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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3) 비올레타의 ‘리비도적 자아’와 ‘반리비도적 자아’

발행일 : 2018-10-31 06:30:03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s Theory) 심리학자 로날드 페어베언(W. Ronald D. Fairbairn)의 ‘분열성 양태(split position)’ 모델을 사용해, OPERA <라 트라비아타 in Concert>(이하 <라 트라비아타>)에서 비올레타(소프라노 윤정난 분), 알프레도(테너 김동원 분)의 관계성을 검토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그랜드오페라단 창단 22주년 기념 공연으로, 10월 2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렸다.
 
삶의 목적은 본능의 충족이 아니라 관계라고 한 페어베언이 제시한 분열성 양태 모델인, 리비도적 자아/흥분시키는 대상, 반리비도적 자아/거부의 대상 모델은,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생물학적 기반에서 완전히 벗어나 마음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예술 작품에서 등장인물의 캐릭터와 그에 따른 관계를 손쉽고 명쾌하게 검토하는데 효과적이다.

‘라 트라비아타’ 공연사진. 사진=김문기 제공 <‘라 트라비아타’ 공연사진. 사진=김문기 제공>

◇ 로날드 페어베언의 리비도적 자아/흥분시키는 대상, 반리비도적 자아/거부의 대상
 
로날드 페어베언 분열성 양태 모델의 핵심은 리비도적 자아/흥분시키는 대상, 반리비도적 자아/거부의 대상이다. 프로이트에게 리비도는 쾌락 추구였다면, 페어베언에게 리비도는 대상 추구라는 점이 중요하다.
 
분열성 양태 모델에서 완전한 고유의 자아는 본래 고유의 대상인 다른 사람과 완전하고 문제없는 관계를 리비도적 연결로 형성한다고 전제한다. 대상과의 완벽한 리비도적 연결이 침해받을 경우, 자아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아와 대상을 각각 견딜 수 있는 부분과 견딜 수 없는 부분으로 나눈다.
 
자아는 스스로 견딜 수 있는 부분인 ‘리비도적 자아’와 견디기 힘든 부분인 ‘반리비도적 자아’로 분리되는데, 이는 각각 대상이 되는 타인의 부분인 ‘흥분시키는 대상’과 ‘거부의 대상’과 연결된다.

‘라 트라비아타’ 공연사진. 사진=김문기 제공 <‘라 트라비아타’ 공연사진. 사진=김문기 제공>

즉, 강하게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나의 부분인 ‘리비도적 자아’는 나를 애타고 감질나게 만드는 타인의 부분인 ‘흥분시키는 대상’과 연결된다. 의존적인 나에 대한 혐오와 거부 또한 같이 형성되는데 나의 부분인 ‘반리비도적 자아’가 돼 상대방을 ‘거부의 대상’으로 대하게 된다.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가면 이때 사용되는 리비도는 쾌락 추구가 아닌 대상 추구이다.
 
여기까지 듣고 보면, 나와 리비도적 자아, 반리비도적 자아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할 수도 있고, 상대방과 흥분시키는 대상, 거부의 대상이 모두 다른 사람인지 같은 사람의 다른 면인지 궁금해질 수도 있다.

리비도적 자아와 반리비도적 자아는 모두 나이자, 내 안에 있는 나의 일부분이다. 흥분시키는 대상과 거부의 대상 역시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한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고, 그 사람 내면에 있는 다른 면을 뜻한다고 볼 수도 있다. 원래의 자아와 대상이 나눠진 것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같은 결국 같은 사람의 다른 면인 것이다.

‘라 트라비아타’ 공연사진. 사진=김문기 제공 <‘라 트라비아타’ 공연사진. 사진=김문기 제공>

◇ 비올레타의 입장에서 바라본 자아와 대상의 초기 단계
 
‘라 트라비아타’는 이탈리아어로 ‘길을 잃은 여자’, ‘길을 잘못 든 여자’라는 뜻으로 코르티잔(courtesan)이 직업인 비올레타를 칭하는 표현이다. 코르티잔은 부유한 남자나 귀족 등 상류사회의 사교계 모임에 동반하는 창부(娼婦) 혹은 공인된 정부(情婦)를 뜻하는데, 기생이나 게이샤처럼 시와 가무에 능하고 교양을 갖춰 상류사회 남성들과의 교류에 손색이 없는 여자를 지칭한다.
 
<라 트라비아타> 제1막에서 파티와 술로 매일 밤을 보내다 폐결핵으로 건강이 악화된 비올레타에게 나타난 알프레도는 1년간 지켜본 사랑을 고백한다. 처음에는 웃어넘기던 비올레타는 알프레도의 진심에 마음이 설레면서도, 자신의 삶에 절망하며 이대로 살겠다고 한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다시 만나 파리 교외에 살림을 차리고, 비올레타는 사교계를 정리한다.
 
제1막 마지막과 제2막 제1장의 초반에 알프레도는 비올레타에게 고유의 대상이 돼 완전한 리비도적 연결을 이루고 있는데, 중요한 점은 알프레도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나서부터 비올레타 고유의 자아가 총체적이고 손상이 없는 자아(자기)가 됐다는 점이다.

‘라 트라비아타’ 공연사진. 사진=김문기 제공 <‘라 트라비아타’ 공연사진. 사진=김문기 제공>

만약 비올레타가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소녀였고 처음부터 알프레도를 사랑했으면, 페어베언의 자아와 대상의 초기 단계에 정확히 부합했을 수 있는데, 코르티잔의 직업과 폐결핵을 가진 비올레타는 알프레도를 만나서 자신을 완벽하게 바꿈으로써 고유의 자아를 찾은 것이다.
 
페어베언의 모델을 비올레타에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제1막의 마지막을 분석의 시작점으로 삼아야 할 수도 있는데, 대상관계이론이 대상을 전제로 한 이론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제1막 초반부의 불안정한 비올레타는 알프레도가 고유의 대상이 되기 전의 비올레타이기 때문에, 대상과 자아의 초기 단계 이전에 알프레도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불안정한 상태에 있었더라도 알프레도의 마음을 받아들이면서 고유의 대상과 리비도적으로 연결된 고유의 자아가 됐다고 볼 수 있다.

‘라 트라비아타’ 공연사진. 사진=김문기 제공 <‘라 트라비아타’ 공연사진. 사진=김문기 제공>

◇ 비올레타의 입장에서 바라본 중심 자아와 이상적 대상
 
알프레도와 같이 살게 된 비올레타는 평온한 행복을 누리는데, 평온한 행복, 리비도적 연결에 위협을 가하는 두 가지 요소가 등장한다. 두 사람의 생활비는 모두 비올레타가 충당했는데, 알프레도는 돈을 벌지 않았고 더 이상 코르티잔 일을 하지 않는 비올레타에게 수입은 없었는데 그간의 씀씀이 버릇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가사가 빠른 속도로 탕진해 갔고, 비올레타는 마차를 팔아 생활비를 마련하려고 한다. 또한, 알프레도와의 행복한 생활로 드러나지 않았던 비올레타의 건강은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이 두 가지에 의해 리비도적 애정 어린 관계는 손상을 입기 시작하는데, ‘이상적인 대상’이라고 불리는 견딜 수 있는 부분은 ‘중심 자아’라고 불리는 자아의 중요한 부분과 연결된다. 비올레타는 마차 등의 자산을 팔았을 때 ‘다시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간다.’라는 바람을 가진 것인데, 아직 통제 가능한 상황에서 나쁜 경험을 이겨낼 수 있는 내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라 트라비아타’ 공연사진. 사진=김문기 제공 <‘라 트라비아타’ 공연사진. 사진=김문기 제공>

◇ 비올레타의 입장에서 바라본 리비도적 자아와 흥분시키는 대상
 
견딜 수 없는 관계의 면이 내면화되는 첫 번째 모습은 강하게 의존하는 자기와 애타고 감질나게 하는 다른 사람의 면이 ‘리비도적 자아’와 흥분시키는 대상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알프레도가 비올레타의 집에 들어와서 살고 있고, 생활비를 전적으로 비올레타가 지불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만 보면 알프레도는 흥분시키는 대상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알프레도는 절망 속에 나날을 보내던 비올레타에게 진정한 사랑의 희망을 던졌다. 페어베언의 표현 중에 ‘애타고 감질나게’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알프레도는 비올레타에게 살고 싶은 희망을 줄 정도로 사랑하면서도 생활비가 어떻게 지출되는 것인지 현재 집 안의 형편은 어떤지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알프레도는 전적으로 비올레타에게 헌신하는 사랑을 보내지는 않지만, 비올레타가 스스로 마차를 팔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게 만들 정도로 ‘애타고 감질나게’ 비올레타를 흥분하게 만드는 것이다.
 
알프레도에 대한 비올레타의 의존성은 경제적 의존성이 아닌 심리적 의존성이다. 코르티잔 일을 하지 않으며 건강하게 살고 싶은 꿈을 꾸게 되는 이유가 알프레도이기 때문에 상황의 악화에 따라 더 이상 완벽하지 않은 관계에서도 비올레타는 알프레도를 향한 리비도적 자아를 발현해 낸 것이다.

‘라 트라비아타’ 공연사진. 사진=김문기 제공 <‘라 트라비아타’ 공연사진. 사진=김문기 제공>

◇ 비올레타의 입장에서 바라본 반리비도적 자아와 거부의 대상
 
반리비도적 자아는 리비도적 자아의 의존성에 대한 경멸에서 나타나는데, 비올레타의 경우 반리비도적 자아가 구체화된 이유가 단지 의존성에 대한 경멸뿐만 아니라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의 개입에도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 주목된다.
 
분리된 내면의 각각이기 때문에 비올레타에게 리비도적 자아/흥분시키는 대상의 발현과 동시에 반리비도적 자아/거부의 대상이 발현됐을 것인데, 제르몽에 의한 외적 자극과 직면이 있기 전까지 리비도적 자아/흥분시키는 대상에 대한 억압보다 반리비도적 자아/거부의 대상에 대한 억압이 강했던 것으로 사료된다. 이는 비올레타에는 원래의 완벽했던 리비도적 관계로 회기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반리비도적 자아/거부의 대상이 분리 초반에 강하게 작용하지 않은 것은, 비올레타의 심리뿐만 아니라 상황에서도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비올레타는 알프레도에 심리적으로 의존하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의존하지 않았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의존하는 리비도적 자아에 대해 상대적으로는 스스로 관대했기 때문이라고 사료된다.
 
이는 부분 대상의 개념에서 발생한 리비도적 자아, 반리비도적 자아의 주도권은 분리되지 않은 다른 부분 대상의 영향에 의해 일시적 혹은 영구적으로 좌우될 수도 있다는 가설을 제시하게 만든다.

‘라 트라비아타’ 공연사진. 사진=김문기 제공 <‘라 트라비아타’ 공연사진. 사진=김문기 제공>

자신의 내면이나 결점을 다른 사람에게 당당히 오픈하는 사람은 부끄러움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 이외의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보다도 자신감이 넘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이 평가받고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의 경우 현재 잘 모르는 것도 어느 정도 아는 척하면서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만, 사회적 레벨을 기본적으로 인정받고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들의 경우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 기초적인 질문도 서슴지 않고 할 수 있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만약 비올레타가 신데렐라 콤플렉스가 강해서 더 많은 면을 알프레도에게 의지했다면 비올레타의 입장에서 본 반리비도적 자아/거부의 대상은 더욱 강렬하게 작동됐을 수도 있다.
 
알프레도 역시 비올레타에게 의존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비올레타와 알프레도의 상호 이중적인 분열성 양태는 반리비도적 자아/거부의 대상의 분노를 상쇄하거나 희석시켰을 수 있다. 전체적으로는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분열 초반에는 그렇게 작용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라 트라비아타’ 공연사진. 사진=김문기 제공 <‘라 트라비아타’ 공연사진. 사진=김문기 제공>

◇ 비올레타의 입장에서 바라본 자아/대상의 완성된 구조
 
<라 트라비아타>에서 비올레타의 반리비도적 자아/거부의 대상이 리비도적 자아/흥분시키는 대상을 억압하는 페어베언 모델의 마지막 단계는 반리비도적 자아/거부의 대상의 활성화와 거의 연쇄적으로 일어난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는 중심 자아가 억압을 통해 반리비도적 자아를 만들었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부분인 반리비도적 자아의 활동 자체를 억제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 페어베언 모델에 기본적으로 적용되지만 디테일에서 차이를 만든 이유
 
페어베언 모델에 비올레타를 적용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잘 부합되지만, 연결 과정과 적용의 디테일에 있어서는 차이를 보인다는 것을 본 연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차이가 생길 수 있는 이유는, 실제 인물일 경우 복잡하고 명쾌하지 않은 마음과 태도를 취할 수 있지만 예술 작품에서 캐릭터가 명확하게 되면서 인위적으로 설정된 면이 분열성 양태 과정에서 작은 단절과 점핑을 줬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한, 비올레타와 같이 화려한 직업을 가진 사람의 경우 감정의 급변화와 점핑을 겪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이런 분석이 도출됐을 수 있다.
 
또한, 부분 관계로 연결돼 한 면(심리적인 면)에서는 알프레도에게 리비도적 자아의 모습을 보이지만 다른 면(경제적인 면)에서는 오히려 반대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올레타와 알프레도가 다른 측면에서 상호 이중적인 분열성 양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페어베언 모델을 기본적으로 적용하면서도 특수성을 고려해야 하는 것으로 사료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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