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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 자신이 가진 게, 자신의 가치가 뭔지도 모르고 외국인 연출가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국립오페라단

발행일 : 2018-10-09 02:25:52

국립오페라단 가족오페라 <헨젤과 그레텔(Hänsel und Gretel)>이 10월 9일부터 13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연주하고, CBS소년소녀합창단이 함께 한다.

‘헨젤과 그레텔’ 연습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헨젤과 그레텔’ 연습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 <코지 판 투테>에 이은 <헨젤과 그레텔>! 국립오페라다의 작품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헨젤과 그레텔> 전막 프레스콜이 본공연을 앞두고 10월 8일에 개최됐다. 직전 작품인 <코지 판 투테>에 대한 아쉬움은 <헨젤과 그레텔> 또한 ‘역시나’라고 느끼게 만들고 있다.
 
국립오페라단의 작년과 올해, 특히 올해의 행보를 보면 국립오페라단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외국 연출가와 지휘자에게 지속적으로 전적인 권한을 부여하고 그들을 선택을 맹목적으로 추종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국립오페라단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저하시키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헨젤과 그레텔’ 연습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헨젤과 그레텔’ 연습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원작의 기본적인 정서도 따라가지 못하면서 어설프게 변화만 주려고 한 <코지 판 투테>, 그냥 웬만큼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을 울리게 만드는 <라 트라비아타>를 정말 재주 좋게 변화시켜 아무 감동도 느끼게 만들지 못하게 만든 <동백꽃 아가씨>를 봤을 때의 느낌이 가족 오페라 같지 않은 가족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에서도 느껴진다.
 
국립오페라단은 수준 낮은 단체가 절대 아니다. 웬만한 유럽의 극장을 그대로 초청해 공연하는 프로덕션보다 수준 높은 공연을 보여줬던 단체이다. K-Pop과 K-Drama 등 한류의 열풍을 오페라가 이어간다면 당연히 그 선두에는 국립오페라단이 섰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의 행보를 보면 국립오페라단이 K-Opera로 나아가는 것을 당분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헨젤과 그레텔’ 연습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헨젤과 그레텔’ 연습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적극적인 자기반성이 있어야 한다. 국립오페라단뿐만 아니라 서울시오페라단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사항이다. 단장이나 예술감독 혹은 일부 의사 결정자의 개인적인 취향으로 오페라의 기본도 충족하지 못하는 일부 사설 오페라단의 모습을, 국립오페라단, 서울시오페라단이 별 차이 없이 보여줘서는 안 된다.
 
◇ 디테일이 약하다! 잔혹 동화와 가족 오페라, 둘 중 하나를 명확하게 선택했어야 한다!
 
<헨젤과 그레텔>는 가족 오페라를 표방하고 있다. 그렇지만, 실제 공연을 관람하면 잔혹 오페라를 추종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족 오페라를 표방하면서 가족 단위의 관람을 권유하는데, 실제로는 잔혹한 이야기를 전달한다? 의도적인 설정일까, 국립오페라단의 디테일 부족일까? 아니면 정말 성의와 애정이 없는 것일까?

‘헨젤과 그레텔’ 연습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헨젤과 그레텔’ 연습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헨젤과 그레텔>의 원작은 잔혹동화가 맞다. 아이들을 위한 동화도 아니고, 어른들을 위한 동화도 아니고, 좋은 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냉철한 잔혹동화이다. 프로덕션을 하면서 잔혹동화를 제대로 살리는 것은 제작진의 선택이다. 그런데 이번 <헨젤과 그레텔>처럼 제대로 된 잔혹동화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족 오페라는 더더욱 아닌 작품을 어설프게 만들 필요와 가치는 없다.
 
그냥 좋으면 좋은 게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헨젤과 그레텔>을 보면 동심을 해치는 부분, 장면이 있는지 한 번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 느껴진다는 점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헨젤과 그레텔’ 연습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헨젤과 그레텔’ 연습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국립오페라단은 이런 검토 자체도 안 했던 것인지 아니면 그런 생각을 어렴풋이 했으면서도 외국에서 온 연출가가 무조건 맞는다는 생각에 의견을 개진할 생각조차 못 했던 것일까?
 
잔인한 장면과 설정을 불가피하게 선택할 경우, 아이들을 어떻게 보호할지에 대한 검토와 노력, 그리고 그것을 채울 디테일이 필요하다. <헨젤과 그레텔>을 만들면서 단장, 연출, 지휘뿐만 아니라 드라마투르그도 이런 점을 공연에 반영하지 못한 점을 깊이 반성해야 한다.

‘헨젤과 그레텔’ 연습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헨젤과 그레텔’ 연습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마녀가 과자가 됐다는 것은 우리가 먹는 과자의 원료가 마녀일 수도 있다는 뜻한다. 아이들이 과자를 먹지 못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아니었다면, 디테일의 변화로 이런 극한 상황이 만드는 잔혹한 정서를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수준을 인정받는 애니메이션의 경우 악당을 표현할 때도 동심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악당의 캐릭터를 설정한다. <헨젤과 그레텔>을 기획하며 연습할 때, 동심을 지켜야 한다고 강하게 말한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을까 비교하며 생각하게 된다.

‘헨젤과 그레텔’ 연습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헨젤과 그레텔’ 연습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 마녀 못지않게 아이들을 학대하고 방치한 부모의 모습! 실제로 비슷한 경험을 가진 아이들이 받을 상처를 제작진은 단 한 번이라고 생각했을까?
 
<헨젤과 그레텔>에서 엄마는 아이들을 만나자마자 혼을 낸다. 어떻게 지냈는지, 밥은 먹었는지 묻기는커녕 양말 뜨기만 시키면서 면박을 주는 엄마의 모습은 지속된다. 집 밖에는 숲속의 마녀가 있다면, 집 안에는 엄마가 있다는 것을 <헨젤과 그레텔>은 느끼게 만든다. 산딸기를 따오라고 아이들을 숲속으로 내쫓는 장면에서 상처받는 어린관객들도 있을 것이다.
 
부모로부터 받은 구박과 무시가 오빠와 여동생 사이에서도 부정적으로 증폭되지 않은 점은 다행이라고 여겨진다. 엄마는 지쳤다고 노래를 부르면서, 돈벼락을 내려달라고 기도한다. 나는 할 만큼 했는데, 세상이 내게 왜 그러냐는 불만을 가질 수는 있는데 그 분풀이를 아이들에게 할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헨젤과 그레텔’ 연습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헨젤과 그레텔’ 연습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열매를 가져가서 엄마에게 칭찬받고 싶었던 아이들이 결국 부르는 노래에는 뻐꾸기처럼 남의 집을 빼앗고 남은 알을 훔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아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이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부모의 문제가 아이에게 전달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실제로 그럴 수는 있지만 이런 내용을 가지고 ‘가족 오페라’라고 타이틀을 붙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검토와 논의가 필요하다.
 
싸구려 독주를 마시며 “랄라라라” 노래 부르며 들어오는 아빠는 하루가 지나도 집에 돌아오지 않는 아이를 찾으면서도 “랄라라라” 노래를 부른다. 이런 아빠, 엄마의 모습을 보면 어쩌면 아이들에게는 집 안이 숲속보다 더 최악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른들을 위한 잔혹동화’라고 말했어도 마음이 아플 것인데, 이렇게 표현하면서 ‘가족 오페라’라고 말하는 멘탈이 놀랍다.

‘헨젤과 그레텔’ 연습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헨젤과 그레텔’ 연습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모래요정, 이슬요정은 정말 요정일까? 아니면 업무만 수행하는 존재일까? 헨젤과 그레텔이 숲속에서 위험하게 잠을 잔다. 그런데 모래요정과 이슬요정은 아무런 경고도 하지 않고, 제대로 보호해주지도 않는다. 헨젤과 그레텔은 어떤 누구로부터도 보호를 받지 못한다. 이런 이야기를 노골적으로 하면서도 <헨젤과 그레텔>을 가족 오페라라고 표방한다는 점이 놀랍다. 관객은 무엇을 어떻게 느껴야 하는가?
 
모든 것의 해결에는 어른들의 도움은 전혀 없다. 새로운 것에 별로 기죽지 않는 아이들의 모습, 기죽기보다는 새로운 것에 대한 흥미가 높은 아이들의 모습이 강조되는데, 똑같거나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어린이 관객들에게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는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는 것을 은근슬쩍 알려주는 것이다. 아이들이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아닌 분명히 어른들이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었다는 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헨젤과 그레텔’ 연습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헨젤과 그레텔’ 연습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 극중극 형식을 통해 전달하려고 했던 것은 무엇인가?
 
이번 공연에서는 그림자놀이를 하다가 잠든 아이들이 꿈속에서 헨젤과 그레텔을 만난다는 스토리텔링을 보여준다. 두 아이가 꿈을 같이 꾼다. 같은 꿈을 꾼다는 것은 공통된 정서와 내면세계가 겹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그게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가 <헨젤과 그레텔>에는 나오지 않는다. 지금 설정으로 보면 극중극 형식을 왜 선택했는지 명확하게 알 수가 없다.
 
롤러스케이트를 왜 신었는가도 알 수 없다. 빠르게 움직이며 회전을 도는 것 같은 특징적 동작이 전혀 없다. 그냥 안무를 했어도 되는 장면에서 스케이트를 신고 등장한 것인데,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제대로 움직이지 못해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인 무용수들도 꽤 있었다. 그냥 안무를 했어도 전혀 아쉬움이 없는 시간에, 왜 롤러스케이트를 타게 한 것일까?
 
일관된 정서를 유지하려는 통일성도 없고, 동심을 지켜주겠다는 노력도 없고, 설정에 대한 이유와 개연성도 명확하지 않다. 외국인 연출이 이런 식으로 작품을 만드는데 국립오페라단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9월 <코지 판 투테>, 10월 <헨젤과 그레텔>에 이어 12월 <라 보엠>도 같은 식으로 작품을 내버려 둘 것인지 국립오페라단에 묻고 싶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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