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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5) ‘참 자기’와 ‘거짓 자기’, ‘멸절’과 ‘충분히 좋은 엄마’

발행일 : 2018-11-02 14:14:51

그랜드오페라단의 OPERA <라 트라비아타 in Concert>(이하 <라 트라비아타>)에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s Theory) 심리학자 도날드 위니콧(Donald Winnicott)의 ‘참 자기(true self)와 거짓 자기(false self)’, ‘멸절(annihilation)’ 및 ‘충분히 좋은 엄마(good enough mother)’ 개념을 대입하면, 비올레타(소프라노 윤정난 분), 알프레도(테너 김동원 분), 제르몽(바리톤 한명원 분)의 관계성과 갈등을 더욱 잘 파악할 수 있다.

‘라 트라비아타’ 공연사진. 사진=김문기 제공 <‘라 트라비아타’ 공연사진. 사진=김문기 제공>

◇ 대상관계이론, 도날드 위니콧의 참 자기와 거짓 자기, 멸절, 충분히 좋은 엄마
 
엄마의 뱃속에서 안전하게 보호받다가 태어난 아이에게 자아라는 개념은 아직 없다. 태어나기 전에 엄마와 자기는 하나의 존재였다고 느끼며, 태어난 후에도 엄마로부터 극도의 보살핌을 받기 때문에 자기가 엄마와 분리된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아이는 자기를 인식하기 전에 상대인 엄마를 먼저 인식한다. 자아 이전에 대상을 먼저 인식하는 것이다. 절대적 의존성이 필요한 시기에 엄마의 보호를 받으며 안전감을 느끼던 아이는,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순간 스스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공포, 자기의 존재 자체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 같은 극한의 공포인 ‘멸절’을 경험하게 된다.

‘라 트라비아타’ 공연사진. 사진=김문기 제공 <‘라 트라비아타’ 공연사진. 사진=김문기 제공>

‘멸절’을 느끼는 이유는 아직 독립된 자기가 되기 이전에 정서적, 육체적으로 한 몸이라고 생각했던 엄마와의 육체적인 분리를 인지하게 된 상태에서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직 자아가 없는 상태에서의 계속 보호받고 있지 않다고 느껴지는 분리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게 여겨지는 공포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해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을 경우 ‘참 자기’를 지키기 위해 ‘거짓 자기’를 만들게 되는데, 여기서 참과 거짓은 도덕적인 질서의 옳고 그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본 기질을 충실히 따르느냐를 뜻하는 것이다.

‘라 트라비아타’ 공연사진. 사진=김문기 제공 <‘라 트라비아타’ 공연사진. 사진=김문기 제공>

참 자기가 기질적으로 타고난 내 본 모습이라고 하면, 거짓 자기는 참 자기가 보호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 원래의 나의 모습을 감추고 세상과 다른 사람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뜻한다.
 
아이가 멸절을 경험할 때 ‘충분히 좋은 엄마’는 이런 경험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고 예방하기 위해 ‘안아 주기(holding)’, ‘다루어 주기(handling)’, ‘대상 제시(object-presenting)’의 세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고 위니콧은 제시한다. 안아 주기는 신체적인 면과 정서적인 면을 모두 포함하며, 대상 제시는 엄마가 외부 세계를 유아에게 가져다주는 방식이다.

‘라 트라비아타’ 공연사진. 사진=김문기 제공 <‘라 트라비아타’ 공연사진. 사진=김문기 제공>

◇ 비올레타의 참 자기, 거짓 자기
 
‘라 트라비아타’는 이탈리아어로 ‘길을 잃은 여자’, ‘길을 잘못 든 여자’라는 뜻이다. 코르티잔(courtesan)이 직업인 비올레타를 칭하는 표현으로, 코르티잔은 부유한 남자나 귀족 등 상류사회의 사교계 모임에 동반하는 창부(娼婦) 혹은 공인된 정부(情婦)를 의미한다. 기생이나 게이샤처럼 시와 가무에 능하고 교양을 갖춰 상류사회 남성들과의 교류에 손색이 없는 여자를 지칭하는 것이다.
 
비올레타의 ‘참 자기’는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교류를 나누며 인기를 누리는 것이고, ‘거짓 자기’는 알프레도와 같이 살게 되면서 수입 없이 기존의 재산을 처분하며 사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참’과 ‘거짓’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기질의 차이라는 것을 분명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라 트라비아타’ 공연사진. 사진=김문기 제공 <‘라 트라비아타’ 공연사진. 사진=김문기 제공>

화려함 속에서 빛나고 행복했던 비올레타는 알프레도를 만나 그런 삶을 포기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알프레도와 같이 있는 게 그만큼 의미 있었지만 모아 둔 본인의 돈을 다 써버리게 되면서 점점 표정이 행복하지 않게 된다.
 
알프레도와 같이 산다는 것은 자신을 넘보는 많은 남자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안전해진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그런 모습인 거짓 자기로 살고 있지만, 비올레타의 내면에는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사랑받기를 바라는 참 자기가 있는 것이다.
 
비올레타는 같이 살게 된 처음에는 알프레도의 사랑을 받으면서 보호받는다고 느꼈을 것이다. 화려했지만 힘들었을 이전의 시간을 항상 위태롭게 느꼈을 수도 있기에 거짓 자기를 선택했던 것인데, 더 이상 알프레도가 자신의 심리적 보호막이라고 느껴지지 않게 되자 원래의 참 자기로 돌아갔다고 볼 수 있다.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이 그런 계기의 트리거 역할을 했다는 점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라 트라비아타’ 공연사진. 사진=김문기 제공 <‘라 트라비아타’ 공연사진. 사진=김문기 제공>

◇ 비올레타가 겪은 멸절의 고통, 충분히 좋은 엄마의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제르몽
 
생물학적 엄마만 엄마가 아니라 엄마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엄마라고 볼 수 있다. 생물학적 엄마만 엄마가 아니라 엄마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엄마라는 개념을 적용하면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은 비올레타에게 그런 존재가 돼 줄 수 있었다.
 
제르몽은 안아 주기, 다루어 주기, 대상 제시를 다 할 수 있는 존재인데, 비올레타를 만났을 때 뿌리치기, 부정적으로 다루어 주기, 잘못된 대상 제시를 했다. <라 트라비아타> 마지막에 비올레타가 죽기 전에 제르몽은 일정 부분 충분히 좋은 엄마의 역할을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제르몽의 포용이 있었으면 비올레타는 힘든 시기를 거치며 병에 걸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가정할 수도 있다.
 
충분히 좋은 엄마의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제르몽의 단호한 태도와 행동은, 비올레타에게 멸절을 가져다줬다. 알프레도만 믿고 이전의 삶을 모두 정리한 비올레타에게 알프레도와 헤어지게 만든 제르몽의 말은, 비올레타에게는 세상이 다 무너지고 사라지는 멸절의 고통을 줬을 것이다.

‘라 트라비아타’ 공연사진. 사진=김문기 제공 <‘라 트라비아타’ 공연사진. 사진=김문기 제공>

“나를 도와 다오”라고 부탁하는 형식을 취하면서도, 단호함을 보여 비올레타가 멸절을 경험하게 만든 것이다. 만약 비올레타가 스스로 헤어질 것을 결정했으면 멸절을 경험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과거와 단절된 삶을 살면서 이제 남아있는 돈도 없기에, 버티기 힘든 상황에서 자신을 희생하며 근근이 버티고 있었는데 제르몽이 나타나 넘어지게 한 것이다. 비올레타는 사랑이 멸절로 바뀌는 아픔을 겪게 된 것이다.
 
제르몽의 반대에 비올레타가 바로 수긍해 알프레도를 떠난다는 것이 뜬금없이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런데 제르몽이 비올레타에게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었는지를 가정하면 개연성을 더 많이 찾을 수 있다.
 
추후에 자신을 다시 찾아온 제르몽에 대해 비올레타는 미움과 분노로 대하지 않고, 마치 가족 간에 있었던 지난 일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점 또한 제르몽이 비올레타에게 충분히 좋은 엄마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상대였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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