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라 감독의 <벌새>는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SIFF2018, 서독제2018) 본선경쟁 부문에서 상영되는 장편 영화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에 대한 화두를 지속적으로 던지는 작품으로, 독립적인 정답을 제공하기보다는 다양한 대답이 정답일 수 있다고 느끼게 만든다.
누군가에게 사랑과 보호를 받고 싶지만 온 가족은 자신들의 문제와 싸우고만 있을 때 중학교에 다니는 여학생은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는지 느껴지기 때문에 마음이 무척 아프다. 김은희(박지후 분)와 김영지(김새벽 분) 모두 감독의 자화상이라고 생각된다.
◇ 주인공은 10대 소녀! 누군가에게 사랑과 보호를 받고 싶지만, 온 가족은 자신들의 문제와 싸우고만 있다
<벌새>는 은희의 시야로 진행된다. 주인공은 10대 소녀, 누군가에게 사랑과 보호를 받고 싶고 그래야 하는 나이와 위치에 있지만, 온 가족은 자신들의 문제와 싸우고만 있고 은희에게 사랑과 보호가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무언가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은희를 호되게 혼내야 한다고만 생각한다.
학교 선생님 또한 10대 소녀를 보호하지 않는다. 학생을 보호해야 할 사람이 학생을 공격하고 심지어는 학생들이 서로 믿지 못하는 세상에 살도록 만든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아니라 죽어가는 거라고 말하는 부정적인 말은, 교육을 위한 말처럼 포장돼 있지만 그냥 부정적인 말이다.
날라리 색출 작업을 한다며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종이를 나눠주고, 날라리를 두 명씩 적게 시킨다. 선생님 기준에는 담배 피우는 사람, 연애하는 사람, 노래방 가는 사람이 모두 날라리이다.
중학교를 다니는 여학생들에게 이런 행동은 얼마나 위협적이었을까? 내가 친구들에게 고발당할 수도 있고, 내가 친구들을 고발해야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마음의 갈등,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벌새>에서 학교 선생님은 학생을 아름다운 세상으로 이끄는 게 아니라, 그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을 지옥처럼 느끼게 만든다. 더욱 큰 문제는 그런 자신의 행동이 옳은 선택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실에서도 이런 사람들은 꼭 있다.
◇ 10대 소녀의 이야기와 1994년 성수대교 붕괴를 연결한 이유는?
<벌새>에는 10대 소녀의 이야기와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건이 교차된다. 둘 사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은희와 학원 선생님인 영지는 철거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는데, 이 또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원래 안전하고 안정돼야 하는 대상과 존재가, 안전과 안정을 확보할 수 없을 때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지를 이미지적으로 보여준다. 보호받고 싶은 10대 소녀, 보호받지 못한 성수대교 붕괴 사고, 보호받지 못한 철거촌.
◇ 중학생 은희는 감독의 자화상일 수 있다, 영지 또한 감독의 자화상일 수도 있다
이 영화의 시간과 공간은 감독에게 충격적인 기억이었을 시기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1994년에 감독은 중학생이었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중학생인 은희는 감독의 자화상이라고 생각된다.
영지는 중학생일 때 감독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던 인물일 수도 있지만 더 큰 어른이 된 감독의 또 다른 자화상일 수도 있다. 영지는 은희를 위로해주는 유일한 어른이다. 만약 영지 또한 감독의 또 다른 자화상이라고 한다면, 영지가 은희를 위로하는 것은 감독이 스스로에게 위로를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벌새>가 어른이 된 감독이 중학생이었을 때의 감독을 위로하는 영화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사랑받고 보호받고 위로받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어릴 적의 결핍은 어른이 돼서도 해소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본인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알지 못하는 경우는 더 많은데, 스스로 자신이 힘들었을 때를 위로할 수 있다면 한결 가볍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은희, 영지, 감독 모두 그럴 수 있기를 응원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