하게 될 수 있다. 분명히 본심은 아닐 것이다. 성숙하게 자신을 보호하고 방어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불필요하게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다. 아직 뜨지 못한 영화감독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아직 인정받지 못한 청춘들에게 똑같이 해당될 수 있는 상황이다.
내가 그런 대접을 받았다고 상대방을 매우 나쁜 사람으로 취급하거나, 내가 그런 행동을 했다고 나를 스스로 쓰레기처럼 여기며 비하할 필요가 없다.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상황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좋아져서 자존감, 자신감이 회복되면 포용적이고 너그러워질 수 있는 사람은 많다. 그렇지만 그렇게 됐어도 관계가 바로 회복되지는 않는데, 아직 상대방은 자존감. 자신감이 회복되지 않아서 일수도 있고, 한 번 닫힌 마음을 열기 싫어서 그럴 수도 있다. 내가 구석에 몰려 있을 때 나 자신에 대해 스스로 조심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배역의 이름과 배역의 이름이 같은 흑백 영화!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전달한다
<오늘만 날이다>는 정욱을 비롯해 경혜(박경혜 분), 제형(연제형 분), 근택(홍근택 분), 지완(류지완 분) 모두 배우와 배역의 이름이 같다. 배우가 그냥 배역인 것처럼 동일인물로 감정이입한 연기가 가능한데, 흑백 영화라는 측면과 함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전달한다.
<오늘만 날이다> 속 에피소드를 영화적 설정으로 볼 수도 있지만, 실제 있었던 일을 다시 재현한 것처럼 보이는 이유이기도 한데, 칼라 영화였으면 전달되는 정서에 어떤 차이가 생길지 궁금해진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